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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9. 2021

부러졌지만 풀업을 하고 싶어요 3

"나 혼자 가도 되는데.."

"그 팔을 하고 어떻게 혼자 가~"

수술하러 가는 월요일 아침, 아내는 굳이 병원에 따라 나선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게 무슨 창피한 민폐란 말인가. 팔 때문에 운전도 못하니 택시를 탔다.


병원에 도착해서, 수속을 하고, 기다렸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 부러지고, 접질리고, 어딘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기다린다.

의사 호출로 드디어 진찰실로 들어갔다.

"아이고.. 어쩌다 이러셨어요?"

"높은 곳에서 떨어졌습니다.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어요."

"MRI부터 찍어보시죠, 사진 보고 수술 방법 같이 생각해보시죠."

나긋나긋 침착하고 친절한 선생님을 만났다. 다행이다.


또 사진을 찍는다. 나는 평소에도 사진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새 슈퍼모델이 된 기분이다. 사진을 많이 찍네. MRI는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찍는 줄 몰랐다. 좁은 통 안에서 체감으로는 1시간은 누워있던 것 같다. 게다가 비행기 엔진 통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소리가 컸다. 더워서 땀은 뻘뻘. 그래도 나는 슈퍼모델이니까 의연하게 사진을 찍는다.


"여기 보시면, 여기,여기,여기 세군데 보이시죠. 팔꿈치. 부러진거구요. 이 부분이 수술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흠. 핀을 여기여기여기 여기여기여기 여기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플레이트를 하나 덧대서. 핀을 여기여기여기. 이게 지금 팔꿈치 뼈가 조각이 난 상황이라, 수술이 굉장히 애매하네요."

나는 아이언맨이 되는걸까, 아니다 이 방식은 오히려 울버린에 가까울라나. 몸에 플레이트도 들어가고 핀도 많이 들어가나보다. (여기여기여기 하는 부분은 속으로 세다가 포기했다.)


일단 입원을 하고 오후에 수술을 진행한다고 한다. 입원실로 올라간다. 환자복을 받고, 이것저것 설명을 듣는다. 받아들이고 극복해야지. 이것도 내 성장에 분명 도움이 될꺼다.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수술은 전신마취는 아니고, 몸 좌측을 마취한다고 한다. 신기한 세상이다. 반쪽만 마취를 한다니, 그럼 나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술받는걸까? 울버린도 아다만티움 뼈로 교체할때 재워줬던것 같은데.

아, 재워준단다. 다행이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드릴소리를 듣는 건 조금 소름끼친다.


"ㅇㅇㅇ씨 수술들어갑니다."

병상에 누워있는데 나를 부른다. 나는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데, 굳이 병상에 누우란다. 배드가 통채로 움직인다. 수술실로 누워서 간단다. 아내와 인사를 했다. 금방 올께. 누워서 수술실로 가면서 보니, 복도 천장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것은 영화에서 많이보던 샷이다. 누워서 움직이는 환자 시점의 화면. 신기하네.


수술실로 들어간다. 오 춥다. 심하게 춥다. 이건 살균/멸균과 연관이 있는 온도겠지. 삐삐 여기 저기 기계음이 들린다. 수술기구가 서로 부딪히는 날카로운 쇳소리도 섞여있다. 의사, 간호사들이 뭐라뭐라 서로 얘기한다. 얘기하며 웃는게 농담 같은데, 나도 듣고 싶다. 수술실 농담은 어떤걸까.


"ㅇㅇㅇ씨 맞으시죠?"

"네”

“생년월일은요?”

“00년 0월 0일 입니다.”

"다치신쪽이 이쪽 맞으시죠?"

"네"

의사는 누워있는 나에게 묻고 또 물어서 내가 맞는지, 수술부위를 명확히 다시 확인한다.

해외 토픽에 엉뚱한 사람의 엉뚱한 부위를 수술해서 사고가 났다는 '세상에 이런일이' 식 기사를 많이 봤었는데, 이렇게 체크하면 그럴 일은 없겠다 싶다.

의사가 팔에 매직으로 그림을 그린다. 절개 부위를 미리 그려보는 것 같다. 차가운 매직 감촉이 팔을 타고 흐른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어깨쪽에 큰 바늘이 들어간다. 정말 큰 바늘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다행히 큰 바늘을 위해 미리 작은 바늘로 마취를 해서 통증은 없다. 뻐근할 뿐.

"왼팔 움직여보세요~"

아직 움직여진다. 에이, 약이 안듣는건가, 이러면 안되는건데. 이거 봐, 이렇게 움직.. 어? 팔이 저릿저릿하다.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 신기하다.

"재워드릴께요~ 약 들어갑니다~"

숫자를 세보기로 한다. 영화에서는 숫자를 세잖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나른하고 노곤해진다. 일곱, 여덟.


눈을 떴더니, 병실이다.

왼팔은? 움직일수가 없다. 와우, 엄청난 붕대로 칭칭 동여매여있다. 아오, 많이 아프다. 욱신욱신. 왼쪽 팔을 불로 지지는 느낌이다.

햇살이 따뜻하다. 커튼이 사방에 쳐져있다. 그럼 나는 이제 울버린이 된건가. 왼팔에 힘을 주면 날카로운 아다만티움 칼날이 튀어나오는 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ㅇㅇㅇ님~ 수술 잘 끝나셨구요. 진통제 들어가고있고, 혹시 많이 힘드시면 이 버튼 누르세요, 약이 더 들어가요."

간호사분이 이런저런 설명을 했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바로 버튼을 다다닥 눌렀다.

아니 아예 그냥 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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