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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Jul 27. 2020

백수 생활 후기

"대한민국에서 백수로 산다는 것은"

 작년 12월 31일, 인턴 계약 기간 만료를 기점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그 어떤 신분도 소속도 없는 백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홀가분했다. 제약 없이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볼 수 있었고, 공부해보고 싶었던 것을 자유롭게 공부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학자금의 늪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오히려 행복했다.


물론 그 홀가분함과 행복이 오래 가지는 못 했다. 하고 싶은 일과 공부는 돈이 되지 못 했고, 모아 놓은 돈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일자리와 소속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불안감이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와 비교를 한 적도 없고, 금수저 친구와 비교를 한 적도 없는데, 그저 대한민국의 백수라는 이유로 허무함과 자괴감, 그리고 대상 없는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지금도 백수 생활은 지속 중이다. 그런데 나는 하필 이 시점에, 백수로 살아본 '후기'를 남기고 싶어졌다. 첫째로는 지금 취업을 위해 특별히 애쓰고 있고, 나를 괴롭히고 있던 일들이 조금은 잠잠해져서 조만간 이 생활을 탈출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이다. 진정한 백수일 때의 내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둘째로는 미래에 성공한 후의 내가 이 글을 보며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상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성공이 너무 오래 걸려서 '백수 생활 후기 2편'을 발행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1. 현실이 야속하다


어떤 일을 할 때, 중간 경과를 확인하지 않고 괜스레 마지막에 한꺼번에 확인하고 싶은 심리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일을 하는 도중에 실망하여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고, 마지막에 더 큰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꾹 참고 뒤집어본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오히려 더 크게 실망한 경험도 많을 것이다.


내 대학 생활이 정확히 그랬다. 힘들었지만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끝에 웃는 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지속했고, 휴학 한 번 하지 않았으며, '나를 위한 선물'이란 것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분명 이 시기가 끝났을 때의 나는 훨씬 여유로울 테니까, 그때 충분히 쉴 수 있을 것이고, 그때 나를 위한 큰 선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며 대학을 졸업했다.


나의 글 중 하나인 <이제는 인생을 즐기기로 했다>에서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그 무엇도 없다'라고 한 것처럼, 내가 기대한 '선물'은 역시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백수 생활을 버티기 위해 몇 년 간 모아놓은 생계비를 아껴 사용해야 할 뿐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속상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은 여전히 야속하다. 차라리 내 삶이 <트루먼 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내가 백수가 되고 나서 가장 지속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2. 모든 것이 서럽다


3개월 전, 부족해진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식으로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었다. 학생 때 하루 종일 식당 홀과 주방에서 뛰어다닌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저릿해서, 이번에는 조금 지적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었다.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 대한 원장의 태도였다. 일을 시작하니, 아무 이유도 없이 나에게 푸대접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투명 인간 취급을 하기도 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싶으면 사소한 트집을 잡아 나를 혼내려는 것이었다. 원장 한 명 때문에 일을 나가기가 버거웠고, 일을 나가서도 원장이 나의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쓴소리를 할까 봐 긴장이 될 정도였다. 


게다가 임금마저 체불되기 시작했다. 원장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구두로 약속한 시급의 절반 수준의 급여를 지급했고, 심지어 이는 최저임금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결국 나는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만을 떠안은 채 얼마 전 퇴사를 하게 되었다. 괜히 이 뜨거운 여름에 밀린 돈 받겠다고 노동청만 왔다 갔다 하게 되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찾아가서 싸워야 한다.


직장에서 사람 문제 등으로 골을 썩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이는 확실히 누구에게나 큰 스트레스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믿을 구석 없는' 입장에서 겪는다면 의미가 조금 더 크다. 내가 원장에게 푸대접을 받고,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길래'이다. 이미 '백수'라는 포장지만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의 나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스트레스 이상으로 나를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저 거슬리는 것으로 치부하고 익숙해질 수 있을만한 스트레스 요소들도, 백수에게는 며칠 동안 잠에 들지 못 하게 하는 서러움이 된다. 이것은 '취업 준비', '이직 준비' 등의 단어들로 포장된 모든 종류의 백수들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백수가 되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니 온갖 것들이 서럽고, 서러우니 자존감은 더 낮아진다. 백수라는 사실이 백수를 탈출하지 못 하게 하는 것 같다.




3. 정해진 게 없어 불안하다


돼지꿈을 꿨다고 로또를 사고 나서 인생 역전을 기대하는 것처럼, 나는 '이쯤 했으면 이제 곧 편히 살게 해주지 않으려나'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곤 한다. 그 어이없는 생각을 유일한 근거로 삼아서는, 나와 가까운 모든 사람들에게 '30살 안에 성공하겠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당연하지', '넌 성공할 것 같아' 하며 껍데기뿐인 내 말에 동조해준다. 나는 그런 긍정적인 대답들에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성공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에 비는 소원과 별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성공할 거야'라고 떠들고 다니는 나는 그 누구보다 불안해하고 있다.


불안은 세상 모든 걱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나는 정해진 것이 그 무엇도 없는 이 시기에 끝도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서울역 앞에서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눕는 나의 모습을 몇 번이나 그리기도 했지만, 부자가 되어 벤츠를 끌고 다니는 상상은 셀 수도 없이 많이 했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어떤 상상을 해도 그것이 실현될 것이란 그럴듯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백수라는 타이틀은 상상과 망상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게끔 만들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간다


매년 생일마다 그렇게 소원을 빌며 촛불을 불었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 이를 놓칠세라 재빨리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이뤄진 소원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년 생일에도 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빌 것이고, 별똥별을 보면 눈을 감을 예정이다. 


야속한 현실은 열심히 살아야 할 명분이 되기도 하고, 서럽다는 것은 성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며,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희망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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