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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Dec 21. 2023

다정한 시선

다정한 마음에 형체가 있다면

아기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자신에게 내미는 손가락을 움켜쥐고(쥐기 반사), 주변에서 소리가 나서 놀라면 양손을 뻗으며 매달리려고 한다.(모로 반사) 지금은 2살이 된 아들, 로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기가 이토록 관계지향적인지 몰랐다. 갓난아기 때부터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려고 하고, 사람이 지나가면 관심을 가지며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쳐다보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웃음으로 화답한다. 1년이 지나 스스로 걷게 되면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싶어서 달려가며 손을 흔들고, 내가 표정이 안 좋으면 다가와서 안아준다. 또 장난을 치기 전에 살짝 웃으며 장난을 쳐도 되는지 기회를 엿보고는 바로 사고를 치고 만다. 언어를 배우기 전부터 아기는 이미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고, 웃기, 안기, 장난치기 모두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의 일부다.


로이는 사람이 보이면 “하하하” 헛웃음을 치며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티를 냈다. 상대방이 함께 웃으며 인사를 건네오면 한없이 기뻐했고, 상대방이 로이를 미처 보지 못한 채 지나가면 실망하며 슬퍼했다. 감사한 것은 작은 로이를 발견하고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한 번은 마트에서 로이를 카트에 태우고 장을 보고 있는데 “이렇게 예쁜 아기는 어느 코너에서 살 수 있나요?” 라며 농담을 건네오는 이도 있었다. 로이 덕분에 낯선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고, 어디를 가든 환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의 천진함을 닮아간다. 아기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아기의 표정을 따라 동그랗게 눈을 뜨고, 또 “푸푸-” 침을 튀기며 소리 내는 것을 따라 하기도 하면서 조금 더 너그럽고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된다. “You are gorgeous. You are so adorable.” 아기에게 “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눈을 마주치며 축복의 말을 건네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말이 그들에게 되돌아 감을 느꼈다. 어느새 아름답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림 guka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라는 시 구절을 좋아한다.(장석남 시인의 시, 「그리운 시냇가」 중에서) 콩 한쪽을 나눠먹듯 웃음도 반반씩 나눌 수 있다니. 아니, 행복이란 온전한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절반을 비워두는 것이란 걸 배우게 된다. 다정한 미소를 건넴으로 우리는 웃음을 나눠가진 ‘사이’가 되고 그 틈으로 추억이 싹튼다. 그리고 이렇게 주고받은 다정함의 경험으로 아기들은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지도 모르겠다.


2020년 전 세계가 코비드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을 때, 뉴질랜드는 락다운을 통해 마트, 병원, 주변 산책 외에는 모든 움직임을 제한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도, 친구를 만나 함께 놀 수도, 심지어 바로 옆 집에 놀러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따분함을 느낄 아이들을 위해 사람들은 창문가에 곰 인형을 꺼내 두었다. 유명한 동화책인 '곰 사냥을 떠나자(We are going on a bear hunt)' 내용처럼 아이들이 산책 길에 곰 인형을 찾으며 무료함을 달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거대한 곰, 자그마한 곰, 하얀 북극곰, 까만 판다 곰, 무지개 빛깔의 곰 등등 정말 곰 인형이 없는 집이 없구나 놀랄 정도였다. 아이들은 곰 인형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가족들에게 자신이 찾은 인형의 숫자를 말하며 들떠했다. 다정한 마음에 형체가 있다면 바로 저 복슬복슬한 곰 모양일 거라고 확신했다. 모양과 색깔은 저마다 다르지만 자세는 똑같았다. 모두 집 안이 아닌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다정한 무언가를 하는 건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부터 해보자고 마음먹는다. 우리 주변에 가장 작은 것을 발견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작은 사람을 찾는 것부터. 그 바라봄 자체로 용기를 얻는 이가 분명 있을 테니까.  


글/사진 장혜영, 그림 guka(https://www.instagram.com/madeinguka/)




뉴질랜드 살이 5년차인 작가가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담은 뉴스레터 <다정한 시선>을 이메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위 에세이는 12월 4일(월) 발송한 뉴스레터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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