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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an 19. 2023

타운홀 미팅과 사다리 타기

수리수리마수리

미생


김부장!
요새, 조직원들을 전체회의실에 모아놓고 발표도 하고 미팅하는게 유행이라며?
우리도 그런 것 좀 해보자.
준비해봐!


이런 곳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저기 스타트업이나 선망의 대상인 IT기업에서 직원들을 전부 큰 회의실에 모아놓고 멋지게 대화도 하고, 화면에 PPT도 띄워놓고 하니까 그럴듯 해 보인다. 그런거 하고 싶은거다. 문화는 제조업인데 IT기업이라는 쇼잉하고 싶은거다. 스타트업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


소위 말하는 '타운홀 미팅',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은 국회나 지역 의회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이 지역구 주민과 만나는 방법의 하나로 주민들이 흥미를 가지는 주제에 대하여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특정 입법이나 규정을 토론하기 위하여 열린다. 활발한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는 기간 동안에 타운 홀 미팅은 이의 제기나 더욱 활발한 토론을 위한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 (출처:wikipedia)


’회식‘ 비슷한 행사를 기대한 헤드는 운영팀장을 부른다. 조직원들 전부 모을 수 있는 넓은 장소를 마련하라고 한다. 시간도 잡고, 초대도 하고, 다과도 준비하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게 빠졌다.


바로바로,

컨텐츠

내용이 없다. 헤드는 궁금하다. 도대체 전부 모여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거야? 유튜브도 뒤져보고, 인터넷 글도 읽어본다. 소통하는 자리란다. 이름도 '타운홀 미팅'이라고 그럴듯하게 부른다. 방향과 비전 그리고 현재 전체 조직의 상황을 극도로 투명하게 공유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란다.


누가?

헤드가.

헤드가 직접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고 공유한다. 그리고 토론한다.

내가?
나보고 하라고?


헤드는 운영팀장인 김부장을 부른다.

김부장!
내 방으로!


헤드는 김부장에게 말한다.

내가 할 순 없잖아! 회사 내에서 위치도 있고말야.
식순도 마련하고 발표 자료도 준비하게 시켜서,
그럴듯하게 좀 만들어봐.


김부장은 운영팀원을 불러모은다.

이번에 타운홀 미팅을 할껀데,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할 내용이 필요해.
그러니까 각 팀에 연락해서 발표자 한명씩 뽑아서 올리라고 해.


발표를 할당 받은 실무 조직은 황당하다.

갑자기 적당히 흥미있는 발표자료 만들어서 전사 미팅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사람을 지정해서 올리란다.

실무도 바빠 죽겠는데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냥 대충 막내를 시킨다.

막내야 니가 고생 좀 하자.
그냥 적당히 재밌는걸로 PPT준비해.
윗분들 좋아하실 내용으로.
'MZ세대의 맛집 선택법' 뭐 대충 이런거 있잖아.


막내는 황당하다.
온갖 허드렛 일은 죄다 나한테 시키면서,
이렇게 큰 발표는 또 나보고 하란다.
부담갖지 말란다.


행사 당일.

식순은 ‘헤드님 인삿말’ , ‘1팀 홍길동 사원의 신입사원 생존기‘ , ’2팀 이순신 사원의 우리팀 MBTI’ , ‘3팀 김영수 사원의 팀장님 팀장님 우리 팀장님'

운영팀 막내 사원이 마이크를 들고 앞에 섰다. (저 친구도 고생이다.)

자 그럼 우리 헤드님의 인삿말이 있겠습니다!


헤드님은 ‘여러분들 위해서 이런 자리 어렵게 만들었다. 나때는 말이야 이런 자리도 없었다. 재밌게 즐기라’ 고 하신다. 저 먼 옛날 교장선생님 훈화하시던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교장 선생님은 혼자 한 30분을 말씀하셨는데, 다들 ‘언제 끝나지’, ‘ 오늘 학교 끝나고 친구랑 뭐 먹지’ 이런 딴 생각만 하는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뜨거운 뙤약볕은 덤.


