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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10. 2023

덕업일치

장점 둘 : 직무 동기

선호 : 야, 근데 넌 왜 공무원 준비하냐?
기로 : 면접 답변 같은 얘긴데 해도 돼요? 재미 없을 텐데.
아영 : 뭔데 뭔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기로 : 좀 거창한데, 보다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서?
선호 : 진짜 준비한 답변 같은데.
기로 : 아니에요 진짜. 그니까 아직 우리가 더 발전해야 할 부분들이 많잖아요? 자살률도 높다고 하고, 행복지수도 하위권이라고 하고. 좀 모두가 즐거운 세상이 됐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공무원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좀 국지적인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를 움직이는 제도나 정책을 다루는 일을 하잖아요.

대한민국 자살 사망률 : 28.4명/10만명, OECD 국가 중 1위 (‘11. OECD)

대한민국 국가행복지수 : 5.951점, 57위/137개국 (‘20.~’22.  SDSN, 세계행복보고서)

선호 : 니가 공무원을 안 하는 게 우리나라한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기로 : 앗?
선호 : 건방진 놈.



아영 : 근데 기로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사바사겠지만 그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큰 장점일 수 있을 것 같아.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한다는 점?

대한민국헌법 제7조 (1)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기로 : 맞아요, 그거에요. 제가 공무원을 안 한다면 결국 어디에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할 텐데, 그건 결국 돈 자체가 목적이잖아요.
아영 : 그치. ‘고객을 어떻게 더 늘릴 것인가.’, ‘어떻게 더 지갑을 열게 만들 것인가.’ 같은 걸 고민하겠지.
기로 : 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절대 아닌데,
선호 : 그게 어떻게 잘못이야. 당장 우리 엄마 아빠도 장사하시는데.
기로 : 그러니까요. 잘못됐다는 건 아닌데, 어쨌든 그건 사익이잖아요. ‘내’가 돈을 벌려고 하는 거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목적은 아니란 말이죠.
선호 : 그건 그렇지.
기로 : 그래서 공무원을 하고 싶어요. 저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이 됐으면 좋겠고, 저도 그걸 위한 일을 하고 싶거든요.
아영 : 기로 너한테는 공무원이 덕업일치구나.

덕업일치 :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 (우리말샘)

기로 : 맞아요. 사실 NGO 같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언론에서 일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결국 정책을 직접 만지는 건 공무원이잖아요. 그걸 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선호 : 사실 공무원들 중에 그런 경우가 은근히 많지. 워라밸이니 직업안정성 같은 거 말고 진짜 ‘공익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무원 된 사람들.

공공봉사동기에 대한 현직 공무원의 긍정 응답 비율 : 75.1% (’22. 한국행정연구원)

PSM : 공공봉사동기론(Public Serivice Moivation). 공직을 선택한 사람들은 민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직업 선택 동기가 있다는 이론.

아영 : 맞아. 매년 그런 사람들이 꼭 있지. 바로 작년에도 연수원 수석이 과기부 갔고, 재작년인가? 일행 4등이 고용노동부 갔잖아.

5급공채시험(구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직하는 사람들은 약 반 년 간의 연수과정을 거치며, 이 때의 성적과 행시 2차 성적은 희망부처 지원 시 주요 평가요소로 작용함.

선호 : 와, 고용노동부? 진짜? 요즘은 좀 편한 곳들이 인기 있지 않나?
아영 : 응. 문화재청, 특허청, 통계청 뭐 이런 곳들이 인기가 많지. 부 중에서는 해수부, 농식품부, 문체부 같은 곳들? 아니면 아예 거꾸로 기재부, 행안부, 국세청, 공정위, 금융위 같이 힘 쎈 곳을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행시 수석은 해수부, 차석은 농식품부. MZ세대 공무원 “에이스보다 워라밸”> (‘23.3.9. 매일경제)

행시 합격자 부처 선호도 TOP 5 : 문체부(17.4%), 국세청(11.7%), 행안부(10.5%), 기재부(9.3%), 공정위(7.6%) (22.1.6. 법률저널)

