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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Feb 23. 2023

로블록스, 나도 해보자

우리집은 아들과의 신경전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남자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집들은 공감하리라 믿는다. 최근에는 게임이 문제가 되어 사건이 일어났다.


이슈의 중심에 선 게임은 바로 '로블록스'


로블록스


한 번 마우스를 붙잡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하는 아들.

각종 숙제와 학원 등 교육을 신경써야 하는 아내.

그리고 어떻게든 가정을 평화롭게 유지하고자 하는 나.


'게임'을 중심으로 이 셋 사이에 트러블이 계속 일어났다.

의견 차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평행선.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집 '온라인 게임 플레이 원칙'을 만들기로 했고,

협의를 위해 가족 회의를 진행했다.

1시간 가량 회의를 통해, 게임을 하기 위한 각종 조건과 1일 허용 시간 등이 그라운드룰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운영해본 결과 어쩐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의견 차이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짜증을 내는데는 이유가 있을거다.

나는 사실 '게임'을 하지 않는다. 대학생때까지 스타크래프트를 해 본 것이 전부고, 그 이후로는 십수년간 게임을 하지 않았다.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해 봐야, 알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 했듯 멀리서 보고 판단하는 것과, 직접 하고 느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52


아래는 '게임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진행한 태스크 들이다.

맥북에서도 되나? 확인했다. 된다고 한다. 게임을 설치했다. 로블록스. 회원 가입을 하고, 닉네임을 정했다.(역시 닉네임 만들기가 제일 어렵다) 아들 계정을 친구추가했다. 유튜브로 로블록스 관련 영상을 몇가지 시청하며 조작법과 유의해야 할 사항 등을 학습했다. 테스트겸, 게임을 혼자 몇 번 진행해봤다. 기본 조작은 예전 FPS와 같은데, 트랙패드로만 하려니 진행이 어려웠다. (나는 평소에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키패드 와 트랙패드 조작을 병행하기 쉽지 않다. 블루투스 마우스를 하나 구매했다. 마우스를 연결하고 몇 번의 테스트 게임을 추가로 진행했다. 어느정도 조작에 익숙해지고, 게임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나마 갖추었다.


준비가 끝난 후, 아들에게 은근슬쩍 물어봤다.

"아빠랑 로블록스 같이 한번 해볼까? 어때?"

"응? 그러던가"

아들은 시큰둥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내 착각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같이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을 해보니, 아들이 왜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짜증을 내고, 기분이 안좋은지 알 수 있었다.

역시 해봐야 알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철저하게 아들에게 '배우는' 태도로 듣고 따랐다. 협업에 나이와 연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블록스에 관해서는 아들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잘 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유튜브 몇 개 보고, 플레이 조금 해 본 초급자일 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고 지시하는 것 만큼 꼴불견은 없다.


게임을 같이 하면서 알아낸 내용(문제)들과 좋아진 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와이파이 상태가 문제를 일으켜 게임이 중단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온라인 게임 특성상, 인터넷 연결이 끊기면 진행하던 게임 매치에서 자동으로 킥아웃 되는데, 그 경우 한창 업그레이드 해놨던 갑옷과 무기 등이 모두 날아가버린다. 아깝고 화난다. 이럴 때는 '게임을 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대기실에 가서 다음 매치를 기다리는 시간도 추가된다. 그라운드룰(하루 ㅇ시간)로 인해 1분 1초가 아까운 아들에게는 마음 불편한 상황이었으리라.

우리집에 각종 온라인 기기들이 전부 붙어있는 공유기(성능도 낮다)가 가끔 힘들어 연결을 끊고, 다른 공유기로 전환하며 그 사이에 게임에서 튕겨나는 상황이었다. 이 문제는 오프라인 랜선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무선연결이 아니라 유선으로 인터넷 연결을 해 주었더니 간헐적으로 끊기는 현상은 해결되었다. 아들의 짜증내는 횟수가 줄었다.


