백오현 담양 유기농 부추 생산자
물론 농사를 모르고도 살 수 있어요. 우리가 농사를 알든 모르든 논밭에서는 어김없이 먹을거리가 자라고 돈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먹을 것이 흔한 세상에서 오히려 농사는 점점 생경한 이야기가 되어만 갑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백오현 생산자님은 “우리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농사짓는다”는 말을 여러 번 전했습니다. 빛나지 않는 곳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땅과 작물을 돌보고 있을까요? 생산자님과 마주 앉아 함께 농사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이야기를 혼자만 듣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깥은 벌써 뜨거운데 오히려 비닐하우스 안은 시원해요.
폭염에 대비해 온도 저감 시설을 확충했어요. 제주도에서 키우던 작물이 모두 육지로 들어올 정도로 기후 위기가 심각하잖아요. 농사지은 지 이제 16년째인데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와 농업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농사짓기 어려운 시대가 됐어요.
시설 확충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설비를 갖추기 위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부추 하우스 3동을 기준으로, 온도 저감 시설을 갖추려면 4천만 원 정도가 필요해요. 다행히 정부에서 보조금을 50% 지원해 주지만 그래도 나머지는 농가에서 부담해야 해요. 한 번 설치한 시설은 5~6년 정도 사용하고요.
그러면 기후 위기 때문에 5~6년마다 2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폭염 때문에 하우스에 설치하는 비닐도 수명이 많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6~7년 정도 비늘을 사용했는데 날이 더우니까 녹아버려서 더 빨리 망가져요.
비닐 설치도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고 알고 있는데요.
농사는 날씨가 짓는 것 반, 사람이 짓는 것 반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기후 변화가 계속되면 농가가 부담하는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기후가 달라져도 작물이 살아갈 환경을 유지해줘야 하니까요. 특히 부추는 온·습도 관리가 중요해서 온도는 30℃ 이하를 유지해주고 수분관리에 신경 써야 해요. 30℃가 넘어가 버리면 시설을 아무리 잘 갖추어 놓아도 부추 끝이 노랗게 다 타요.
앞으로가 더 걱정이네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소비자든 농가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시잖아요. 기후 위기도 유기농업을 실천하시는 이유 중 하나일까요?
그렇게 거창한 이유로 농사를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저는 31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퇴직했어요.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일을 고민하던 중에 농사에 도전했죠. 처음 한두 해는 관행 농사를 짓다가 판로를 넓히기 위해서 유기농을 시작했고요. 지금은 유기농업이 제 자존심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어요.
누구나 유기농이 좋다고 알고는 있지만, 뭐가 좋은지 설명하라면 제대로 말하기 참 어려워요. 생산자님은 유기농이 왜 가치 있다고 생각하세요?
유기농은 농약과 화학 비료 도움 없이 짓는 농사이지 않습니까. 농약에는 살균제와 살충제, 그리고 제초제와 생장조절제 등이 있어요. 농약은 논밭의 생태계를 직접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 흙 속에서 분해가 잘 안 돼 흙에 오래 남아서 물을 오염시켜요. 어떤 농약 성분은 생체 조직 안에 들어가면 배출되지 않고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돼서 물고기나 이를 먹은 새가 죽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예요. 여름에 습하고 더워 병충해에 약해서 농약의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긴 해요. 하지만 깨끗하게 보이는 농산물을 좋아하는 소비자와 많이 생산하고 싶은 농가의 욕심도 농약 과다 사용에 한몫하고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농약이 나쁜 것을 알잖아요. 그런데도 사용할 만큼 농약은 달콤한 존재인가요?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 농가 마음도 이해 가는 게 뭐냐면, 관행농에서는 진딧물이 생겼을 때 부추 하우스 다섯 동 기준으로 6천 원짜리 농약 한 병만 쓰면 진딧물이 싹 없어져요. 6천 원짜리 한 병이면 싹 없어지는데 친환경 약은 보통 한 병에 3만 원이에요. 그리고 한 병으로도 안 돼요. 한 번 약을 칠 때 두 병은 써야 해요. 거기다가 한 번 쳐서 진딧물을 잡으면 괜찮은데 두 번, 세 번을 쳐야 해요. 그럼 약값도 많이 들고 사람 품도 아주 많이 들잖아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친환경 약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질 않아요. 그러니까 관행에서 친환경으로 바꿨다가도 사람들이 농약의 유혹을 못 이기고 어느새 포기해요.
생산자님을 비롯해 관행에서 유기로 전환하신 분을 여러 번 뵈었는데 농업 현장의 그런 실질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관행 농업이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농사는 다 어려워요. 하지만 유기농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농가는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 하죠.
화학 비료는 농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화학 비료를 쓰면 땅속 미생물이 사라져요.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좋은 흙에는 미생물 수백억 마리가 살고 있어요. 미생물은 땅속에서 유기물을 먹으며 살아가요. 그런데 화학 비료는 땅속에서 바로 무기화되는 무기질비료예요. 유기물을 뿌리지 않고 화학 비료만 쓰면 작물이 자라기에 당장 지장은 없어요. 하지만 유기물을 먹어야 하는 미생물은 먹이가 없어서 살 수가 없어요. 미생물이 사라지면 흙이 점점 딱딱해져서 농사짓기가 어려워요. 이렇게 땅이 변하면 유기물을 뿌려도 분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화학 비료에 계속 의지하게 되고요. 악순환이죠. 농약이 땅 위를 황량하게 만든다면 화학 비료는 땅속을 황폐하게 만드는 셈이에요.
정리하면 유기농의 가치는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성, 유기성에서 찾을 수 있겠네요.
네, 그런데 유기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잔류농약검사만을 따지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유기농 채소를 사 먹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사람은 친환경성이 높은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 사람이 친환경성이 높다고 인정하는 이유는 머리카락을 뽑아서 몸을 구성하는 성분을 측정해 보았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실제로 하루를 어떻게 생활하는지 확인했기 때문이죠.
그렇네요.
농사도 마찬가지에요. 실험실에서 분석하는 결과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접 논밭을 찾아서 땅과 작물, 사용하는 농기구나 자재 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친환경 인증 방식이 바뀌면 좋겠어요.
유기농이 바르게 자리 잡으려면 또 어떤 것이 변화해야 할까요?
농가와 소비자 모두 농산물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요. 소비자가 선호하는 크고 좋은 채소를 재배하려면 질소를 많이 공급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그 ‘크고 좋은 채소’는 질산염을 많이 함유하게 돼요. 소비자가 모양 반듯하고 큼직한 채소를 고르는 건 좋은 것을 먹고 싶어서잖아요. 질산염이 많이 든 채소를 좋은 채소라고 할 수 있나요? 농가에서는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크기를 키우고 모양을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벌레 먹고 작고 못생긴 건 팔리지 않으니까요. 이걸 꼭 소비자 책임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소비자는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까요.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공공급식이 그런 역할을 좀 해주면 좋겠어요. 공공급식은 농가에도 좋고 소비자한테도 좋은 방향을 찾아서 거래를 이어주는 중간자잖아요. 농산물을 팔아 주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지만 소비자에게 올바르고 제대로 된 정보를 많이 전달해 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