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성 Jul 08. 2020

엄마 말씀 잘 듣는 그 아이

 내가 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중,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 있다. 이 아이는 내 수업에 올 때 헐렁한 태권도 도복을 입고 오기도, 여느 학생들처럼 평범한 옷에 백팩을 메고 오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실내화 가방 같이 생긴 가방을 한 손에 주렁주렁 들고 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학생 수가 적은 학원이다 보니 한 명 한 명에게 비교적 많은 관심이 가기 마련이라, 그 아이와도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사연을 들어보니, 모든 평일에 내 수업을 들으러 영어 학원으로 오는데 월·화에는 피아노 학원을, 수·목·금에는 태권도 학원을 들렀다 온단다. 물론 아침부터 3시 정도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서 말이다. 저녁에 집에 가서는 밀린 숙제들을 할 테고. 


듣기만 해도 내가 다 숨이 차는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 하면 힘들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힘들 때도 있고 괜찮을 때도 있고 그래요." 


라고 해맑게 대답한 것이었다. 옅은 미소는 '이제는 그냥 생활이 되었고, 어차피 벗어날 수도 없고'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목에 짖음 방지기를 채운 강아지가 전기를 받아 괴로워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별 상황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안타깝다. 


물론 그 아이가 좋아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니 곧바로 섣부르게 판단은 하지 않았지만, 곧이은 '엄마가 시켜서 계속해야 한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그 아이의 의중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어서 말하길, 


 "엄마가 어릴 때 못 했던 것들이라고···"  


 "그래서 네가 해 봤으면 하시는 거야?" 


 "네."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부모의 어린 시절 못다한 한을 자식으로 하여금 푸는 것. 자식이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게 해 준다거나, 다른 거 말고 공부만은 열심히 시킨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그 한이 풀린다고들 한다더라. 부모로서나 자식으로서나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정말로 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런 듯했다.  






그 아이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단연코 가장 열심히 하는 학생임과 동시에 가장 착한 학생이다. 벌써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은 4년씩이나 성실히 다녀서, 우리 학원 위층의 피아노 학원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는 무슨 곡인지 척척 알아맞히고, 도복을 입고 올 때면 허리에 끝이 살짝 닳은 새까만 띠를 자랑스레 매고 온다. 


다름이 아니라 그 아이가 '착해서' 걱정이 된다. 학원 밖에서 어떨지는 몰라도 적어도 엄마, 아빠 말씀 무조건 잘 들으면 우리나라에선 착한 어린이가 되지 않던가. '엄마 말씀 잘 듣는' 그 착한 아이의 한은 누가 풀어주나?

매거진의 이전글 착하게만 살면 된다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