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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성 Mar 15. 2022

봄이 왔지만


 언뜻 스쳐가니 봄이다. 두꺼운 솜덩이가 몸을 감싸고 있던 것이 어제 일인데, 눈을 잠시 감았다 뜨니 방바닥에 내려놓은 생수병이 미지근하다. 제자리 찾아간 듯 처마 고드름은 녹아있고 웅덩이에는 다시 구정물이 채워졌다. 시간이 흘러감에 야속하였으나 이내 받아들인다. 이제 일기장에 '2021년'을 쓰고 다시 지울 일이 없다. 22라는 숫자가 각인될 즈음이다.


나는 두렵다. 날 기다려주지 않는 모든 것들이. 두어 달 전만 해도 나무는 영원히 앙상할 것 같았다. 들기에도 무거운 검정 외투가 영원히 옷걸이에 걸려있을 것 같았다. 나무에 잎이 열리고 외투가 고이 접히는 찰나에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차가운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는 그 어떤 이파리도 열리지 않았기에. 그 어떤 외투도 정리되지 않았기에. 현관을 열고 나가면 이제 다른 색감의 공기가 나를 반기는 와중 나는 아직 시린 공기를 머금고 있는 듯하다. 나는 미처 다 뱉지 못하였는데.


심호흡을 한다. 나는 아직도 겨울에 머무르고 싶음을 부정하고자. 내뿜는 입김은 그저 날숨이었을까, 한숨이었을까. 나는 분간하지 못하였다. 분간하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계절을 만끽하지 못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달려가는 시계 초침을 차마 따라가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손에 쥔 시계는 이미 한 차례 느려져 걷잡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날짜를 헷갈려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봄은 왔다. 간지러운 봄바람에 나를 태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봄을 그리워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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