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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11. 2021

다시, 제주에 혼자 왔습니다 3

20211108~20211112

20211110


오늘도 어김없이 일어나자 마자 마라도 여객터미널에 전화를 걸었다.

대답은 같았다. 앞으로 며칠간 계속 결항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할 수 없지. 다음에 기회는 또 온다.

오늘은 호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숙소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틀간 열심히 걸어서 다리도 살짝 아프니, 오늘은 가볍게 다녀보자.


신발을 신는데, 오른발 바깥쪽 복숭아뼈가 아프다. 발목이 높은 등산화를 발목까지 꽉 조인채 오래 걸었더니 그 부분이 눌려서 그런가보다. 오늘은 발목에 공간이 조금 남도록 여유있게 묶었다. 다음부터는 이 부분을 조심해야겠다. 경험은 이렇게 사람을 성장시킨다.



마침 주변을 소개한 안내도가 근처에 있다. (역시 관광지는 다르다)

솔등산 문화의 거리, 천지연폭포,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둘러보고, 자구리 공원, 이중섭 거리, 올레시장 이렇게 돌면 얼추 '작가의 산책길 코스'를 걷는 셈이 된다. 한번 걸어보기로 한다. (가볍게 걷는다며)


1. 솔등산 문화의 거리

나는  거리가  '문화의 거리' 인지  모르겠다. 그냥 주택가 골목길이고 아무런 '문화적 이야기' 발견할  없었다. 무언가 컨텐츠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지역 공무원들의 고충이 느껴졌다. (이건 직장인들 모두의 비애가 아닐까) 이중섭 화가가 생전에 걸었던 산책길 이겠거니 하고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걷다가 발견한 '아름다운 제주 말', 하지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다시 발견한 '아름다운 블록 쌓기' 서귀진의 '집수정'이라고 한다. 물을 담는? 용도 였나보다.
천지연 폭포 가는 길. 빗방울이 떨어진다.


2. 천지연 폭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할 정도인가? 라는 의문이 잠깐 떠올랐다. 하지만 입장료가 있으니 그만큼 관리가 잘 되고 있으리라.

천지연 폭포는 용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귀찮게 자꾸 찾아오는 관람객들 때문에 용은 이미 오래 전에 떠났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들어가보기로 한다.

요새는 키오스크 없는 곳이 없다. 반응속도가 조금만 더 빨라졌으면 좋겠다. 특히 맥도날드.


이름모를 하얀 새와 수많은 돌하루방들이 관람객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천지연 폭포는 오히려 산책길로 제격이다.
천지연 폭포
천지연 폭포

천지연 폭포. 저 물 떨어지는 곳 아래의 못은 깊이가 20m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깊다. 오랜 세월동안 떨어지는 폭포수에 깎여 깊은 연못이 만들어진 것이다. 깊다니, 용이 살기에 매우 적합하다. 이런 곳에는 용이 있어야만 한다. 자연은 이렇게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대대로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을 것이 분명한 이곳에, 현대인들은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관람대를 만들었다. 오래 전, 누구나 쉽게 접근하지 못했을 이 곳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너무 궁굼하다.

(제대로된 길도 없는, 풀과 나무가 우거진 빽빽한 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저 웅장한 폭포가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판타지 영화 속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출구로 돌아 나오는 길, 옛 수력발전소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왼쪽 석벽
오른쪽 석벽

천지연 입구쪽에는 위 사진들처럼 좌우석벽이 높게 서있다.

천지연은 신들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인간계와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옥황상제는 바다에서 움푹 들어간 곳에 하늘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주면서 이렇게 좌우 높은 석벽으로 병풍을 둘러줬다. 인간세계의 욕망과 악한 기운으로부터 떨어진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어준거다.

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스토리인가. 신이 인간을 좌지우지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은둔할 장소를 마련했단다. 이토록 샤이한 초월적 존재라니. 딱 내 스타일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우아한 고고함. 내 가치관과도 맞아 떨어져서 더욱 의미있다. 여기 맘에 든다.


3. 새연교

이제 천지연 폭포를 지났다. 아래 사진 저 멀리 뾰족하게 보이는 새연교를 건너 새섬으로 들어갈 순서다.

사진 중간쯤 뾰족하게 서 있는 하얀 다리
가는 길에 보이는 수많은 고기잡이배들
서귀포는 관광여객선도 운행한다. 나중에 가족과 함께 타보고 싶다.


