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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30. 2024

일하는 태도는 제품에서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썼으니, 꽤 오래됐다. 안경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안경을 많이 시도했다. 안경점도 좋다는 곳을 전국 여기저기 많이도 찾아다녔다. 안경에 쓴 돈이 그리 적지 만은 않다.



많은 안경 경험 중에, 인상 깊었던 '안경 제작' 과정이 있었다.


그 안경은 좀 독특한 것이어서, 제작이 쉽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취급점을 알아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가, '그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곳을 발견했다. 찾아갔다.



서글서글한 인상, 사람 좋아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초로의 사장님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시력을 측정하고 이런저런 조율을 하며 안경 제작을 부탁했다.


일주일 후에 연락이 왔다. 찾으러 오라고.

반가운 마음에 퇴근하고 바로 안경점으로 갔다.


안경을 받았다. 피팅을 하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안경이 흔들(?) 거렸다. 그래서 안경을 들고 자세히 여기저기 살펴봤다. 안경렌즈가 안경테에 제대로 결합되지 않아서 조금씩 삐걱삐걱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말씀드렸다. “사장님, 렌즈가 흔들거려요.”


"응? 그럴 리가 없는데?" 라며 안경을 들고 이리저리 보더니, 펜치 비슷한 기구로 렌즈와 테를 동시에 꽉 집었다. 아마 힘으로 껴넣으시려 그랬나 보다. 저러면 안될텐데. 잘못 가공된 렌즈를 억지로 끼우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인생도 그렇지 않던가.


그때, 툭. 하고 렌즈가 깨졌다.



눈앞에서 새 안경렌즈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신기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사장님은 말했다.

"에이, 이거 다시 해야겠네.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새 안경을 찾으러 온 손님한테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라고 하시는 사장님께, 나는, "아... 네네.. 그럼 오늘은 그냥 가볼게요, 다 되면 연락 주세요~"라고 말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또 퇴근하고 안경점으로 갔다.

어쩐지 불안했다.


안경을 건네주시는 사장님께 고생하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착용해 봤다.

응? 뭔가 이상했다. 어지럽고 빙글빙글 돈다. 안경을 벗어서 확인하니, 깨져서 교체된 렌즈(왼쪽)가 비뚤어진 채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니 초점이 안 맞아 어지러울 수밖에.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장님 이 렌즈가 기울어져 있는데요"


사장님은 확인 후, "어? 그러네" 라고 말씀하시더니.

비뚤어진 채 결합된 렌즈 모서리를, 사포로 갈기 시작하셨다. 사포로 귀퉁이를 갈아서 '마치 안 비뚤어진 것'처럼 만드시는 거였다.


렌즈가 갈린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실 좀 공포스러웠다. 손님이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데, 잘못 가공된 렌즈를 사포로 임시방편 갈고 계신 분을 보고 있노라니, 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환불도 필요 없었다. 그냥 어서 도망쳐야 해.


사장님은 다 갈린(?) 안경을 나에게 주셨는데, 억지로 만든 모양이 당연히 이상했다. 양쪽 렌즈 균형이 틀어져있다. 써봤더니 물론 초점도 안 맞았다. 어지럽다고 하니,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아, 렌즈 양쪽을 전부 다시 했어야 했나? 쯧.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깨진 렌즈 한쪽만 새로 만들었으니, 양쪽 균형이 안 맞았었나 보다.(다시 말하지만 렌즈 가공이 중요한, 독특한 안경이었다.) 렌즈값을 아끼기 위해 그러셨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아... 네네.. 그럼 오늘도 그냥 가볼게요, 다 되면 연락 주세요~"라고 말하고 다시 집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번 더 오셔야겠는데?'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안경을 다시 받았다. 써봤는데 여전히 모양은 균형이 안 맞고 어지러웠지만, 그냥 괜찮다고 됐다고 감사하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를 들을까봐 겁났다.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며칠을 억지로 착용하려 해 봤지만 너무 어지러웠다. 예전 안경을 쓰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새 안경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 후로 한 달 정도 지나, 나는 그 브랜드의 안경을 잘 가공한다는 안경점을 지인에게 추천받았다. 집에서 많이 멀었지만, 그래도 찾아가 봤다.


그곳에서는 검안 후, 안경렌즈를 체크하더니 "아니 이 안경 쓰면서 안 어지러우셨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다시 추천받은 안경점에서는 정확히 일주일 후에 완벽한 안경을 제작해 주셨다. 렌즈가 흔들리거나, 깨지거나, 비뚤어지거나, 어지럽거나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앞에서 렌즈를 사포로 갈지도 않았다. 그 안경은 정말 편하게 오래 썼던 기억이다.


사진: Unsplash의Bri Tucker



나는 일을 하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많다. 그게 안경을 만드는 것이든, IT서비스 제품을 만드는 것이든 똑같다. 세상 모든 업무에서, 일하는 사람의 태도는 제품에 그대로 드러나고, 유저(사용자)는 반드시 그것을 알아챈다.


렌즈를 깨트릴 수 있다. 실수는 누구나 하니까. 나도 회사에서 매일 렌즈를 깨 먹는다. 하지만, 그럴 땐 명확히 사과하고 다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 는 문제를 해결하고 유저의 마음을 잡아두기에 적절한 멘트는 아니다.


렌즈값을 아끼기 위해 한쪽만 주문해서 틀어진 모양으로 제작하고, 그걸 만회하려고 유저가 보는 앞에서 사포로 갈아버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건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애초에 꼼수를 부려 해결하려다 보니, 일이 계속 꼬이는 것이다.


그런 태도와 자세로 만든 제품은 결국 유저가 외면한다.

유저는 다 안다.

제품에 그대로 드러나니까.


장인 정신으로 제품에 혼을 싣는 사람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

그 두 사람의 제품은 전혀 다르다.

아예 다른 상품이라고 봐도 된다.


우리가 일하면서 가지는 태도가 제품에, 산출물에 그대로 녹아든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런 태도로 임하고 있는가?

정신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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