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탕과 냉탕 사이를 오가다 너무 일찍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어쩌죠
열탕과 냉탕 사이를 오가다 너무 일찍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어쩌죠
그래서 넌 도대체 문제가 뭐야?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공부도, 일도, 삶도 썩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탓이다. 그냥 잔걱정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가끔 스트레스를 못 이겨 급발진을 해버리는 게 문제다.
곧잘 공부를 하더니 수능 3개월을 앞둔 어느 날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거나. 어찌어찌 입학한 대학에서 필수 과목인 중국어 시험 A+를 받기가 요원해 보이자 백지를 내고 B 대신 F를 선택해버렸다거나. 멀쩡하게 다니는 줄로만 알았던 회사 화장실에서 매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다거나. 어렵게 옮긴 회사에서도 또 똑같은 방황을 한다거나.
욕심만큼 잘 해낼 자신이 없을 때 나는 줄곧 잠수를 타고 도망쳤다. 그리고 이런 선택 뒤에는 어김없이 자책과 자괴의 시간이 온다. '남들은 다 견디는데 왜 나는 이거 하나 견디지 못할까. 애초에 하지도 못할 거면 시작은 왜 했을까.' 스스로를 탓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몸은커녕 마음조차 마음처럼 안 되는 긴 동굴의 날들이 시작된다.
십 대 때에는 이런 나를 나도, 엄마도, 선생님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멀쩡하던(혹은 멀쩡해 보이던) 애가 문득문득 이러니. 그저 또 지랄병이 도졌다는 거친 말 또는 사춘기가 심하게 왔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추상화되었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널브러져 있던 나는 이내 또 시동을 걸고 다음 시험을 향해 출발했기에 결과만 봤을 때는 여느 모범생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매 학기마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지만 시험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점수를 냈기에 아무도 큰 문제 삼지 않았다. 힘이 넘쳤는지, 데이터가 부족했는지 무너지는 모래 위의 성을 계속해서 쌓았다. 내게 십 대는 끊임없이 더하고 파괴하고 다시 더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루는 핑계가 되었던 수능이 끝나고서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잦은 주기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찾아왔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걸까. 만성이 되어버린 걸까.
대학 생활 시작과 동시에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다. 별일이 없어도 내가 일을 만들어서 나를 괴롭히고 지지고 볶는 날이 계속되었다. 나를 고쳐 써보겠다고 스스로 정신과도 찾아가 보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알레르기처럼 발작을 일으키는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불치병 진단을 받은 환자처럼 엉엉 울었다.
스물한두 살 즈음, 나는 울다 지쳐 일찍이 나의 가능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청춘', '젊음', '꿈', '희망'이라고 불리는 내 안의 형체를 알 수 없는 그 에너지를 내려두고 무난하게 사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술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다. 약속은 일주일에 한 번만 잡는다. 너무 많은 사람과 알게 되지 않는다. 너무 무리해서 도전하지 않는다.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다. 따위의 규칙을 그어놓고 나를 그 안에 가두었다. 열 가지 일이 하고 싶어도 한 두 가지만 남기고 지워버렸다. 그 한 두 가지 마저도 후일이 무서워 설렁설렁 여유를 두고 했다.
그러나 사람의 타고난 기질인지 그저 고착화된 패턴인지. 아무튼 뭔지 모를 그게 참 무섭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나로부터 나를 지켜냈다고 방심하는 순간 또 어딘가에 꽂혀 불타오르고. 화들짝 놀라 불을 꺼보지만, 이미 스스로를 빠르게 소진시킨 뒤다.
인턴을 할 때도,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1인 크리에이터로 살 때도, 그 가운데 어디쯤이라고 생각해서 콘텐츠 회사 어딘가에 겨우 터를 잡은 지금도 자꾸만 현재를 넘어서려 애를 쓴다.
적당히를 모르고 또 지나치게 방향 모를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미 한번 끊어진 마음의 인대는 자꾸만 쉽게 다친다. 그렇게 열탕과 냉탕을, 열정과 무기력을,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이십 대가 계속되었다. 의식적으로 덜어내고 빼도 계속해서 차오르는 내 안의 무엇인가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스물아홉에 만난 인생 일고여덟 번째 심리 상담 선생님은 성장 욕구와 불안이 모두 높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럼 어쩌냐고 했더니 잘 알지 않냐고. 아마 계속 이럴 거라고 했다. 이런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에 쿵- 소리가 울린다.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다고. 꽤 많다고. 일을 대충 하는 연습을 좀 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잘 자고, 잘 먹으라고 하셨다. 아니 그게 말처럼 쉽나. 다들 어떻게 스스로를 데리고 사는 걸까. 나는 잠깐만 눈을 떼도 불 앞에 둔 아이처럼 위험해지는 데. 이제 와서 나를 미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불쑥불쑥 화가 치민다. 나는 정말 왜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어서. 그렇게 나와 화해하지 못하고 빼기의 이십 대가 끝났다.
삼십 대에도 또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징징거리고 싶지는 않은데, 자꾸만 내 안의 내가 엉엉 운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불안이 더 커서 그래요. 어디에서도 쓸모없을까 봐 무서워서 그래요. 그래서 제대로 못할 바엔 꿈꾸지도 않기로 했는데, 욕망을 거세하는 쪽을 택했는데 그 마저도 쉽지가 않아서 너무 속상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요. 왜 또 나는 감당 못할 욕심을 부리고 있나요. 왜 또 그 부담을 끌어안고 꺽꺽 울고 있나요. 사실 이제 눈물도 안나요.이제 나를 믿고 데리고 살 사람은 나 자신뿐인데. 다 아는데. 이제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해내야 할 때인데.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데. 이렇게 또 무너지는 날들이 계속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제 진짜 더하기와 빼기 사이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아보고 싶다. 하지만 문제를 알고, 정답을 알아도 여전히 몸이,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 긴 세월 실패했는데, 그래서 나는 이미 너무 지쳐버렸는데. 나는 이 두려움 속에 또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힘을 주지도 빼지도 못하는 정말 자신 없는 서른의 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