새연교

새연교는 서귀포 전통 고깃배인 '테우'를 형상화해서 디자인했다고 한다. 만선으로 돌아오는 고기잡이배 모양을 빌어 바다의 풍요를 기원한다. 나는 이런건 그냥 못넘어가서 모양이 정말 비슷한지 궁금했다. '테우'는 아래와 같은 모습인데, 판단은 보시는 분들이 알아서 하시길.

테우, 돛을 달면 비슷하려나


4. 새섬

새연교가 연결된 섬이다. 초가지붕을 잇는 '새(띠)'가 많이 생산되서 '새섬'이라고 한다. 1960년대까지는 실제로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무인도.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이곳으로 날아와 새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라산 당신은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던겁니까.

산책로가 있다. 1.1km. 아담하다.
산책하며 만난 섬 풍경
용암이 어떻게 흘러내려 굳었길래 저런 모양이 나온 걸까


이런 섬에 올때마다 궁금한 점이 있다. 섬의 산책길은 외곽으로만 돌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섬 중심부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거기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누군가 인간세상과 떨어져 거기 살면서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슬금슬금 나타나 바다로 들어가, 물고기를 사냥해 숲속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점들이 궁금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아래와 같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출입금지?

섬 안쪽 숲 중심 방향으로 '출입금지' 라는 표지판이 서있었다. 저 숲 안쪽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일텐데. 1960년대 이후로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출입을 금지하는 걸까. 누가 저 안에 몰래 들어가 거주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궁금하지만,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얼른 자리를 떴다.


5. 자구리 공원

이중섭 화가가 부인, 두 아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즐거운 추억을 가졌던 곳이라고 한다. 별것 없는 그냥 공원이었다. 사진은 안 찍고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더라. (전체 내용이 궁금하면 구글링 하시길)

여기서 밤마다 술판이 벌어지나보다.

이중섭 화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6. 이중섭 거리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 미술관이 있는 골목을 '이중섭 거리'로 지칭했나보다. 문화/예술의 거리라 부르기에는 좀 부족했다. 나이키 등 다양한 매장과, 각종 음식점들이 쭉 들어서 있는 거리였다.

쓸쓸한 이중섭 거리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런 옛날 극장은 볼 때마다 반갑다.
이중섭 거주지. 분명 단칸방에 온가족이 같이 살았다고 들었는데, 방이 많다. 들어가보진 않았다.


7. 올레시장

깔끔하게 잘 정비된 재래시장이다. 서귀포 근처에서 뭘 먹을지 애매하다거나,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면 그냥 올레시장으로 가면 된다. 온갖 종류의 먹거리가 가득하다. 내가 첫날, 둘째날 점심을 해결한 국수집도 이 시장 안에 위치해 있다. 호객행위도 없고(횟집은 예외) 지저분한 분위기도 아니다. 가족과 함께 오기에 적당하다.

시장 입구
여러가지 길거리 음식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벤치도 깔끔하게 마련해놨다.
없는 게 없지만, 통로가 좁지 않고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올레 시장을 끝으로 숙소로 돌아와 방에서 잠깐 쉬었다.

1층 카페에 내려와 커피를 마시며 사진과 글을 정리했다. 카페는 다음편에서 소개해야겠다. (오늘 뭔가 너무 많은 걸 한 듯)


저녁을 먹으려고 어제 볶음밥을 포장해왔던 중국집에 갔다. 금일 휴점이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아랑조을거리'로 걸어갔다. 먹을거리가 많다고 한다.

아랑조을거리 입구. 제주도에는 무슨무슨 거리가 많다.

뭘 먹을까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걷는데, 대기중인 사람이 많은 가게가 하나 보였다. 가까이 갔더니 초밥집이다. 대기가 이렇게 많다는 건 맛집이란 소린데. 나는 어차피 매장에서 먹을껀 아니니까, 들어가서 포장으로 주문했다.

이 가게에만 대기가 많더라

15분 정도 기다리니 포장이 나왔다. 가지고 호텔로 돌아와서 먹었다. 맛있더라. 사람들이 왜 줄을 섰는지 이해가 갔다. 초밥 좋아하는 아내가 생각났다. 다음에 꼭 같이 와서 먹어야겠다.(포장으로)

인상 깊다


먹고 잠들었다.


제주 3일차.



1일차 : https://brunch.co.kr/@dontgiveup/81

2일차 : https://brunch.co.kr/@dontgiveu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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