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해 첫글치고는 조금 우울하지만

짧은생각 #7 : 아직 이겨내지 못한 그놈 이야기

by 지원

2024년 새해 첫 글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까, 여러 날을 고민했다. 나도 평소 같았으면 별 부담 없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았겠지만, 그래도 새해 시작이라는 좋은 소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과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충 써 갈기고 싶지도 않은 괜한 자존심이 얽혀서, 많은 문장들을 썼다 지웠다 하다보니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지만, 새해를 맞아 좀 더 시간을 생산적으로 써보겠노라, 하루하루 타임블록을 나누고 열심히 지켜왔다. 아침 출근해서 30분 독서, 저녁에는 밥 먹기 전에 가볍게 운동. 1년 넘게 죽어있던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다. 오타니 쇼헤이의 일화에 감명을 받고는 나도 만다라트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자기 전에 수첩을 펼치고 머리를 쥐어짜기도 했다. 물론 다 채워넣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아니, 오타니는 어떻게 고등학생 때 이 81칸을 다 채운걸까.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오늘도 아침 독서, 퇴근 후에는 1시간 유산소도 했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우울한 느낌.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브런치 쓰기라는 계획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누워 인스타 릴스만 멍하니 들여다보며 서너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런 내가 한심하다가, 불현듯 이걸 글로 쓰고 싶어져서 브런치 어플을 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오늘의 타임블록은 완성되었다.


나는 평소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기분 따라 행동하지도 않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감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별거 아닌 작은 목표 하나가 너무 부담스럽고, 잘해오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는 아무런 노력 없이 공허한 쾌락만 즐기는 도파민 파티를 연다. 그러고는 후회하고 자책한다.


이 우울감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오늘도 아마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겠지. 번아웃이라기에는 너무 불규칙한 것 같고, 체력적인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원인을 도통 모르겠다. 한두 해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 이놈을 이기는 법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한결 낫긴 한데, 그렇다고 계속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


다만 한 가지 느낀 것은, 그럴수록 기본적인 생활을 더 잘할 필요가 있다. 밥 든든하게 먹고, 잠깐이라도 걷고, 따뜻한 물 한잔 마시고, 크게 숨 한번 내뱉는 것. 세워둔 목표나 정해진 투두리스트 따위는 잠시 내려놓고, 나를 존재하게 하는 아주 당연한 것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꽤 도움이 된다. 어찌 됐든 오늘은 지나갔으니, 다가올 내일을 또 살아내기 위해 푹 자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동안 덕분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