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가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나의 타고난 기질과 삼십 년 동안 빚어진 모습을 스스로 견딜 수 없는 날이 있을 뿐. 그런 날이 며칠이고 계속되어 머릿속의 생각이 팝콘처럼 튀겨지는 동안,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어두운 시간이 끔찍하게 자괴스러울 뿐.
물론 알고 있다.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을. 노트북을 들고 카페라도 간다면, 뭐라도 하게 될 것을. 요가원으로 가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내 안에 쌓인 무거운 감정들도 조금은 비워낼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운동을 하면, 규칙적으로 건강한 식사를 하면, 제 때 잠자리에 들면, 아침 일찍 개운하게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예쁘게 차려 입고 어디론가 나간다면, 아주 작더라도 to do list를 만들어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면, 일기장에 감정을 토해내고 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그렇지만 간헐적으로 성실한 내게 아는 대로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예기치 못한 야근에,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생리에, 언제부터인지 이유를 모르게 건조해진 관계에,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채운 발목의 족쇄에 끌려다니다가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티고 버티다가 문득 모든 에너지를 잃고 이불속에 자리 잡아버린 나를 어느 날 발견하게 될 뿐이다.
하루는 괜찮다. 이틀은 답답하다. 사흘은 울적하다. 나흘 째부터는 무감각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친 곳이 결국 작고 작은 직사각형 방의 오른쪽 위 모서리 구석일 뿐이라니. 피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중에 수습하는 데에는 복리로 비용이 드는 것을 여러 번 배웠으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리고 나를 미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걸 알면서도 끝내 나를 쥐어뜯고야 만다.
나는 나의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우선 능력과 체력과 성실함에 비해 욕심이 너무 크다. 무엇이 우선순위인 지 무엇을 포기해야하는 지 모르겠다. 다 가지고 싶은 걸. (뭘 가지고 싶은지 모르겠는 걸까. 헷갈리는 걸까.)
그래서일까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하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감정이 엇갈린다. 일희일비한다.
아마도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나의 조급함 때문에, 그런 나를 보며 전전긍긍하느라 타인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애를 써보지만, 힐끔힐끔 눈치를 볼뿐. 타인은 나에게 늘 어렵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사랑받고 싶은데, 그게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피하고 싶다.
노력할 자신은 없으면서, 또 혼자이고 싶지는 않다. 도둑놈 심보.
불안에 휩싸여 스스로를 갉아먹고 갉아먹다 번아웃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고장이 나서도, 불안한 마음에 쉽사리 멈추지 못한다.
결국, 작게 수리할 수 있는 사고가 크게 나버리고 만다.
그런데 그냥 도망가면 안 될까. 수습하기보다 사라지고 싶다. 상습적 뺑소니.
결국, 방으로, 스마트 폰으로, 책으로, 영화로 도망칠 거면서. 어디 갈 데도 없으면서 자꾸만 숨는다.
어떤 식으로든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고장 난 오토바이처럼 덜덜덜덜 소리만 날 뿐. 움직이질 못한다.
청소도 잘 못하고. 먼지 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있다. 만사가 귀찮다.
결정적인 순간에 타이밍을 못 맞춘다. 눈치가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이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조금만 더 해볼 수는 없을까. 머리로는 알면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자꾸만 자책한다. 일어서면 되는데, 일어서지를 못하고.
이렇게 내가 미운 날들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 답은 이미 알고 있지. 실천이 어려울 뿐. 우선, 일찍 자자. 오늘은 푹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