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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Oct 15. 2023

종이책을 읽으면 구닥다리인가요

리디북스 정기구독 해지의 변


해지하기 전 마지막으로 기록, 리디북스 '내 정보' 



오해하지 마시길. 876권 전부 읽지 않았다. 그냥 온라인에 쟁여놓은 책이 많을 뿐. 위 '내 정보'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나는 '리디북스'라는 서비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덕분에 미니멀라이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리디북스를 이용하기 전에는 집에 종이책이 많았는데, 싹 다 정리했다. 감사합니다. 리디북스. 덕분에 간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리디북스를 좋아하니, 리디셀렉트 정기구독을 꽤 오래 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양한 책을 편하게 읽으며 즐겼다. 그런 리디셀렉트 정기구독을 최근 해지했다. 왜 그랬는지 설명하려면, 리디페이퍼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리디페이퍼는 리디북스에서 판매하는 전자책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태플릿' 같은 건데, 이런 모양이다.

리디페이퍼 프로


가볍다. 무겁고 두꺼운 종이책을 가지고 다니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전자잉크를 사용해 텍스트를 표현하기 때문에 눈에 피로가 덜하다. 개인적으로 아이패드류로 글을 오래 읽으면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데, 이런 본격 전자책으로 독서하면 오래 읽을 수 있었다. 배터리도 오래가서 충전의 부담이 없다. 부피가 작고, 가볍고, 눈이 편한 독서기기라니 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발매하자마자 구매해서 꽤 오래(정말 오래) 사용했다.


그런 리디페이퍼를 얼마 전 처분했다.


리디페이퍼의 성능이 안 좋아서 그런건 아니다. 이건, 좋고나쁜 것의 문제가 아니다.

나랑 더 맞는 것을 차근차근 찾아가는 이야기.

취향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삶은 결국, 죽을 때 까지 커스터마이징하는 작업이니까.

리디페이퍼 정리는, 그 개인화의 과정이다.


리디페이퍼로 책을 읽으면 미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무겁지도 않고, 많은 책을 메모리에 담아서 다닐 수 있는 좋은 전자책인데, 왜 어딘가 모르게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을까. 종이책은 읽다보면 내가 이야기의 어디쯤 와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현재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책은 130/463 처럼 화면의 숫자로 표현해 준다. 누군가는 직관적이라고 하겠지만, 이게 내가 원하는 느낌하고는 다르다. '내가 이야기의 어디쯤 와 있는지 파악이 어렵다.' 나는 손에 잡히는 종이의 감촉과 두께로 파악하고 싶다. 감각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역시 이과형 인간은 아닌가보다.

나는 읽던 부분을 떠올리고 다시 되새김하고 싶어서, 앞으로 돌아가 읽는 일이 많다. 전자책으로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그러고 싶어도, 종이책처럼 휘리릭 찾을 수 없었다. 딸깍딸깍 버튼을 눌러서 돌아가는 방식은 아무래도 불편하고, 자유롭게 앞뒤를 오가며 온전히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긴 해외 여행을 갈 때도 나는 꾸역꾸역 두꺼운 종이책을 들고 갔다. 여행 준비를 하며 리디페이퍼에 몇 번 손을 댔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가방이 많이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역시 결국은 종이책이었다. ’활자를 읽는 것‘ 만큼이나 ‘종이로 만든 책의 촉감을 느끼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이 컸나보다.


결국, '손이 가지 않는다.' 는 것이 컸다.

이건 내 미니멀리즘의 정리방식하고도 연관이 있는데, 나는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 물건은 곧바로 처분해야 직성이 풀린다.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랑 맞지 않는 다는 것이고, 불편한 것을 주변에 둘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것을 주변에 두면 삶에 반드시 영향을 준다.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그 느낌은 전자책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앞서 말했지만 이건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나는 종이 냄새가 좋아서 도서관에 가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구닥다리 인간인 것이다. 그냥 그것 뿐이다. 그걸 알아가는 과정을 수십년간 거쳤고, 그 커스터마이징의 결과로 리디페이퍼를 정리한 것. 그 뿐이다. 그래서 떠나보냈다.


리디페이퍼가 없는데, 리디북스를 더 이상 정기구독할 필요도 사라졌다. 맥북이나 아이패드, 혹은 아이폰의 매끈한 화면 위 텍스트를 읽는 건,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구독하면 된다. 지금당장 필요 없다면 해지하는 게 맞다. 그게 미니멀라이프와도 일치한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더 열심히 다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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