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차피 안될꺼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그냥 대충 공무원처럼 지내시면 돼요.'
'괜히 들쑤셔서 일 만들지 말고, 적당히 보고서 올리고 마무리 합시다.'
그래도 IT를 혁신하겠다고 모인 팀에서 저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기존 서비스를 개선하려고 뿌리부터 흔들어야 하는 이 판국에, 비참한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다.
실무는 이런 분위기인데, 임원은 '미국에도 먹히는 대단한 글로벌한 서비스를 만들자.' 고 외치고 있다. (임원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공수표 남발, 이 이야기는 내 예전 글에서 많이 했으니 이 정도로)
합류하면서 전혀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대기업식 상명하복 , 복지부동 문화는 남아있겠지. 라는 걱정.
하지만 혁신을 위해 모인만큼 개선의 의지는 다들 충만하겠지, 라는 기대.
걱정과 기대가 공존했지만, 잘 해보자는 열정을 가진 채 업무에 임하기로 했었다.
설마,
설마,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저런 태도가 온 회사에 만연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적당히 하고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렇게 동화되는 건가. 소름끼친다.)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혁신적인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최근 합류한 경력 입사자의 면면을 보자.
'45세, 전 회사에서 개발팀 관리자, 이직사유 : 정년까지 채울 곳을 찾아옴'
'45세, 전 회사에서 기획팀 관리자, 이직사유 : 적당한 워라밸과 정년보장'
'44세, 전 회사에서 기획팀 관리자, 이직사유 : 실무보다는 관리를 하고 싶음'
거의 대부분, 현 임원의 지인. 정년을 채우고 싶어 찾아온 인생의 마지막 회사.
(이건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가 어느정도 있지만, 열정을 가진 존경할만한 훌륭한 시니어들이 IT 세계엔 여전히 많다.)
실무를 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관리자 하고싶은' 사람들만 모인다. 이렇게 되니, 자꾸 없던 직책이 생긴다. 실장/팀장/그룹장/파트장/셀장 등등 너도나도 보직을 달라고 하니 그럴 수 밖에. 나도 이 파멸의 나선에 적당히 편승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따뜻한 대기업 맛을 보며, 적당히 지내기엔 도메인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잘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눈에 자꾸 들어오고, 고치고 싶다. 조금만 손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울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나보다.
며칠 전 본 영화에서 비슷한 내용을 찾았다. 대사를 듣고 있노라니 공감이 됐다.
영화 포드 v 페라리 중
하고픈 일을 아는 자는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대부분은 일을 하지 않고 삽니다.
극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이게 운이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해야 할 무언가를 결국 찾아냅니다.
집착할 무언가.
그 일을 못하면
미쳐버리게 되죠.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인 이 세상에서, 본인의 꿈을 향해 미친듯 달리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회사에 새로 합류하는 동료들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ㅇㅇ님은 꿈이 뭐에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대충 지내다 정년 채우고 싶어요.'
'가늘고 길게 가려구요.'
아직까지 본인의 서비스에 대한 목표와 열정을 드러내는 대답은 한번도,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더 나은 도메인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 프로덕트를 멋지게 만들꺼에요."
나는 위와 같이 대답할 준비가 되었을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는걸까?
나도 시나브로 동화되고 있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나 남 뒷담화로 채워지고있는 팀 채팅방을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What have you done lat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