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해장국, 해장국인가 죽인가? 선입견을 깨는 한 그릇

by 이서


고사리 해장국. 들어보신 분? 나는 정말 생소했다. 이름만 들어서는 도무지 어떤 식감과 맛일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이럴 때 내 머릿속 알고리즘은 단순하게 작동한다. 일단 가보는 거다. 직접 혀로 확인하는 것만큼 정확한 데이터는 없으니. 그래서, 우진해장국을 찾았다.


아침을 먹으려고 일찍 방문했는데, 아놔 이미 인산인해다. 앞 대기만 30팀이 넘어간다. 본관은 물론 별관까지 비슷한 상황이다. 기다리는 건 이제 어디서든 디폴트다. 여기저기 맛집들은 이제 ‘맛’을 파는 게 아니라 ‘기다림’을 파는 곳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아예 대기실을 따로 만들어놨다. (기다림도 컨텐츠다.) 국밥 한 그릇을 향한 사람들의 집념이 이 거대한 공간을 유지시킨다. 나 또한 그 집념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얌전히 순서를 기다린다.


한 시간 정도를 인내한 끝에 별관에 입장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기대치는 올라가고, 맛에 대한 평가는 엄격해지기 마련이다. '어디 두고보자'라는 기분이랄까. 부디 그 엄격함을 무너뜨려 주길 바라며 자리에 앉았다.


밑반찬은 기본에 충실하다. 깍두기와 부추, 그리고 된장. 국밥을 빛내기에 부족함 없는 조연 구성이다.


나왔다. 고사리 해장국. 일단 비주얼에서 1차 충격. 이게 국밥이라고?


숟가락으로 떠올려보니 이건 거의 죽에 가깝다. 아니, 사실, 죽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겠다. 국물의 경계를 허물고 걸쭉하게 녹아내린 형체. 우리가 알던 해장국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 모습이다.


된장 베이스의 구수한 향이 올라온다. 잘게 찢어 넣은 고기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고아진 고사리의 맛이 느껴진다. 묘하다. 그런데 이 묘함이 불쾌하지 않고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망설임 없이 밥을 말았다. 죽 같은 국물과 밥알이 섞이니 질감이 더 단단해진다.


아, 이거 맛있다. 처음엔 ‘이게 대체 뭔가’ 싶었는데, 먹다 보니 나는 어느새 속도를 붙이고 있다. 속이 편안하게 풀리는데 맛까지 깊다. 쫄깃한 고기가 간간이 씹히고, 고소하고 짭짤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고사리가 이렇게 매력적인 식재료였나?


김치 한 점을 올려 먹는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걸쭉함에 겉절이에 가까운 김치의 맛이 변화를 준다. 궁합이 꽤 훌륭하다. 이거 신선하네.


입가심으로 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입 베어 물었다. 아, 맵다. 정말 지독하다. 아오 맵다. 뇌가 번쩍 뜨이는 맛이다.


바로 봉인했다. (내 위장은 소중하니까. 객기는 한 번으로 족하다.)


계속 달린다. 맛있다, 맛있어.


다 먹었다. 완료.


고사리 해장국이라는 낯선 이름, 그리고 생소한 비주얼. 선입견을 가졌다면 절대 맛보지 못했을 음식이다. 이 넓은 세상엔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의외의 정답’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일단 해보는 게 이득이다. 그래야 이런 색다른 맛도 만날 수 있는 법이다.


인생도 국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소하다고, 혹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겁내며 뒤로 물러설 필요 없다. 안 하고 하는 후회보다, 해보고 하는 후회가 훨씬 생산적이다. 최소한 ‘내 취향은 아니었어’라는 데이터는 남으니까. 물론 이번 '고사리 해장국' 데이터는 성공이다. (다행이구만.)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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