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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Nov 12. 2021

다시, 제주에 혼자 왔습니다 4

20211108~20211112

20211111


사실은 어제 저녁, 마라도행 여객선 예약이 열려서 얼씨구나 하고 예매했었다.

드디어 가는구나 마라도~ 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룰루랄라 준비를 하는데, 문자가 왔다.


이런이런

비가 내리진 않는데, 풍랑이 세서 위험한가보다. 비보다 바람이 더 무섭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기회는 언젠가 또 온다. 단지 이번 제주여행에서는 안되나보다. 어쨌든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괜찮다. 걸으면 된다.

오늘은 올레길 7-1코스를 걷기로 한다.

지금 묵고있는 숙소가 좋은 점이, 3개 코스(6,7,7-1)의 시작/끝 지점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결국 3개 코스를 모두 걷게 되는구나. 사실 7-1은 내륙을 걷는 코스라 크게 끌리진 않았다. (나는 바닷길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으니, 얼른 준비해서 길을 나선다.

공복에 걷는 느낌이 좋아서 아침은 먹지 않는다. 가볍게 걸으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


7-1코스


7-1코스의 끝지점(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시작지점(서귀포버스터미널 앞)까지 15.7km를 거꾸로 걷는다. 주황색 리본을 따라가면 된다.

출발
동네를 지나
날씨가 좋다 (하지만 또 금방 비가 오겠지)
슬슬 시골길로 접어든다


하논습지를 만났다. '하논'은 큰 논 이라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여기서 벼농사를 짓는다. 지하에서 용천수가 솟아 물 대기가 용이하다고 한다. 여기가 굉장히 넓은 분화구란다. 한반도 최대 규모 마르(MAAR)형 분화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냥 자연은 대단하다 정도로 이해했다.)

하논습지
'태고의 하논' 그러니까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여기는 이런 모습이었을 거다. 저 안쪽이 습지로 변했나보다.


벼농사를 짓는다. 여기서 논을 만날 줄이야. 논두렁 길이 정겹다.


경운기. 어린시절 할머니/외할머니 댁에 가면 경운기가 있었다. 타보고 싶어 주변을 얼쩡거리곤 했다.기회가 좋으면 삼촌 혹은 큰아버지가 태워주셨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 그것도 제주도에서 말야.

반가워


봉림사를 지난다.

봉림사
다시 시골길이 시작된다.


고근산 근처에서 올레길 리본 표식이 중간에 끊겨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다음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네이버 앱으로 확인해봤더니, 표식과 앱 상의 루트가 아예 달랐다. (앱으로는 전혀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맙소사. 산 길을 들어가는데 허술한 리본 표식을 따라갈 순 없으니, 네이버앱을 따라갔다. 당연히 리본은 없는 길이었다.

네이버 앱에 나와있는 7-1 루트


고근산 종합 안내도를 만나 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크게 돌아 고근산 정상을 찍고 내려왔어야 했다. 네이버앱은 우회하게 되어있어, 정상을 거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꼴이 되었다.(나는 서호호근도로 중간쯤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 고근산로를 따라 걸었다)

대충 지나갈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산 정상을 찍어보라는 올레길 설계자의 의도가 있었을테니, 다시 고근산 정상으로 올라가보기로 한다. 그냥 이대로 지나가면 후회할 것 같다.

A코스로 올라가 고근산 정상을 한바퀴 돌고 B코스로 내려오면서 7-1 코스에 합류하기로 한다.


경사가 가파르고 길다. 계단이 많다. 힘들다. 그냥 지나칠껄 괜한 짓을 했나.

그래도 기왕 시작했으니 열심히 올라간다.

계단
이 많은 계단은 누가 설치했을까


산은 힘들게 올라가면 늘 보상을 준다. 좋은 뷰도 그 중 하나다. 성취감은 덤.

정상 뷰
다시 만난 7-1코스
고근산 정상의 바람 소리


기왕 올라온거 오름 정상을 크게 한바퀴 돌아본다.

