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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03. 2021

네, 제주도에 혼자 왔습니다 1

2021년 6월 3일 ~ 2021년 6월 14일

이게 웬일.

마침 휴가를 길게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아내는 내가 제주도에 다녀올 수 있도록 호텔을 예약해주고, 비행기 티켓까지 준비해주었다. 그간 나의 마음 고생을 잘 알아서 그랬을테다. 정말 감사한 마음 뿐이다. 혼자 조용히 읽고 걷고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행복했던 시간을 기록해본다.



1일차 (6/3)


서울에서 출발할 때 김포에서 비가 많이 내렸다. 걱정을 좀 했는데, 제주에 오니 날씨가 좋다. 다행이다. 제주공항에서 111번를 타고 1시간 30분 걸려서 정류장에 내렸다.

10분정도 더 걸어서, 플레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넓고 조용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적하다. 딱 내가 원하던 분위기.


체크인을 하고 카드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간소하다. 침대,세면대,화장실이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최적의 공간배치로 놓여있다. 노출콘크리트 마감부터, 솔직하게 배치된 완강기까지. 불필요한 건 단 하나도 없다. 완벽하다.

침대에서 누워 바라본 창문


대충 짐을 풀고(풀 짐도 없다. 가방 하나로 왔으니) 1층으로 내려가 주변을 슥 훑어봤다. 카페도 있고, 음식점은 홍콩 음식점 하나 있나보다. 배가 고파서 들어갔다. 우육탕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때만해도 이 근처에 식사할 만한 가게가 여기 뿐이라는 걸 몰랐다.)

밥을 먹고 주변을 산책했다. 깜깜하다. 조용하다. 번화가와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좋다.


책을 챙겨서, 펍에 들어갔다. 읽으면서 맥주 한 잔했다. 맛은 잘 모르겠다.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후딱 마시고, 호텔 내 무인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지와 아이스크림(1+1)을 사서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냉장고가 없네. 1+1이라 아이스크림이 두 갠데. 다 녹을텐데. 후다닥 먹어치웠다.
방에는 티비가 없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피곤해서 일찍 잤다.



2일차 (6/4)


일어났다. 방이 고요하다.

여기가 어디지. 아 맞다, 나 제주도 왔지.


오전에 성산일출봉에 걸어서 가보기로 한다. 네이버 길찾기로 '도보'를 찍어보니, 45분 정도가 나온다. 실제로 가보니 성인 남성 빠른걸음으로 30분 정도면 도착한다. (굉장히 빠르게 걸어갔다.)

성산일출봉 입구 도착. 사람이 많다. 티켓을 사고 올라가본다.

저 앞에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열심히 걸어간다.
성산일출봉 정상. 사람이 많다. 수천만년(?) 전 화산폭발은 도대체 어느 정도 였을까.

성산일출봉 등반, 정상에서 좀 쉬고, 하산 까지 총 1시간 정도 걸렸다. 올라가는데는 15분정도 걸린 듯 하다.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걸으니까 좋다. 제주도에는 걸으러 왔다.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어제 그 가게에서 점심으로 양곱국수를 먹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시원해서 좋다.

저녁을 또 거기서 먹을 순 없지.

플레이스 캠프 옥상에서 바라본 저녁 노을, 자연의 신비는 인간을 경건하게 만든다.


혹시 근처에 먹을만 한 곳이 있나, 읍내로 10분쯤 걸어서 가봤다.(제주공항에서 올때 버스 내린 거기)

읍내에는 빵집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만두집도 있고 다이소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고 많다. '문화통닭'에서 치킨 한마리 포장하고, 근처 빵집에서 빵 몇개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왔다갔다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치킨은 몇 조각 먹고 질렸다. 혼자 치킨 한마리는 힘들구나. 다음엔 사지 말자 다짐했다.

플레이스 캠프의 저녁 풍경, 여기서 책도 읽고 맥주도 마시고 했다.


의자가 하나 필요했다.

길을 걷다가 어디서든 펼쳐놓고 앉아서 책도 읽고 하고 싶었다.

플레이스 캠프 광장에서도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방에 넣을 수 있어야 하니, 접었다 폈다 가능한 캠핑용 의자가 제격이겠다. 인터넷으로 근처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봤는데, 2시간은 가야 한단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모양은 없었다.

아 맞다. 당근마켓이 있지. 당근 마켓을 뒤져봤다. '성산읍'으로 내 동네를 설정하고 캠핑용 의자를 검색한다. 오, 물건이 있다. 저렴하고, 쓸만해보인다. 말을 걸어 구매 약속을 바로 잡았다. 내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거래하자고 한다. 월정리가 어디지. 찾아보니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서퍼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여행도 왔으니 한번 가보자. 제가 갈께요. 라고 했다.

당근 마켓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세상은 점점 변한다.

내일 월정리 가려면 일찍 자야겠다.

굿나잇.



3일차 (6/5)



물어보니, 201번 버스를 타면 월정리 해수욕장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얼른 준비를 하고 근처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버스가 안온다. 덥다 더워. 해가 뜨겁다. 오~래 기다려서 버스를 탔다. (아직 이 동네가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표랑 노선을 제대로 확인 못한 내 탓이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흠. 뭔가 이상하다. 성산읍에서 위로 올라가는거니까, 바다가 오른쪽에 보여야 하는데, 바다가 왼쪽에 있다. 뭐가 잘못됐다. 기사님께 가서 물어봤다.

"선생님, 제가 월정리 해수욕장을 가는데, 버스를 잘못 탄거겠죠?"

"허허허, 아주 정확히 반대방향을 타셨습니다."

유쾌하게 답해주시니 듣는 나도 기분이 좋다.


반대 방향으로 30분을 갔다.

다시 내려서 길을 건너, 한참을 기다린다. 30분 가량을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이제 제대로 된 방향을 타고 다시 출발한다.


결국 내렸다.

덥다.

버스를 내려서 월정리 해수욕장까지 꽤 걸었다. (더워서 그런지 체감으로는 10분도 넘게 걸었던 것 같다.)

월정리 해변은 서퍼들 천국이었다. 물도 맑고 마치 외국 같은 해변이다. 오길 잘했다.

월정리 해수욕장 앞 많은 카페는 이렇게 밖에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놨다. 뷰가 좋다.


당근 거래를 10초만에 마치고,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고 해변 보고 쉬었다.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배가 고파 해수욕장 앞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맛은 그냥 저냥 그랬다. 가게에 파리가 많았다.)


다시 역순으로 버스를 타고 캠프로 돌아와서 쉬었다. 아침부터 뙤약볕에 버스를 기다리고 헤매고 걸었더니 힘들다. 캠프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저녁은 귀찮아서 그냥 김치 큰사발 컵라면 하나 먹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 사서 밖에서 의자 펼쳐놓고 마셨다. (월정리까지 가서 산 의자가 아주 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역시 다녀오길 잘했다.)

제주도에서 당근으로 산 의자. 제주도 여행 내내 나의 친구가 되어줬다.


적당히 읽고, 들어와서 샤워하고 잤다.

(이 때만 해도 저 광장에 나 밖에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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