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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Apr 12. 2024

너희가 벌써 부장,차장이 되었구나


정기적으로 만나는 예전 회사 후배들이 있다. 지난번 글에 소개했던 바로 그 등산 멤버다.

https://brunch.co.kr/@dontgiveup/275


나는 이 친구들이 좋은데, 내가 꼰대인걸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면 없이 만나도 되는 마음 편한 친구들. 괴팍한 내 성격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나와 어울려준다. '햄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명에 걸맞게 오늘도 햄버거 집으로 향했다. 강남역 근처 bd버거가 오늘의 목표.


도착해서 주문을 했다. 키오스크에 새우버거가 '시그니처' 라고 표시되어 있길래 시켰다.


음식을 받아보니, 깔끔한 플레이팅이 마음에 들었다. 일일이 구워서 만든 듯한 햄버거와 사이드 메뉴가 정성 있었다. 구운 새우가 들어간 햄버거였는데, 직접 구운 불향이 좋았다. 새우가 크고 통통하다.


심하게 기름지지 않고 적당히 담백했다. 건강한 웰빙요리를 먹는 기분. 요새는 파이브가이즈처럼 기름진 것보다, 인앤아웃 처럼 담백한 버거가 더 좋다.

bd버거


우리는 세 시간가량 떠들었는데, 그중 두 시간 반은 나 혼자 말했다.


나는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 IT시장 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다며 열변을 토했다.


혼자 흥분해서 두 시간 동안 떠들어대는 것. 맙소사, 이건 꼰대의 전형적인 특징 아니던가.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뭐 어때. 나는 요새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미안하다 친구들. 나는 다음에도 많이 떠들 것 같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계속 이야기했다.


근황 토크.

두 친구는 올해 승진했다. 금융 회사에 다니는 이 친구들이 승승장구하니 내 기분이 너무 좋다. K가 신입사원으로 처음 우리 팀에 찾아왔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C가 신입사원으로 연말 송년회 무대에서 춤추던 것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던 K는 부장이 되었고, C는 차장이 되었다. 각자의 팀을 맡을 정도로 훌륭한 리더가 되어가는 친구들. 그들과 함께하는 내 인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K부장은 최근 약과를 주문해 먹는 것에 빠졌다고 한다. 인터넷 주문 내역을 보여주는데, 정말 매주 한 박스씩 시켜 먹더라. 나도 약과를 아주 좋아하는데, 최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다. 언젠가 나도 한 번 주문해서 먹어봐야겠다. 아, 그리고 K부장은 위스키에 심취해 있단다. 해외여행 다녀올 땐 꼭 사 온다고 하니 진심으로 보인다. 조금씩 마시며 이것저것 즐기는 중인 것 같은데, 남자가 가볍게 즐기기에 쿨하고 멋진 취미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K부장과 위스키 한잔 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C차장은 사이드잡으로 진행 중인 스타트업이 조만간 런칭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거의 다 왔다. 결국 해내는구나. 장하다. 그는 요새 낚시 유튜브에 빠졌다는데, 유튜브 내용을 열심히 설명해 주는 C의 얼굴이 행복해 보여 좋았다. 아이와 함께 캠핑도 다닌다니, 자상한 아빠가 되어가는 C차장이 대견하다. (그러고 보니 내 캠핑장비는 창고에 잘 있으려나.)


사람은, 특히 우리 나이대의 사람은 열정을 갖고 몰입하는 그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K부장과 C차장에게 이렇게 자극을 받고 나니,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요새 무엇으로 행복한가?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거 국밥 아니에요?' 라고 물어보더라.)


우리는 조만간 산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 같이 국밥을 먹기로 했다.

기대가 크다.


아 그리고, C차장이 나에게 충고를 해줬다. 왜 자꾸 노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냐는 것이었는데, 아뿔싸,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나는 나이 든 사람이 젊어 보이려고 행동한다거나, 나이 어린 친구들과 어울려보려고 안달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이 ’뒤로 물러나 조용히 지내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그게 너무 심해져서 선을 넘고 있나 보다. 그게 '노인인 듯 행동하는 것'으로 발현되는 듯한데. 정신 차려야겠다. 나는 피드백은 선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C차장, 피드백 고맙다. 앞으로는 적당히 ‘노인인 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K부장과 C차장, 즐거웠습니다.

저랑 어울려줘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후배님들의 승진을 축하합니다.

부디 멋진 리더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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