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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이 있으면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by 이서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있다.

마지막 '산왕공고'와의 경기.

'북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역 최강자 산왕과 접전을 벌이지만, 패배의 위기에 몰린다. 이미 체력은 바닥났고, 분위기도 산왕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북산의 패배만 남은 상황.


이때 불꽃남자, 3점 슈터 '정대만'은 다시 코트 위에서 불을 뿜는다.

정대만의 체력은 이미 모두 끝나서 , 팔 올릴 힘도 없는데도 3점을 세 번 연속으로 성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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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단순한 슛 성공을 넘어 팀 전체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한 남자의 처절한 부활을 멋지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슬램덩크 캐릭터 인기투표에서 '정대만'이 수 십 년간 1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에게는 단순한 만화 캐릭터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있다.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상징.




정대만은 어떻게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팔 들어 올릴 힘도 없는데 3점 슛을 연속 세 개나 성공시켰을까? 그는 그걸, 수백만 번 연습했기 때문이다. 그저 몸이 기억하는 리듬에 따라 슛을 던졌다. 공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잡고, 무릎을 굽히고 공을 들어 올린다, 점프하며 던진다.


몸에 배어 자연스러운 반복.

그는 그저 루틴을 따랐을 뿐이다.


나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힘들어, 걸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힘들 때.

그때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자포자기 누워버리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일상의 루틴이다.


뭐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일어나서 씻고, 깔끔하게 입고,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 걷고, 좋은 것을 먹는다. 흥미로운 책을 읽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진정성 있는 글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웃고 대화한다.


각자 갖고 있는 루틴이 있을 거다. 없으면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 단순한 루틴이 당신의 인생을 지켜줄 테니. 팔 올릴 힘도 없을 때 3점 슛을 던질 수 있게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담배나 술, 쇼핑 같은 쾌락 추구적 루틴은 중독처럼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허무만 남을 뿐, 인생에는 별 의미 없다. 외부 자극에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를 지키는 루틴이어야 한다.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균형을 세워주는 기초 체력 같은 루틴이 필요하다. 더불어 스스로 성장과 발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직장, 부동산, 주식, 코인, 가족 등등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는 쉽게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루틴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다. 나는 루틴을 지키며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루틴은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공간이며, 삶 속에서 나에게 허락된 단단한 조각이다.




우리가 운동선수도 아닌데, 루틴을 만들어 지키고 살라니?

너무 심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무슨 금욕주의자 종교인인가요?


맞다. 물론 그렇게만 살면 인생이 너무 단조로운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조로운 것과 규칙적인 것을 동일 선상에서 가치 판단하면 안 된다. 규칙적인 삶은 그저 재미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부러 굳이, 단조로워지는 것이다. 루틴으로 삶을 이기고 지켜내기 위함이다. 거기에 본질이 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각자 루틴을 지키며 산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특유의 글쓰기 루틴으로 유명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글을 쓰고, 낮에는 10km 달리거나 수영을 한다. 매일 같은 시간표를 반복하는 이 루틴이 그의 작품 세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었고, '창작은 체력'이라는 그의 철학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매일 검은 터틀넥, 청바지, 운동화의 똑같은 옷을 입는 루틴을 고집했던 것도 결국 삶을 지켜내고 창작 정신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다들 각자만의 삶의 루틴이 있다면,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 루틴을 지키면 된다. 회사에서 김 부장이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퇴근 후 루틴을 지킨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루틴을 지킨다.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묵묵히 걷다 보면, 빛이 보인다.

결국 다 지나간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매일 무거운 책임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때로는 작은 루틴 하나가 그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비록 세상이 흔들리고 상황이 힘들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그 모습은 이미 큰 용기이자 성취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꾸준함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건투를 빈다.


당신의 루틴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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