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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Oct 22. 2023

560페이지에 담긴 힘

업무 메뉴얼은 어디있나요?


감자튀김. 후렌치 후라이라고 부른다. 햄버거를 좋아해서 많은 브랜드의 후렌치 후라이를 맛봤지만, 아직까지 파파이스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아마 파파이스 정식 메뉴명은 '케이준 후라이'인 듯 한데, 무슨 상관이랴. 다같은 감자튀김인 것을. 맛만 있으면 되지.


파파이스는 대학때 처음 가 봤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너무 오래되어 가물가물하다. 케이준 후라이만 먹으러 간 적도 있었고, '이렇게 큰 치킨을 넣어줘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케이준 통치킨 버거도 자주 먹었었다.


파파이스


그만큼 좋아했었던 파파이스의, 2020년 12월 한국 사업 철수는 충격적이었다. 오래된 친구가 멀리 유학을 떠나는 것 같은 아쉬움.

당시 기사


그렇게 한국을 떠났던 파파이스가 2022년 12월,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당연히 오픈 이후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맛은 조금 변한 듯 했지만, 케이준 후라이는 여전히 훌륭했고, 추억으로 보정된 햄버거 맛도 일품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자주 찾아가는 매장 운영이 우왕좌왕 이었다.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문 접수 실수나 접객 응대 등이 어쩐지 불안했다. 잘못 포장해서 손님들과 실갱이 하는 경우도 자주 보였고. 점심 시간엔 30분 이상 기다리는 일도 빈번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두 주방을 바라보고 있는 진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초기에 매장을 방문에서, 우연히 주방을 가만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동선이 꼬여 서로 부딪히고, 우왕좌왕 소리지르고 봉투에 넣았다가 뺐다가 니가했네 내가했네 난리다. 딜리버리 시간이 늦고, 퀄리티가 들쑥날쑥이다. 맥도날드, KFC 등 유명 버거 프렌차이즈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몇 년 전 찾았던 파파이스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을까.


혹시, 26년간 한국에서 쌓아둔 노하우가 날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2020년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그간 축적한 경력자들의 직원 교육 노하우와 경험은 사라졌다. 지난 2년간 아무도 파파이스의 햄버거를 만들지 않았다.


메뉴얼이 사라졌다.


업무를 처리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개선하며 지식은 쌓이고, 프로세스는 정교하게 고도화되어 메뉴얼에 차곡차곡 기록된다. 그 문서는 회사를 100년 먹여살리는 재산이 된다.


그렇다면 비교해봅시다. 어디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대표주자 맥도날드와. 아래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 맥도날드 35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책으로, 맥도날드의 역사와 내부 정책, 가치, 마케팅 방향 등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했다.


맥도날드 처럼 메뉴얼과 교육에 진심인 외식사업 프랜차이즈가 있을까. 점주가 되기 위한 교육부터 살펴보자. 축적된 노하우를 교육을 통해 이식해주는 과정이다. 맥도날드 점주가 되기위해서는 하루 8시간 9개월간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물론 중간중간 평가가 있다. 교육은 3개월마다 업무를 바꿔 진행되는데, 첫 3개월은 크루 교육, 이후 3개월은 각각 DM매니저, 점장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크루 교육이 인상깊다. 유리창 닦기부터, 버거 만들기, 재료 쌓기, 쓰레기봉투 씌우는 법까지 메뉴얼로 제공된다. ('점주가 될 사람'에게 실무를 경험하게 만든다는 건데, 한국 일반 회사에도 적용이 시급하다.)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교육을 해야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밀하고, 세밀하게 교육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시카고에 위치한 '햄버거 대학' (햄버거 회사에서 교육을 위해 대학을 세웠다)에 직접 방문, 합숙 교육을 받고나서야 비로소 점주 자격이 주어진다.


맥도날드에는 햄버거를 만드는 모든 과정과 동선을 포함한 매장 관리 및 운영 방안 등이 전부 세세하게 기록된 무려 560페이지짜리 메뉴얼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미국 맥도날드 메뉴얼의 일부를 발췌한다.

햄버거 고기 패티 두께는 10mm를 지켜야 한다.

빵 한 쪽 두께는 각각 17mm다.

빵과 패티를 모두 더하면 햄버거 총 두께는 44mm여야 이상적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두께이기 때문이다.

계산대는 72cm 높이를 고수한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꺼내기 '딱 좋은 높이'이기 때문이다.

크루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후 3초 이내에 '콜라나 감자튀김도 드시겠느냐'며 질문한다. 3초가 지나면 추가 주문 확률이 50%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먹구구란 없다. 심지어 햄버거에 뿌리는 소스조차도 제공된 소스건을 사용해 양을 일정하게 관리하도록 한다니. 그 규칙의 정교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세계 모든 맥도날드 매장에서 동일한 맛과 퀄리티의 햄버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메뉴얼의 힘이다.


물론 파파이스도 몇 년 시간이 지나면 노하우가 쌓이고, 경력자들이 자리를 잡아 예전의 업무 체계를 갖추고, 메뉴얼을 고도화하며 차차 나아질꺼다. 그러리라 믿는다.

응원합니다.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회사는 어떨까. 파파이스의 사례는 비단 패스트푸드 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K-회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직원의 노하우나 업무 메뉴얼 관리는 뒷전으로 하는 리더의 태도가 팀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또 뽑아서 쓰면 되잖아?' , '무슨 복지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관두라고 해' , '너 말고 사람 없는줄 알아?' 라는 태도로 경력자들의 퇴사를 무시한다. 경력자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증발한다. 인수인계 문서 따위는 없다. 메뉴얼? 꿈도 못꾼다. 신규 입사자가 처음부터 다시 삽질하고 고생하며 주먹구구로 업무를 진행한다. 그러다가 퇴사한다. 과정은 반복된다. 지식이 축적되지 않는다. 그렇게 몇 타임만 돌면, 그저그런 팀이 된다. 서서히 망해간다.


스스로 업무를 기록하고 메뉴얼로 정리하는 직원이 있다면 칭찬해주고 보상해줘도 모자랄 판에,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지 쓸데없는 짓 하고 있네' 라고 사기를 꺾는 리더들이 있다. '그냥 메신저로 대충 전달해서 일하고, 전화로 구두로 지시하면 되지 뭘 그렇게 일을 만드냐' 는 고인물들도 있다. 자신의 머릿속 경험과 노하우를 '권력' 이자 '파워'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지식은 나누면 더 정교하고 세밀해집니다. 공유하면 질이 좋아져요. 위임하고 성장하는 업무를 하려면 서로 같이 볼 수 있는 합의된 메뉴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록'이 우선되야 하구요.


누굴 탓하랴. 나부터 기록하고 정리해서 공유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궁금합니다.

혹시 업무 메뉴얼, 갖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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