2. 매치가 이뤄지면 경기 단위로 진행하는 게임의 특성상, 시간으로 제한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아들이 게임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그라운드룰)이 1시간 이라고 보자. 로블록스 게임 특성상 30분을 넘어가는 매치도 많고, 어떤 게임은 10분도 안되어 끝나는데 1시간이 되었다고 노트북을 그대로 덮어버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창 재밌을 타이밍에 1시간이 도달해버리는 것이다. 열심히 업글해둔 갑옷과 무기들을 두고, 승리를 얻을지도 모르는데 그대로 게임을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게임을 계속 진행하고, 부모는 '아니 1시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어!!'라고 소리칠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는, '만약 마지막 게임이 진행 중일 경우에는 해당 게임이 끝날 때까지 시간 초과를 이해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3. 아들이 게임을 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친구들을 집에 불러 같이 로블록스를 하는 것은 좋은데, 친구들도 학원과 숙제가 있으니 못 온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 때마다 실망을 많이하고 그게 표정과 태도에 드러나 집 분위기가 불편해지곤 했다. 로블록스가 팀플레이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같이 나란히 앉아서 게임을 할 경우 시너지가 나고 좋은 결과가 난다.(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친구와 같이 한 공간에서 게임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예전에 PC방에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스타를 할 때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잘하진 못했다. 그냥 친구들이 잘했던걸로. 아무튼) 내가 같이 게임을 하니, 친구와의 약속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약속이 잡히지 않으면 아빠와 하면 되니까. 불편한 상황이 많이 줄어들었다.


4.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과 대화할 주제가 하나 더 늘어서 좋다. 아들이 게임하면서 나에게 편하게 수다수다 하는 것이 좋다. "아빠! 그 에메랄드 나 주면 안돼?" 라고 물어볼때 모아놓은 에메랄드에 다이아몬드까지 다 주어도 기분이 좋다. (물론 나도 갑옷이랑 무기 업그레이드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아빠~~ 침방 왜 안했어~~ 아놔~!" 라고 나에게 구박해도 좋다. 아들이 게임을 하면서 언제 행복해하는지 조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만큼 더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PM으로 PO로 일하며 교만했던 시절. '아니 왜 저걸 못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토론하고 개선해 나가는 건, 직접 흙탕물에 뛰어들어 같이 굴러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손잡고 같이 뛰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힘들게 뛰고 고민하면, 그만큼 유대감이 깊어진다. 팀웤이 좋아지고, 성과가 올라간다. 현대 조직을 '작고 유기적인 군 특수부대의 집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능력있는 전우'와 함께 일하는 조직을 최고로 생각한다. 최전방 전투에 같이 참여하는 리더만이 인정받는다. 안전한 후방 막사에 앉아 '멋대로 판단하고 시키고 명령하는' 사람과는 전우가 될 수 없다. 전우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으로 친구가 된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 힘들다.


예전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있다.

"아니, 팀장인 나는 좋은 방안이라고 제안하고 같이 해보자고 하는데, 팀원들이 안따라오네요. 의지들이 없어요~ 답답합니다~" 그 고민에, 저자는 이렇게 물어봤다.

"팀원들이 팀장님을 좋아합니까?"

"....."

고민을 토로한 팀장은 침묵했다.

좋아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다.

존경은 더더욱 어렵다.

사람이 그렇다.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실무자들과 같이 뛰어보자. 멀찍이 팔짱 끼고 서서,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지 말고, 직접 흙탕물에 뛰어들어 같이 구르며 지켜보라. 그럼 이해할 수 있다. 단! 절대로 마이크로매니징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마이크로매니징 할까봐 불안하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어설프게 실무에 참견해보겠다고 나서는게 바로 마이크로매니징과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리처럼 일하는 전무님이 되기 싫다면 말이다.

https://brunch.co.kr/@dontgiveup/94


그들이 어떤 일을 하며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지라 티켓을 추적하며 숙지하고 이해만 해도 훌륭하다. 힘든점이 없는지 도와줄 것이 있는지 수시로 물어보고 공감해주는 것으로 완벽하다. (로블록스는 내 아들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실력도 뛰어나다. 모든 실무도 마찬가지다)


넓은 책상 앞에 앉아 주간업무 몇 줄 읽어보는 것과 실무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진흙탕에 발을 들여놓으면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법무,예산,보고,인프라,환경 등 실무와 관련없는 곳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테다. 게다가 실무자들은 각종 협의처들과 상사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감정 노동'까지 겸하고 있다. 상위직책자의 어이없는 농담에도 웃어주는 그들 아닌가. 실무자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고, 해결해주시라.


아내와 나는 아직도 게임 문제로 아들과 종종 다툰다. 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같이 해보니까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다.

좋은 가장이 되기도 어렵고, 리더가 되기도 어렵구나.

오늘도 나는 아들에게 구박을 듣는다.

"아빠~!! 수비수비!! 수비해야지~!"

알았어! 지금 달려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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