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아도, 가끔씩 생각나는
음식에 대해 특별한 취향이 없습니다(?)라고 하기엔 사실 매우 까탈스러운 편이라서, "그냥 다 잘 먹어요."라고 하고 넘어가는 편입니다. 주도적으로 메뉴를 고르기도 사실 귀찮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면서 여기저기 따라다니다 보면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편안한 상태로 혼자 먹고살면 조금 홀쭉해집니다.
먹기 전후로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식사 패턴은 하루에 한 끼 정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머지 끼니는 가볍게 지나가거나, 아침저녁엔 엄마의 집밥을 먹고 점심 한 끼 정도 MSG 냥냥하게 외식하고 중간에 간식을 약간 주워 먹는 거예요.
메뉴는 주로 한식(a.k.a 엄마 밥 + a)과 분식(a.k.a 떡볶이)을 좋아하고, 든든한(필수) 샐러드와 배부른(필수) 포케도 즐겨 먹어요. 내 돈 내산은 여전히 좀 아깝지만요. 그리고 이번 여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코다리 냉면을 비롯해서 면류를 꽤 좋아하더라고요.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해서 고기도 자주 먹습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제게 혼밥은 일상이요, 4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입니다. 특히 불편한 사람들과 미슐랭을 먹는 쪽보다는 무조건 책이나 유튜브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하고요. '출출한데?' 하고 시간을 보면 무조건 네 시예요. 그냥 넘어가거나 저녁을 좀 일찍 챙겨 먹으면 또 조금 홀쭉해지고, 이 시간에 간식을 먹고 저녁을 늦게 먹다 보면 또 조금 통통해집니다.
그냥 언젠가 한 번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독하거나 그렇지 않은 미식가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딱히 내세울 취향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아 늘 할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오늘,우연히 김밥천국에서 혼자 떡보다 양배추가 많은 라볶이를 먹다가 한 때 주야장천 먹던 익숙한 음식들이 주르륵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조금 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람보다 음식이 먼저 생각나는 시절이 있습니다. 대체로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날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거나, 알아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던 때. 어쩌면 세상도, 타인도, 그리고 나 자신도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체념했던 시간들.
돌이켜보니 어차피 당장 의미 없을 말도, 생각도 귀찮아서 본능적으로 음식에게서 위로를 찾았던 건 아닌가 싶네요. 어차피 이야기해서 해결되는 것도 해소되는 감정도 없다고 느껴지니까요.
위로받을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날들에 곰이 마늘을 먹으며 혼자 시간을 버티듯 매번 같은 음식을 먹으며 나만의 면역력을 키웠던 건 아닌가. 뒤늦게 해설을 달아봅니다. 지금은 잘 먹지 않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굳이 찾아 먹지는 않지만, 언제 먹어도 익숙한 옛 친구 같은 시절 메뉴들.
빵 안에 들어간 계란부침에서 옥수수 알갱이가 씹히는 이삭 토스트. 매콤한 버전이 나오기 전, 아웃백의 오리지널 투움바 파스타와 깻잎이 잔뜩 들어간 엄마표 순대 야채볶음. 아직 한국에 인도 커리 식당이 많지 않던 시절에, 파는 곳이 많지 않아 엄마를 꽤나 고생시켰던 오뚜기에서 출시한 인도 마크니 커리. 가족 중 아무도 먹지 않아서 더 좋아했던 쫀득쫀득한 막창. 카페인이 필요하지 않던 시절에 아메리카노 대신 즐겨 마시던 요거트 스무디와 녹차 라떼.
그 사이사이에 학교 끝나고 매일같이 학원으로 실려가던 기억,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두문불출하며 가족들 애간장을 태웠던 고등학교 시절, 어디를 향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화를 내던 이십 대 초반. 뭐가 그리도 불안하고, 어려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게 음식인 줄 알았는데, 지금 쓰다 보니 그걸 만들고 방까지 배달해주던 엄마의 약간은 피곤한 사랑이었나. 아빠의 무관심 같은 관심이었나. 싶기도 하네요.
역시 아직 음식 이야기만 풀어내기엔 뭔가 모자람이 있어 보입니다. 내일도 엄마 밥 감사히 먹고 나중에 다시 도전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