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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Mar 23. 2024

채용이 그렇게 급해요?

급하게 먹다 체해요


들어온 지원 서류를 검토한다. 뭔가 부족하다. 딱 맘에 드는 사람은 없다.

대충 10명을 추린다.

인터뷰 날짜를 잡는다.

1차 인터뷰에서 개중 제일 나은 3명을 추려서 2차에 올린다.

2차에서 말 잘 들을 것 같은, 적당한 사람을 합격시킨다.


"이렇게 뽑아도 돼요?"

"아 몰라, 사람 없어서 일 못하겠다며? 급하다며! 대충 뽑아!"



인재 밀도가 낮아지는(얼간이들만 모여있는 회사가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회사에 지원자 자체가 적다. 블라인드에 소문 다 났으니까.

2) 지원자 모수가 적으니 개별 퀄리티가 낮다. B급 C급 등외급들만 지원한다.

3) 위에서 일은 계속 몰아친다. 일정이 찍혀있다. 모든 일이 급하다. 가용 리소스 감안하지 않는 리더들 때문에 힘들다. 이렇게 일하다간 내가 먼저 죽겠다. 에라 모르겠다. 대충 빨리 뽑고 싶다.

4) B급 C급 등외급 지원자 중에 개중 나은 사람 그냥 뽑는다.

5) 대충 뽑은 사람과 같이 일해보고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6) 팀이 망가진다. 문화가 박살 난다.

7) 제품 품질이 개판이 된다.

9) 1)이 반복된다.


급하다고 대충 채용하면 이렇게 된다.



PM으로 일하며 몇 번의 채용에 관여했다. 지난 회사 중 한 곳에서, 같이 일할 PM을 모시기 위해 6개월이 넘게 서류심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인사팀에서는 '대체 왜 그러는 거냐' 며 나에게 대충 채용할 것을 종용했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었다. 일은 많고 사람은 없어서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일은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회사는 그렇게도 굴러간다.) 하지만 채용이 더 중요하다. '사람'이 전부니까. '좋은 사람'을 모셔야 하니까.


그 당시 반년이 넘는 긴 채용과정을 진행해, 모셨던 분. 그분은 당시 같이 협업할 때도 그렇고, 지금 다른 곳에 가셔서 들리는 평판들도 그렇고, '일을 잘하는' 성실하고 훌륭한 분이었다. 그분 덕분에 제품은 점점 더 나아졌고, 일하는 방식에서도 큰 진전을 보였으며, 무엇보다 괜찮은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채용에 공을 들였던 것에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다. 급하게 채용하지 않은 것이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한 때 유명했던 스타트업이 있었다. 사세를 확장한다며 빠르게, 많은 수의, 개발자를 채용했다.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곧,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뉴스가 떴고, 권고사직을 진행하며 잡음이 많이 일었다. 당연히 다들 안 좋게 회사를 나왔다.


그 스타트업이 최근 또다시 채용을 시작한다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재도약한다'는 취지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애초에 투자를 늘리려고 무리하게 비즈니스를 벌이고, 무분별하고 급하게 채용하다가 비즈니스 모델이 망가지니 대규모 권고사직을 했던 회사가 다시 큰 채용을 진행한단다.


채용이 그렇게 급해요?


누군가에겐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이고, 앞날이 유망한 주니어의 커리어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채용이다. '일단 많이 뽑자'가 아니라. 회사의 상황과 비즈니스의 적절한 확장을 고려해 천천히 좋은 사람을 잘 골라 뽑아야 한다. B급 C급 등외급들이 섞여들지 못하도록 회사 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고의 채용을 해야 한다.


B급 C급 등외급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얼간이들을 불러들인다


얼간이 B급 C급들에게 면접을 맡기면 비슷한 사람들을 합격시킨다. 채용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나 기준이 없고, 잘하는 사람이 합류하면 본인과 비교되니 일부러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물론, 지원자 자체도 엉망이다. 팀 수준이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얼간이 면접관들은 매번 ‘아~ 면접 보느라 개발할 시간이 없어~~’ 라고 떠들고 다닌다는 특징이 있다. 당신 주변을 잘 둘러보자.


새로 CEO, CPO, CTO 등에 보직임명 되어, 세를 확장하고, 자리를 보전한다고 광팔이 프로젝트 펼쳐서 무분별하게 채용하면 곤란하다. 그 결과가 위 스타트업이었고,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IT서비스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소모품이 아니다. 프로젝트를 면밀히 검토하고 지속가능한 인원을 고려하여 신중히 채용하자. 채용이 급하다고, 수준 낮은 사람들을 잔뜩 뽑아놓은 회사의 미래는 뻔하다.


그 끝은 권고사직을 통한 구조조정일뿐이다.


인사만사(人事萬事)

채용은 급하게 하는 거 아닙니다.

급하게 먹다 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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