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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May 19. 2022

미루고 미루던 일을 해치우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까. 끝없이 다음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마시멜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렸을 , 마시멜로 이야기가  핫했다. 당장의 욕망을 미루는 능력, 좋게 말하면 자제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 따위를 떠들어대는 어른들을 보며 짜증이 났다. 자기들은 눈앞에 작은 것도 참지 못하고 나한테 신경질을 부리면서. 매질도 서슴지 않으면서  그렇게 참으라는 건지,  그렇게 대학에 가서, 어른이 돼서 하라는 건지. 마시멜로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내게 저런 실험을 시킨다면 나는 당장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어 치워 버릴 거라고. 씩씩 거렸다.


뽀뽀도 못 해보고

말은 그렇게 해도. 나중에 마시멜로가 10개든 100개든 어쨌든 늘어나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끈기나 참을성 따위를 별로 타고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아하지 않더라도 뭔가 많이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런  같고. 아무튼 원하지도 않으면서 원하는  애매한 성정 덕분에 나는 그런대로  미루면서 대충 어디 가서 무시받지 않을 만큼의 성정과 대충 모나지 않게 남들과 어울리는 척할  있는 성인이 되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미뤘다. , 담배는 물론, 종소리가 난다는  키스가 뭐야.  흔한 입도  맞춰보고 대학에 갔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렇게 속아 놓고도, 10년을  속았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면. 그리고 나면 뭔가  나아지겠지. 100개는 아니더라도 1개의 달콤한 마시멜로쯤은 내게도 주어지겠지. 외제가 아니어도 좋다. 국산이어도 좋다. 공장에서 만든 것이 아니어도 좋다. 텃밭에서  딸기라도 좋다. 딸기는 비닐하우스제니까 너무 고급인가. 아무튼 내가 살아온 날의 절반을  욕망을 미루는   썼는데 잠깐의 달콤함은 보상으로 주겠지.


더 이상 미룰 것도 없는데

시간도 생기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생겼다. 나름 안정적(?) 직장도 잡았다. 미뤄왔던 to-do 리스트도  많이 지웠다. 운전면허를 따고, 라섹 수술도 했다. 여자라서 무려 1 동안 60 원을 내고 맞아야 한다는 자궁경부암 주사도 3번에 걸쳐 노나 맞았다. 이제 진짜 미룬  없다. 악바리처럼 모아서 집도 샀고, 미뤄온 효도도 했고, 진짜 . 해야 하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하고 싶은  없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서

여유가 생기면 달라진다더니, 이젠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가 않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갖고 싶었던  사랑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랑도 현실  하나일 뿐이더라. 일도, 취미도, 운동도,   멀리하니 쉽게 떠나가더라. 그냥 그렇게 모든   없어도 괜찮더라. 친구와 가족이라는 관계에도 기대하지 않는  오히려 낫더라.


미루던 일을 끝내면

살아보지도 못한 집에 들어간 돈을 갚기 위해 쥐뿔도 없는 내겐 회사가 일시적으로 보장하는 신용이 필요하고, 자리에 앉아해야  일을 하다 보니 그냥 열심히 고민해서 하게 되고, 하지만  오래 앉아 있을 만큼의 자제력과 인내심은 이미 한참 전에 바닥이 낫고, 떨어지는 생산성으로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다 자정에 가까운 데도 택시가 잡히지 않는 퇴근길엔 뭐한다고 이러고 사나 싶고, 다음날은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고. 듣고 싶지가 않고. 다음날은 일찍 퇴근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괜히 일을 남겨두고 집에 와서 해야  일을 생각하다 우울해져 잠이 들고.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진짜 끝이 있는 걸까. 사주에라도 매달려 볼까. 참나. 평생  한단다. 근데 실익은 별로 없단다. 대운은 50대란다. 참나. 그때 돼서 마시멜로 100 주는  그냥  10  마시멜로 1개에 인플레 때려 박은  아니냐. 이게 본능을 거스르며 참고 참고  참은 대가라니. 염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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