사원들이 차례차례 발표를 한다.

발표가 끝나면 헤드님과 양 옆의 팀장들은 인자한 얼굴로 관람하시다가
박수를 치고 ‘고생 많았다’고 멘트를 날린다. (아마 이 자리를 학예회 비슷한 걸로 여기나보다.)


이제 마무리.

(응? 질의 응답에 이은 격렬한 토론은?)


자 그럼 이번 타운홀 미팅은 이렇게 마치겠습니다.
유익한 시간 되셨나요?

다음달 타운홀 미팅 발표자를 정할텐데요,
혹시 자원자 계신가요?
없나요?
그럼 '사다리 타기'로 정하겠습니다.


(출처: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85158)


타운홀 미팅에 참가한 직원들은 모두 경악한다.

사다리 타기로 정한다면 내가 발표자가 될 수도 있는거잖아.

이건 도대체 누구 좋자고 하는 미팅이지?


다들 벌벌 떠는 가운데, 화면에 띄운 사다리 그림의 빨간점이 기괴한 음악과 함께 내려간다.

당첨된 팀에서 '하..' 탄식이 흘러나온다.

다행히 걸리지 않은 팀에서는 박수가 나온다.

헤드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박수가 나오니, '다들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한다.)


당첨된 팀에서는 모두 막내를 쳐다본다.
‘막내야 니가 고생 좀 하자.’
막내는 쓴 웃음을 지으며 가슴 속에 품어둔 사직서를 만지작 거린다.


타운홀 미팅의 핵심은 질의 응답이다.

극단적으로 솔직한 의견 교환이야말로 타운홀 미팅의 백미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조직의 방향과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해야 한다.

저런 '전국 노래자랑'식 진행과 문화에서 질문이 있을리가 없다. 이건 절대 명백하다. 아무도 질문 안한다.

'문화' 와 '조직 분위기'가 그대로인데 타운홀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만 펼쳐놓으면 될리가 없다.

헤드가 본인 하고 싶은 말만 할꺼면 타운홀미팅 이라고 하면 안된다. 그냥 ‘사장님 말씀 지시전달회’ 라고 부르면 된다.



2011년 4월 페이스북 본사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 경제와 이민정책 그리고 의료보험 등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졌다.


핵심은 질의 응답이다.

질문을 받아야 한다. 

‘질문 없나요?’ 라고 물어봤는데 아무도 질문을 안한다?

그럼 타운홀 미팅은 그냥 포기하세요.

타운홀 미팅을 할 수준의 문화가 아닙니다.


혹시 리더가 '최고 존엄'의 자리에 군림하며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게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건 리더 때문입니다. 리더 한 마디에 벌벌 떠는 조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더가 사사건건 개입하여 모든 서비스와 정책을 난도질하는 마이크로매니저일 가능성은 더 높습니다. 리더가 전 회사에서 데려온 온 십상시 낙하산 임원들이 라인을 만들고 딸랑딸랑 정치질하며 활개치는 중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솔직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 사진을 보시죠. 대통령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듣고 있는 참가자들이 있습니다. 저 정도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고선, 아부성 멘트나 미리 약속된 질문이 나올 뿐입니다. 평소에, 조직원들이 헤드님 앞에서 저렇게 편한 자세로 대화를 나누고 있나요? 혹시, 버릇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문화를 먼저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리 애자일이다 스타트업이다 판교다 외쳐봤자 소용 없습니다.


문화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키는 '사람'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권위적인 리더가 작은 것 하나까지 마이크로매니징하는데, 조직원들이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일 할 리 만무하다.

낙하산으로 꽂힌 리더의 수하들이 정치질하고 있는데, 문화가 바뀔리 없다.

겉으로만 수평적으로 일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임원들 자리보전을 위한 관심과제만 내리꽂는 문화에서 실리콘밸리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생각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도 타운홀 미팅은 어김없이 열린다.

다만, 참여자 전원의 모든 관심은 마지막 사다리타기 뿐이다.

제발 우리 팀만 안 걸리길.

수리수리마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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