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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19. 2021

퇴사 후 남는 것들

그 땐,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꼭 연락 드릴께요!"

"우리 다시 볼꺼잖아요~"

"조만간 저녁 먹어요!"


퇴사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인사치례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나는 어리숙하진 않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저런식으로 표현하며 헤어짐의 안타까움을 달랬을 것이리라.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 꼭 연락해요."


그런데, 유독 친했던 동료들이 있다. 아니다 후배들이라고 하자. 왜냐면 이 이야기의 주제에는 그들이 더 맞다. 잘 따랐던 후배들이 있다. 그들 역시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꼭 연락드릴께요, 우리 정기적으로 만나요."

"언제 봐요 우리! 지금 약속 잡고 나가세요!"

그 땐, 정말 그럴 줄 알았다.

우리는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줄 알았다.


결국 시간이 지난 지금,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약속들을 생각하며, 다양한 생각이 든다.

그 감정이, 그 바램이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가졌던 것일까.

그건 거짓말이었던 걸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럼 뭐였을까?


몇번의 이직을 했다.

그러다보니 '이전 회사 동료'들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 지금까지 잘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내가 다녔던 그 많은 회사들에서 같이 일했던 수 백명이 넘는 동료들 중 결국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사람들이 인연으로 남았다.


맞다.

나는 이걸 대단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내 고된 회사 생활로 얻은 소중한 친구들이다.

빛바랜 감정의 수많은 모래알들 속에 섞여 있는 아름다운 진주들이다.


인연은 결국 쌍방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양쪽 중 그 누구 하나만의 노력으로는 이어지기 쉽지 않다. 너무 격해도, 너무 흐리멍텅해도 금새 끊어진다. 그래서, 퇴사 직후에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연락을 취했다. (너무 잦고 무례한 연락은 오히려 반감만 일으키니까.)

먼저 안부도 묻고, 힘내라고도 한다. 그렇게 문자 혹은 카카오톡으로라도 대화를 한다. 혹시 너무나 고맙게도 나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주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정성껏, 그러나 오버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답한다. 그렇게 최대한 배려해야, 그래야, 오래갈 수 있는 따뜻하고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런데,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결국 99%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한다.

결국엔 연락하면 대답이 없거나, 바쁘거나, 난감해한다. 그럴 수 있다. (중년 아저씨의 연락이 애초에 좋을리가 있나.)


애초의 애틋한 감정과 바램이 결국 색이 바랜 것이다. 당연하다. 무상이니까. 영원한 것은 없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게 인생이고, 삶이다.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꼭 연락 드릴께요!"


그래서 지금은, 저 문장 안에 담긴 씁쓸한 허무함이 더욱 더 진하게 느껴진다.

그런만큼, 지금까지 이어진 보석과도 같은 인연은 최대한 정성껏 가꾸고 키우려고 노력한다. 적당히, 적절한 선을 지키며 좋은 인연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수십억 인류 사이에서, 우연히 대한민국에 태어나, 이렇게 좋은 관계로 만났다는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니까.


며칠 전, 이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매달 잊지않고 얼굴 보자 먼저 연락해주는 고마운 후배들이다. 벌써 5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의 일 때문인지, 다시 한번 그 소중함을 느꼈다.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더욱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어졌다. 아니, 서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저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관계로 꾸준히 지내고 싶다. 새삼 고맙다.


누군가는 얘기한다. 어차피 직장에서 맺어진 친구는 오래가지 못한다며, 직장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회사에선 일만 하는게 맞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내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된다면, 분명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친구가 생긴다고 믿는다. 자연스러운 화학 작용과 같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모래알 혹은 진주가 되겠지.


앞으로 어떤 인연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을 반씩 섞어본다.

물론 뜻대로 되진 않겠지. 당연하다. 하지만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끝이 어떻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지금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오랜만이다. 잘 지내?' 라는 문자하나 보내본다면,

오늘 소중한 인연의 끈이 조금 더 두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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