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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30. 2022

네, 터키에 혼자 왔습니다 8 (마지막)

2022.11.12 (앙카라)


8일차


5:30/6:30/7:30

(5:30 기상/6:30 조식/7:30 출발)


조식은 안먹었다. 어제 어두운 식당에서 먹었던 건,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앙카라로 이동한다. 앙카라 인, 이스탄불 아웃이면 좋았을텐데. 앙카라에서 출국해야 하기에 다시 앙카라 공항까지 먼 길을 이동해야 한다. 오늘 하루는 앙카라로 이동하며 하루를 보내게 생겼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깥. 콘스타티노플 성벽이 여기저기에 옛날의 영광을 아쉬워하며 남아있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의 잔해


성벽의 잔해 2


1453 파노라마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역사는 터키의 자랑이다.(침략과 학살, 정복의 역사를 자랑하는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박물관에 그대로 구현해 놨더라.


약속의 땅,

세상의 중심,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유럽,아시아,흑해,지중해를 모두 접한 위치의 알짜배기 땅으로, 이 곳을 점령하는 제국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 분명한 완벽한 장소였다. 그래서 이 곳을 점령하기 위한 많은 전쟁이 역사 속에 존재했다. (지금은 터키가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중심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은 3중으로 된 23km의 성벽이 둘러싼 완벽한 요새였다. 23개의 군대가 기나긴 역사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 유명한 몽골군 조차도 함락에 실패한 난공불락의 성. 콘스탄티노플은 그 성벽의 완벽함에 힘입어 수도를 무려 1100년 간 유지했지만, 결국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오스만 제국은 과연 어떻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을까?

이 사진을 보자. 콘스탄티노플의 완벽하고 꼼꼼한 성벽을 잘 묘사해놨다. 로마는 해군이 강했으므로 3면이 바다인 상황은 방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3중의 성벽으로 막혀져있었는데, 그나마 약한 부분이 위 사진의 좁은 해협(골든 혼)쪽 성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좁은 해협안으로 배를 끌고 들어갈 수 없었던 오스만 제국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내게 된다. 바로 배를 들어서 육지를 통해 옮기는 것이었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통했다. 좁은 해협으로 군사를 집중시킨 오스만 제국은 결국 약한 성벽쪽을 공략하여 수비를 분산시켰고, 그렇게 1100년을 버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그게 1453년의 일이었다.


이 사진의 하얀 점선 부분을 따라 배를 들어 옮겼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1


콘스탄티노플 함락 2


콘스탄티노플 함락 3


오스만 제국은 엄청난 크기의 대포를 사용했는데, 바로 아래 사진의 대포이다. 이름은 '바실리카' 포신만 8m, 포탄 크기가 지름 2.5m, 무게 0.5t으로 어른 몸통만하다. 대포알은 1.6km를 날아간다. 발사하면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의 동물들이 전부 쓰러질 정도였다니, 무시무시하다. 사이즈와 폭발이 큰 만큼, 세 시간에 한번만 발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짧은 간격으로 발사할 경우 포신 자체에 균열이 생기는 등 내구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을테니. (결국 이 대포는 균열로 인해 발사 도중 폭발하기도 했다.) 이 대포 70개가 밤낮으로 두 달이 넘게 동시에 발포하며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바실리카


바로 이 콘스탄티노플 함락 작전을 지휘한 술탄 메흐맷.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초상화를 전시해 놨더라.

주로 방어하느라 바빴던 나라(조선)의 후손으로서, 무력을 사용한 침략과 정복이 곱게 보이진 않는다.(로마가 바른 나라였다는 얘긴 아니다, 또한 기독교의 몰락에도 관심없다.) 제국주의는 늘 세계 평화를 깨뜨리며, 그 후손들은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결국 민족주의자로 변모, 전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국 침략 및 정복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와 동일하다.)

술탄 매흐맷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당시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1세. 훌륭한 인품을 가진 교양있는 지도자로서 후세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그는 끝까지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라, 시민들과 운명을 같이 했다. 터키는 잔인한 '정복자' 술탄 매흐맷을 조국의 자랑으로 여기지만, 나는 오히려 콘스탄티누스 11세에 더 마음이 간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시대에 순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 뿐, 절대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콘스탄티누스 11세


점심

버스를 타고 2시간 반 달려서 휴게소에 들렀다. 점심은 바로바로 또 케밥!

소고기 케밥

밥,야채,소고기,감자튀김


베이퍼자르

2시간 버스를 타고 베이파자르로 이동했다.

오스만 전통 가옥들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동네로, 오스만 제국 당시에 군사 거점이었기도 하다. 주작물인 당근이 유명한데, 터키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당근이 유명하다는 걸 잘 알겠구나.


오스만 옛모습 그대로 동네다.

광장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 했더니 밝은 얼굴로 커피믹스를 타서 가져다 주더라. 괜찮다. 이런데서는 커피믹스도 맛있다. 나도 웃으며 땡큐 라고 답해주었다.

베이파자르의 커피믹스


불이 났는지 갑자기 저쪽에서 연기가 솟고, 소방차가 달려 간다.

터키가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잠시 무서웠다.

치솟는 연기, 점점 연기가 짙어졌다.


다시 앙카라로 1시간 30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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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한 팀으로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패키지는 처음이다.) 이기적인 무례함을 견디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제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나이를 지났나보다.


이제는 더이상 단순히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참아내며 패키지 여행을 다니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자제력이 부족해져서 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올바른 원칙과 가치관으로 세상에 이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무례하고 이기적인 타인들을 멋대로 평가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남과 비교하지 말자.

단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사색하며, 존경할만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 퇴보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여행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수고해주셨던 에어 프레미아 승무원분들 정말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간다.

안녕 터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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