오름은 일반 산처럼 뾰족하지 않아 정상이 넓다. 화산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흘러내린 분화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길을 따라서 정상을 크게 한바퀴 돈다.
하산 뷰
이렇게 하산한다. 혼자는 다니지 맙시다.


고근산을 내려와서 이상한 코스로 접어들었다. 숲 길이었는데, 길이 아닌 코스를 억지로 연결해놓은 느낌이었다. 잠깐 한 눈 팔면 헤매기 딱 좋다. 혹시 7-1을 걷게 된다면, 비오거나 해 질 무렵엔 이 길에 들어서지 않는걸 권합니다.

이런 길이 계속된다. 절대 리본을 놓치지 마세요.


엉또폭포.

엉또폭포는 비가 내려야만 물이 떨어지는 곳인데, 대체 왜 7-1이라는 코스를 억지로 만들어 이 곳을 중간지점으로 넣었는지 궁금하다. (경로도 이곳을 경유하도록 이상하게 꼬아놨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아래 사진 뿐) 마케팅의 승리인건가. 7-1코스 설계자는 굳이 왜 여길 집어넣었을까.

이런 궁금증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걷다보니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역시 깊은 생각에는 걷기가 최고다) 결국 '7-1 코스는 왜 생겨났는가?' 라는 의문에까지 이르렀다. 동네 지역 유지의 요구 였을까? 그렇다면 8-1 , 9-3 , 12-25 같은 코스 등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잖는가. (이유는 어떻게든 끼워맞출 수 있겠지만)

최초에 올레길 코스 선정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을까.

엉또폭포. 물이 없다.


이제 이런 마을 길이 계속된다.


7-1코스의 마지막 숲 길.


이쯤 왔는데 갑자기 왼쪽 엄지 발가락이 아프다. 못 걷겠다. 잠깐 바닥에 앉아서 쉰다. 고작 4일 걸었는데 주저앉았다. 이런 몸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입에 올리다니. 신발을 벗고 조금 쉬니 견딜만 하다. 다시 출발한다.

도심지에 접어든다.
월드컵경기장 공원 (맞겠지)


서귀포 터미널 앞 도착. 4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아무것도 안 먹고 걸었더니, 배가 고팠다. 서귀포터미널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먹었다. 맥도날드가 키오스크를 업데이트 했나보다. 반응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더라. 고객의 소리를 귀담아 듣다니, 칭찬합니다.

저 '뚜껑이'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마실 때 후루룩후루룩 해야 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고 길찾기 앱을 조회했더니 6km 정도 거리가 나온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그냥 걸어서 복귀하기로 한다. 어차피 내일 서울 올라가니까 실컷 걸어보자.

숙소로 걷는 중 만난 한라산. 봉우리가 흰 눈에 덮여있다. 벌써 눈의 계절이구나.


그냥 버스타고 복귀할 껄(오늘 따라 후회가 많다) 너무 많이 걸었다.

발도 아프고, 몸이 욱신욱신 쑤신다. 사람은 이래서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하고 조금 누워서 쉬다가 1층 카페로 내려왔다.

바로 정리해서 기록하면 잊지 않는다. 오늘의 걷기를 차근차근 돌아보며 이렇게 글 남긴다.


아, 그리고 1층 카페.

상호는 '레트로 보이즈' 차도 마실 수 있고, 제목 그대로 각종 레트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엊그제 먹었던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다시 포장해왔다.

방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한국 대 UAE, 월드컵 최종예선을 봤다. 한국의 1:0 승리. 오래간만에 본 재미있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였다. 2만명 관중이 들어찬 고양종합운동장을 화면으로 보고 있노라니, 위드코로나 시대가 새삼 느껴졌다.

피곤해서 일찍 잤다.


제주 4일차.




1일차 : https://brunch.co.kr/@dontgiveup/81

2일차 : https://brunch.co.kr/@dontgiveup/82

3일차 : https://brunch.co.kr/@dontgiveu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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