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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베드로 Feb 03. 2021

아침 단상

빗소리에 눈을 떴다. 겨울비 치고는 꽤 많은 양인 것 같다. 조용히 내리던 비가 다소 강해지더니 이내 굵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소리조차 요란하다.


주위는 아직 껌껌한데, 앞동 아파트엔 하나 둘 조명등이 켜지며 누군가의 새벽 출근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접촉이 잘못된 듯한 어느 승용차에서 울리는 경적소리가 길게 아파트 전체에 퍼지며, 빗소리와 함께 우리 모두의 새벽 선잠을 흔들고 있다.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새벽이 남들보다 훨씬 빠르다. 내가 농군이었다면 아마 꽤 부지런한 동네 이장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참 후, 주위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고단한 이웃들의 하품소리와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리는 듯, 아침이 조용히 들어선다. 빗소리는 조 금씩 잦아들고 선잠을 깬 아이 울음소리가 이제 막 훼를 치는 닭 울음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하늘은 아직 옅은 먹물빛 그대로인데, 가까운 산자락으로부터 내려온 미명이 어둠을 비집고, 엉거주춤 제자리를 찾으려 접근한다. 이 무렵 비로소 인적의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하고, 나는 습관처럼 창문을 열어젖히고, 묵주 쥔 두 손을 모아 아침 기도를 드린다.


흩어지려는 마음의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아 그냥 막연한 기도가 될지언정,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만을 바랄 뿐이다. 묵주 한 알 한 알에 박힌 장미 송이의  향기가 나에게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분의 사랑으로 다가서기를 바라며, 정성을 담아본다. 쉰 송이의 장미가 한 다발의 묶음이 되고 나서야 기도는 끝나고, 비로소 나의 아침도 시작된다.


이때쯤 아내가 눈을 비비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이어서 20kg의 쌀 봉투의 마지막 몇 알의  알갱이가 봉투를  빠져나오는 소리가 날 때쯤이면 그녀의 손놀림 또한 덩달아 바빠진다.


매일 아침 유치원 가기를 싫어하는 아이와 할머니와의 승강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파트 광장을 떠들썩하게 하고, 자동차 문 닫는 소리와 함께 그 모든 소리가 점점 귓전에서 멀어지면, 아파트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연이어 출근하는 젊은이들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아파트 복도로 이어지면, 아침은 이미 이 만큼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어느 듯 비는 그치고 지상주차장의 승용차들이 빠져나갈 무렵 어린이 놀이터엔 곰실곰실 아이들이 모여든다.  적요했던 아파트도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다.


이렇게 생동하는 또 하나의 새날을 주신 그분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할 뿐이다. 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아침을 열어가는 모든 이들이 보람 있고, 알찬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20.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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