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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Jul 24. 2020

직장인이 될 것인가,
직업인이 될 것인가

 소속이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서울대학교 간판은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돋보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흔히 한국에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다른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포괄적인 평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 삼성전자라는 직장은 그 사람의 관련 역량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흔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라는 섣부른 평가를 낳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 소속이란 그 사람을 감히 판단할 수 있는 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소속이란 특징을 빼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열심히 살아왔으며, 누가 더 매력적인 사람인지 단시간에 판단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소속이란 특징을 빼면 내가 좋은 사람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거나, 내가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결론으로 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소속이란 그 사람의 인생의 성취도를 대체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마치 20살 학생들이 오직 대학교 간판이나 전공 등의 지표에 따라 그들의 '학업 성취도'가 아닌 '인생 성취도'가 평가되는 것과 같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의 저자 김호는 직업인을 '직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일을 통해 그 가치를 구현하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내가 취업 준비를 했을 당시 이런 생각에 빠진 적이 있다.  



"내가 지원하는 일자리들의 공통점은,
누가 그 자리에 앉으나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점이구나." 



내가 그 일자리에 최종 합격했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그저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직원 중 하나'였겠지. 나는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서는 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흔한 어학 성적과 자격증 따위로 만든 특별하지도 않은 특별함이 아닌 나만의 것을 내세우고 싶어졌고, 소위 자소설에 적히는 거짓 경험이 아닌 보다 진실된 경험을 쌓아가고 싶어졌다. 


물론 그 특별함을 타고난 재능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러기에 쉽지 않은 나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기회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빛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빛을 맞이 할 준비는 항상 되어 있어야겠다고. 삶은 '도전'이라는 전제 하의 '인디언 기우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0명의 사람은 100개의 지표에 따라 성취도가 평가되어야 한다. 그 지표는 자신이 만들어 내야 하기에, 나 또한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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