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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22. 2023

명동교자, 칼국수의 근본을 찾아서

추워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진한 국물


불현듯, 느닷없이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시청 앞에서 근무할 때 혼자 자주 가던 명동교자가 그러한데, 마침 이태원에 분점이 있다.


따뜻하고 진한 고기 국물과 김치가 생각나서 먹으러 간다.


네이버 지도로 찍어보니 7km 거리다. 걸어가도 되겠다. 슬슬 산책하듯 걸어서 두시간 정도 예상한다.


가보자. 출발.


차가 많다


경부고속도로 빠져나오는 곳에 횡단보도를 만났다.여긴 신호가 없다. 반대쪽에서 어린이 두명이 씽씽이를 타고 횡단보도를 기다리는데,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아무도 멈춰주지 않는다. 대충 건너기엔 위험하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 때 버스 한 대가 섰다. 운전석에 앉은 어르신이 지나가라고 손을 흔드신다. 아이들도 나도 꾸벅 인사하고 건넜다. 저런 어른이 되야겠다.


고속터미널 앞, 해가 진다.


낙엽이 많다. 겨울이 온다.


한강을 만났다. 서늘한 추위에 한강도 조용하다. 차분하게 흘러가는 한강 앞에 잠시 앉아 경치를 감상한다.

넓구나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가 실린 자전거를 끌고 어르신이 다가온다. 그가 옆 벤치에 앉았다. 트로트가 귀를 때린다. 편안하지 않다. 방금 전까지 한강은 조용했는데.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나이가 들면 도덕관념이 희미해지는 걸까. 너무 시끄러워서 자리를 떴다.


다시 걷는다.

이제 잠수교를 건너 한강을 넘는다. 옛날옛적엔 쪽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겠구나.


새빛둥둥섬. 어벤져스 2편 촬영장소다. 영화 속에서는 첨단과학 연구소로 등장했다. 여기서 울트론이 태어났지.

새빛섬


캡틴 아메리카가 새빛섬을 바라보고 있다


잠수교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면 잠기는 다리라니. 어쩐지 낭만적이다.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과 이정재가 다리 위를 걸었던 장면이 인상깊었다.


바로 이 장면의 배경이 잠수교


해질녘 잠수교를 건넌다


미군기지 앞, 떨어진 은행 잎에 바닥이 노랗다.


이태원 브라이틀링 매장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명동교자에 도착했다. 1시간 35분 걸렸다. 예상보다 빨리 걸었나보다. 조금 더 느리게 걸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걷는다.


매장 안에 미쉐린 선정 마크가 붙어있다. 7년 연속 선정인건가.


키오스크로 주문한다. 칼국수 하나.


이런 티켓이 나온다.


티켓을 점원께 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곧 칼국수가 나왔다. 잘먹겠습니다.


여전히 맛있다. 약간 걸쭉할 정도로 진한 고기국물에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 거기에 곁들이는 매운 김치의 조합. 김치는 강한 나트륨 맛이다.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건 맛있는거다. 나는 나트륨을 이길 수 없다. 잊을만 하면 자꾸 생각나는 맛. 어쩌면 김치 때문에 여기까지 홀린듯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다 먹었다.


먹고 나왔더니 이미 해가 저물었다. 어둡고 춥다.


버스를 타고 돌아갈까. 아니다. 배도 부르니, 걸어가자. 두 시간 정도 걸으면 소화도 되고, 이런저런 생각하기에도 좋다. 날이 추워 걷기에 편하다. 여름보단 겨울이 걷기 좋은 계절이다.


출발.

왔던 그대로 돌아가며 걷는다. 다시 미군기지를 지나, 잠수교를 건넌다. 추운데도 잠수교에 달리기하는 분들이 많다. 여긴 뛰기에 알맞다. 길이 쭉 뻗어있고, 안전하며, 무엇보다 경치가 훌륭하다. 나도 뛰어야 하는데, 안 뛴지 너무 오래됐다.


밤이 되니 새빛둥둥섬에도 조명이 화려하다. 어쩐지

촌스러운 건 기분탓인가. 동남아 같기도 하다.


한강 변이 눈부시다. 파리 세느, 이스탄불 골든 혼, 런던 템즈, 뉴욕 허드슨, 여기저기 세계 주요도시의 대표 강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한강은 어느 강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넓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풍경은 사진에 잘 안담긴다. 그래서 여행이 중요하다. 직접 봐야 한다.


반포를 지난다. 강남 신세계 건물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다. 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좋아한다. 어릴적 길거리에 울렸던 캐롤 소리가 그립다. 시청 앞에서 근무할 때는 명동신세계 본점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러 혼자 가곤 했는데, 당시 명동 신세계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혼을 담은 퀄리티였다. 가지고 있는 역량을 모두 쏟아부은 듯한 느낌이랄까. 요새도 그렇게 하려나. 강남 신세계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교보문고에 들렀다. 이렇게 가끔 들러 베스트셀러를 둘러보면 기분 좋다. 책 냄새가 향긋하다. 요샌 어떤 책이 인기있나.


교보문고도 크리스마스가 한창이다.


집에 도착. 여기저기 들렀다 오느라 2시간 30분 걸렸다.


기분좋게 걷고 먹었다. 명동교자 글로 시작했는데, 갑자기 서울구경이 돼버렸구나.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마성의 맛 명동교자. 또 생각나면 걸어갔다가 와야겠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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