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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 옷을 사지 않습니다

by 이서



나는 옷을 사지 않는다.

미니멀한 생활을 위해서다.


하지만, 단순한 의지만으론 어렵다.

늘 내 옷 장 속에는 ‘입을 만한’ 옷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 쇼핑은 중독과 같아서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도파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옷을 사지 않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당신은 지금 가지고 있는 옷으로도 평생 살 수 있다.

옷은 사지 않는 것이 맞다.


왜 그런지 한 번 기록해 보자.

혹시 아는가, 이 기록이 옷 쇼핑을 향한 무의식 속 욕망을 억제해 주는 치료가 될지도.




우리가 매일 입는 청바지.


옷장에 몇 벌씩은 꼭 가지고 있을 만큼 친숙한 아이템이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아는가?


놀랍게도 약 7,000~10,000리터, 즉 사람 한 명이 7~1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이 들어간다.


청바지를 단 한 벌 만들 때 말이다.


청바지 한 벌 만드는데 무슨 물이 어디에 그렇게나 많이 쓰이는지 의아할 것이다. 청바지에 쓰이는 물은 단순히 공장에서 바지를 만드는 과정만이 아니라, 목화 재배부터 원단 가공, 염색, 세탁까지 전 과정에서 소비된다.


청바지 한 벌에는 약 1kg의 목화가 필요한데, 목화는 ‘물 먹는 작물’로 유명해서, 농업용수 사용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염색. 청바지 특유의 인디고 블루 색감을 내기 위해 여러 번 염색이 반복된다. 이후에 워싱이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좋아하는 빈티지한 워싱 효과도 사실은 여러 차례의 세탁과 화학 처리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그 과정마다 물이 또 들어간다. 7,000~10,000리터는 그렇게 폐수가 된다. 물론 정화시설을 거치겠지만, 폐수에 화학 폐기물이 섞여 하천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옷을 버리기도 한다.


옷은 나일론, 면, 단추, 지퍼, 솜, 접착제 등 다양한 물성들이 종합된 제품이라 재활용이 쉽지 않다. 옷을 성질에 맞게 모두 잘게 분해해서 버리는 사람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옷을 버리느냐. 바로 여기에 넣는다.


이 통에 옷을 던져 넣고, '아 그래도 어디선가 내 옷이 재활용되겠지, 나는 옷을 버린 게 아니야. 환경을 지켰지.'라고 생각한다. 착각마시라. 여기에 옷을 넣는다고 당신이 환경에 기여하는 게 아니다.


통 안으로 들어간 옷 중 단 5%만 재활용되고, 나머지 95%는 인도, 캄보디아,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수출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후진국으로 쓰레기를 '떠넘기는' 것이다.


이 장면을 외면하면 안 된다


그 섬유쓰레기들은 개발도상국 국토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쓰레기 산이 된다.


일부는 소각된다.


옷을 불태울 때 다이옥신, 푸란, 납, 수은, 산성 가스 등의 독성물질이 방출된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소각하지 않고 그대로 황무지에 빌딩 높이로 쌓아두기도 한다. 개발도상국 주택가에 옷의 쓰레기 산이 높게 솟는다.


그대로 두면 풍화되어 미세 플레스틱 조각으로 우리 몸속으로 돌아온다. 지금 당신이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에 미세 플라스틱이 이미 들어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미세 플라스틱의 50%가 섬유에서 기인한 것이다.



'옷을 사지 않는다'는 선택은 단순히 소비를 멈추는 행위가 아니다. 지구와 자신을 동시에 살리는 작은 혁명이다. 수천 리터의 물과 수많은 에너지가 절약되고, 쓰레기 매립지로 향할 옷들이 줄어든다. 각종 독성 화학물질과 미세 플라스틱의 발생을 막는다.


미니멀한 생활을 통해 옷장 앞에서 끊임없이 '입을 게 없다'는 불만 대신, 최소한의 옷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해방감을 얻는다. 미니멀 라이프는 부족함이 아닌 여유와 집중을 주고, 이는 결국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 된다.


'반소비주의' 까지는 가지 말자. 어쨌든 경제는 돌아가야 하니.


그렇다면 ‘과시적 비소비’라고 부르는 건 어떤가. 구매하지 않는 것이 더 힙하고 멋지다. 소비를 줄이는 검소한 행동이 더 지적이고 스마트하게 보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위선이라고 불러도 좋다. 미니멀리즘, 금욕주의는 모든 시대에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역사 속 존경할만한 위인들 중, 쇼핑이나 소비 등 물적 과시에 몰입했던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소비 습관 하나가 다음 세대의 환경을 바꾸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다음번 쇼핑의 유혹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옷이 정말 필요한가, 아니면 내 쾌락과 욕망의 발현일 뿐인가. 결국 그 작은 질문 하나가 지구와 우리의 미래를 지켜낼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매일, 2억 벌의 옷이 지구에 쏟아진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옷을 사지 않아야 한다.

지금 당신의 옷장 속을 떠올려보자.

무슨 옷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꽉 차 있지는 않은가?


있는 옷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깔끔하고 소박하며 단순한 몇 벌의 옷이면 차고도 남는다.


이 지옥과도 같은 파괴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려면,

옷을 사지 않는 방법뿐이다.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 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길 바랍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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