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Sep 27. 2022

오늘도 퇴근합니다

일도 탈도 말도 많지만 집에는 가야죠

저녁 여섯 시 이십팔 분. 노트북 뚜껑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지만, 후. 오늘 하지 않는다고 큰일이라도 나겠습니까. 직장생활 5년 동안 배운 거 하나는 모든 일을 그렇게 다 제대로 빨리 해버릴 필요는 없다는 거.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기억력이 적당히 나빠야 행복하다는 거.


도보로 8분 거리를 4분 만에 달려 회사 근처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려 일 년 반만이네요. 늘 여유 넘치고, 사람 좋지만 자기만의 선이 확실한 사람. 여유는 잔고에서 오고, 상냥함은 탄수화물에서 온다는 말을 벌써 10년째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사람. 다음 생이 있어서 꼭 태어나야 한다면, 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참 친애하고 존경하는 선배를 만났습니다.


오늘도 한우를 사줄 심보인가 봅니다. 오늘만은 선배가 계산하지 못하게 일부러 가에 앉았습니다. 변변치 않은 후배지만 그래도 이제 어쩌다 소고기 대접할 만큼은 버는데, 너 돈 잘 버냐면서 역정을 내십니다. 다음번에 부담스러워서 만나기 싫어진다는 핑계로 N빵을 강요합니다. 참내!


카카오페이로 쿨하게 송금을 날리고, 택시를 잡아 유유히 사라지는 새럼. 진짜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한 세 시간 그리 길지 않은 술자리에 하루치 피로가 싹 풀립니다. 오늘 점심에 분명 평일에 술 마신다는 동료에게 체력도 좋다며 한 소리했는데. 퇴근 후 알딸딸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아침 아홉 시 삼십 분.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부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10년째, 마음 한편에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선배의 부친상 소식입니다. 발인이 바로 내일인데, 장례식장은 안동. 마음 같아서는 아버님 보내드리는 길 곁을 지켜드리고 싶지만, 여러 가지로 쉽지가 않습니다.


고민 끝에 부의를 보내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사이가 썩 좋지 못한 아버지를 먼 곳에서 보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나름대로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데 젊음의 한 페이지를 다 써버렸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가 도저히 위로할 용기가 나지 않아 금방 끊어버렸습니다. 대학생 때였다면 대신 엉엉 울어주었을 텐데, 생략된 사연을 감히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는 척 묻지 않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요즘 참 잘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는데, 제발 감당할만한 수준의 상처만 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택시에서 내려 다시 현관문 . 여전히 쌀쌀하네요. 선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바로 오늘 아침이라는  여전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생전에  적도 없으면서  자꾸 마음에 밟히는지. 이러다 술이  깨버리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하게 간절한 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