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사그라드는 삶을 바라보며
어른이 되니 삶이 재미없다는 말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어느 모임이라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먹고 살기 쉽지 않다는 것. 아무것도 몰랐던 예전이 좋았다는 것. 이제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 이제 우리 앞에 남은 퀘스트는 결혼과 출산뿐이라는 것.
그런데, 돌이켜보면 10대 때부터 입버릇처럼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죽고 싶다. 정확하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지 어언 15년이 넘었다. 과연 어른이 돼서 삶이 재미가 없어진 걸까 삶은 원래 재미없었는데, 기대의 크기가 점점 작아져서 더 자주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일 뿐일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삼촌이 있다. 없는 형편에 큰아들이라고 삼수를 시켜놨더니, 대학 간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졸을 선택한 사람. 경제 호황기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부도를 맞은 와중에 장가를 갔다 갑자기 돌아온 사람. 한동안 우리 집에서 살면서 맨날 술만 마시더니, 젊어서 할머니가 100원짜리 한 장씩 아껴서 마련해둔 서울 끄트머리 땅에 쓱 눌러앉은 사람.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자식 욕심을 못 버려서, 조카보다도 어린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한 사람. 그렇게 할아버지가 될 나이에 얻은 아들을 내세워 온 가족의 입을 다물게 한 사람. 그래 놓고는 명절마다 우리 집에 드러누워 너도 얼른 시집가서 애 같이 놓고 키우자고 말해 뒷목을 잡게 하는 그런 사람.
꽤 오랫동안 삼촌이 얄미웠다. 장남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일이라고. 평생 할머니를 모시고 산 작은 삼촌과 삼촌들을 대신해 집안의 모든 경조사를 챙긴 우리 엄마는 제쳐두고, 큰아들과 아직 말도 못 하는 장손만 보고 싶다는 할머니한테도 서운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나이까지 하고 싶은 게 있고 갖고 싶은 게 있는 삼촌이 부럽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삶에 대한 열망, 내일에 대한 기대, 잘하고 싶은 욕심. 그 에너지를 돈 주고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이유를 찾던 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어른이 되면, 대학을 가고 나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취직을 하고 나면, 결혼을 하면, 내 집이 생기면... 하나씩 미루다 보니 기대하는 법을 잊어서일까. 온전히 마음을 내어주었다가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서인가.
너무 오랫동안 마음의 가드를 올리고 살다 보니 이제 더 이상 뭐 하나 기대하기가, 뭐 하나 욕심부리기가, 뭐 하나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가 참 어렵다. 그리고 참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