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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Mar 10. 2022

아무튼 나약한 사람

우리는 아무튼 나약하다.


 내가 그때 그런 말을 왜 했지. 왜 짜증을 냈지. 왜 그렇게 하지 못했지. 머릿속은 몽글몽글 거품 마냥 곧 꺼질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조금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 거품은 톡, 하고 사라질 터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그것들이 영원할 줄 알았을까요.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반항이라도 하고 싶은 듯 잠시 밀려오는 파도에 미련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내가 눈 감은 사이 해가 뜨면, 어제의 나는 증발되는 듯합니다. 오늘의 나로 새로 태어나 끊기지 않을 것 같던 어제의 고민과 자책들에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어제 왜 그렇게 골똘했을까, 생각이 들면 빈 공기에 홀로 씁쓸한 코웃음을 치며 없던 일로 간주하곤 합니다. 해가 뜬 아침의 나는 이성으로 둔갑한 철학자가 되므로 어젯밤의 나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저 실수로 치부했습니다. 나는 24시간 중 1시간만 감성에 투자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확신에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시 한눈팔아 나의 내면에 시선을 돌려버리는 순간 거품은 다시금 차오릅니다. 사실 나란 인간은 그 어떤 비교 대상도 필요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동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영양가 없는 패턴의 첫 단추를 꿰었을까요.


그로부터 내린 결론은, 나는 '아무튼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설득력 있어 보이기 위해, 숨은 내향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법 없이 살 것처럼 보이기 위해. 외면을 위해 애쓰느라 땀으로 윗옷을 전부 적실지언정, 아무튼 바꾸어지지 않는 나약함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는 훨씬 상처를 잘 받고, 보이는 모든 것이 대수롭고, 사람들의 시선을 따가워했던 것입니다. 감추려 한들 소용없었다는 것을, 편의점에서 신분증 검사도 하지 않는 나이가 되니 알아채었습니다.


이로써 나는 인정합니다. 내 머리와 마음속에 완전히 맞춰진 퍼즐 조각들은 그리 많지 않음을. 내가 논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이 아닐 수 있음을. 뇌가 아닌 마음이 했던 고민들은 실수가 아니었음을. 어차피 이성과 감성은 오레오와 우유니까요. 먹다 보니 오레오가 조금 남아도, 우유가 조금 남아도 상관없을 듯합니다. 어느 하나만 잔뜩 남아 산을 이루고 있지만 않으면요.


옳은 삶을 위해 100 만큼의 깨달음이 필요하다면,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1 만큼은 덜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른다고 말할 때 비로소 안다고 공자 역시 말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취급주의 유리조각들을 부정하는 순간 언제 그 유리가 깨져 생채기를 낼지 모릅니다. 이것은 나와 같은 일개 글쟁이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소신이 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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