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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Aug 06. 2020

슬픈 순간 위에 내가 있었다

슬픔이 나를 만든다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집에 외로이 발을 디딜 때면, 계기도 없는 슬픔을 맞이할 때가 있다.


몸에 묻은 바깥공기를 털어내고 잠자리에 몸을 맡기면, 

이불을 대신해 묵은 고민들과 걱정들로 몸을 덮는다.


흐르지도 않는 눈물이 속에서 응어리가 지고, 

은은한 달빛에 의존해서 바라보는 어둠은 시커먼 속을 꺼내 쳐다보는 것만 같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슬프고 싶은 날이, 슬퍼야 하는 날이 있다.






 타닥, 타닥. 탁.


축하드립니다. 김진성님께서는 2020 ○○공사 신입직원 채용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내가 합격이라고?"



저번 주 금요일, 갓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금융 기업의 서류 전형을 기적적으로 통과했다.

기대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합격' 글자를 본 찰나의 순간에는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기뻤다.


그런데 사실 서류 전형은 새발의 피이고,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필기 시험과 1차·2차 면접이라는 덩치 큰 문지기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사실상 내가 최종 합격을 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렇기 때문에 '꼴랑' 서류 전형 합격을 명분으로 못 먹던 치킨을 시켜 먹진 않았지만,

맘 같아서는 세상 사람들을 모두 불러 잔치를 하고 싶었고, 손에 확성기를 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나에게는 '서류 합격' 이상의 의미로써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 이력서는 빈칸이 많다. 그나마 채울 수 있는 것은 기본 정보와 학력, 

그리고 졸업하려고 딴 무의미한 자격증 하나 정도.

아, 제일 당당하게 적는 곳은 병역 부분이다. 나름 군대는 멀쩡히 다녀왔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민망하리만치 비어있는 해외 경험, 수상 경험 등이다.

요즘 다 한다는 공모전이나 어학연수, 교환학생 같은 건 다녀온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단, 나에게는 사치에 가까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집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를 3개 정도 병행하며 대학교를 다녔는데, 이것이 변명거리라면 변명거리다.

낮의 쪽시간에는 컴퓨터 수리를, 저녁에는 설거지를, 

집에 돌아온 늦은 밤에는 공부를, 그리고 주말에는 편의점을 향했다. 


한창 그렇게 바쁠 때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흘리고 있는 땀들은 이력서에 적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나는 동아리 활동으로 공모전에 나가는 친구들과, 

휴학하고 외국을 나가는 친구들을 시야에 담고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는 구멍이 많다.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야 했던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20대의 어린 나이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익숙해져 괜찮다가도, 문득 눈물이 흐르던 날들이 많았다. 피어오르는 슬픔은 걷잡을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떠다니는 먹구름들을 밖으로 꺼내보리라' 하고.

 


 내 20대 청춘은,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흘리던 땀과,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 흘리던 눈물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금, 돈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많은 것들이 일주일에 세네 번은 나를 스쳐가곤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깃집에서 매일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세면대의 거울로 비치는 걸레를 빨고 있는 내 모습이 새삼 어찌나 불쌍해 보이던지,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처럼 슬펐다. 마치 서로를 동정하는 것처럼.

(이하 후략)

2020. 02. 24.



그런데 그 글들에 적힌 내 땀과 눈물들은, 이력서에는 투명하게 적힐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흔하디 흔한 '불합격' 글자가 그리도 억울했다. 


수십 번의 불합격 후, 몇 달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서야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력서는 여전히 하얬지만, 나는 자기소개서에 솔직함을 담기로 결심했다.

"군대 얘기, 아르바이트 얘기 적지 말라고? 나는 그게 전부인데 어쩌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첫 서류 전형 합격'을 얻어냈다. 그것도 내가 가고 싶은 근사한 기업으로부터.


몇몇 친한 친구들과 가족에게만 자랑했지만, 그들에게도 분명히 말했다. 

어차피 다음 전형에서 떨어질 게 뻔하다고. 뭐가 된 것도 아니고, 내가 백수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너무나도 기쁘다. 나를 인정해주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

그래서 나는 더욱 나아가고 싶어졌다.


나의 초라한 모습에, 너무나도 허전한 이력서에, 어느 곳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끝없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그래서 속절없이 슬퍼했다.


여전히 무언가를 이루지는 못 한 지금, 그 슬픔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고 확신하고, 자부한다.

나는 '슬픔'을 두고 '나를 완성시키는 것'이라 한다.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집에 외로이 발을 디딜 때면, 계기도 없는 슬픔을 맞이할 때가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슬프고 싶은 날이, 슬퍼야 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들 위에 지금의 내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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