선호 : 근데 과기부는 그렇다 쳐도 고용노동부? 어우, 왜 그러셨대? 장난 아닐 텐데.
아영 : 노동 쪽에 뜻이 있으신가봐. 근로 환경 개선 같은 데 관심이 있으시다 하더라고. 나도 소문만 들은 거라 정확하게는 몰라.
선호 : 하긴, 누나 얘기 들으니까 우리 때도 비슷한 얘기 있었다. 복지 쪽에 뜻이 있어서 복지부를 갔다거나, 교육 쪽 일을 하고 싶어서 교육부를 갔다거나. 그러고보니 누나도 비슷하지 않아?
아영 : 비슷한가? 음, 나도 뭔가 사명감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긴 했지. 계속 떨어져서 장수생이 됐을 때도 그 덕분에 끝까지 포기 안 한 거 같고.
기로 : 그거 진짜 신기했어요. 그냥 큰 뜻 없이 고시 시작한 사람들은 막 길게 수험생활은 못하더라고요. 빨리 붙거나, 빨리 그만두거나.
선호 : 사표 쓰는 것도 그래. 요즘 그만두는 공무원들 많다 그러잖아? 근데 주변에 보면 일찍 그만두는 사무관들은 대부분 수험생활이 짧더라고.

<사표 던지는 중앙부처 공무원 1년에 3000명> (‘23.3.26. 한국경제)

기로 : 아하?
선호 : 덕업일치로 공무원이 된 게 아니라, 워라밸 같은 걸 생각하면서 공무원이 된 건데, 막상 일을 하면서 보니까 이건 뭐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고 영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빨리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거 같아. 수험생활이 짧다는 건 그만큼 어리다는 거니까 다른 길을 선택하기에도 막 늦은 것도 아니고.
아영 : 맞아.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공무원이 된 게 아니라, ’공무원 일‘을 하고 싶어서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면 아무리 공무원 일이 힘들다 힘들다 해도 휙 그만두긴 힘들거야. 힘들지만 그만큼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공직의 보람 때문에 공무원이 된 집단이 직업 안정성이나 채용 공정성 때문에 공무원이 된 집단에 비하여 보다 긍적적인 바람직한 태도와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행정연구> 제14권 제2호)



기로 : 그럼 누나는 어때요? 생각하던 일이에요?
아영 : 아니, 그건 아니야. 그 누구도 아마 수험생 때 생각하던 대로 일하는 사람은 없을걸? 막상 여기 와보면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너무 달라.
선호 : 그래도 누나는 보람을 느끼잖아.
아영 : 음, 그건 그렇지. 난 분명히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 아마 보통 회사에 들어갔다면 이러기는 어려웠을 거 같아. 요즘 기업에서 기부도 많이 하고 하지만 결국 기업은 실적이 중요하잖아.

CSR :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대응함으로써 이윤추구활동 이외에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책임있는 활동.

선호 : 그치. 결국 영업이익이고 매출이고 기업의 생존이고.
아영 : 나 감동실화 있잖아. 저번엔 일을 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거든? 당연히 민원이겠거니 생각하고 받았는데 어떤 할머니셨어. 근데 그 할머니가 너무 고맙다 고맙다 계속 하시는 거야. 얘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전에 무슨 사각지대 해소를 한다고 제도 개선을 했던 게 있는데, 그 바뀐 제도 덕분에 다행히 할머니 손자가 챙김을 받으셨나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손자한테 뭘 못 해줘서 평생 너무 미안했는데 덕분에 너무 잘 됐다면서 울면서 계속 고맙다 고맙다 하시는데 나도 진짜 눈물이 너무 나서 참느라 혼났어.
기로 : 찐감동이다. 누나 엄청 보람있었겠는데요.
아영 : 응. 진짜 보람느꼈어. 그 때만큼은 공무원 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루만에 진상 민원 받고 바로 다시 원상복구 됐지만.
선호 : 보람으로 일한다는 공무원들은 무조건 있어. 특히 옛날에 들어온 국과장님들 중에서는 그런 비율이 더 높은 거 같고.

공무원의 공공봉사 중요성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 : 50대 이상 76.1%, 20대 43.1% (‘22. 한국행정연구원)

기로 : 그러고보니 형도 그러네요. 막 보람까진 아니더라도 형 성격상 어디 회사에서 일하는 건 안 맞았을 텐데.
선호 : 뭐 그건 인정.사장님이나 회장님 같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게 난 기분이 좀 그래. 내 스타일에 안 맞아.
기로 : 천상 공무원이네요.
선호 : 진짜 이쪽으로는 그렇긴 하지.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을 한다는 게 스스로 떳떳한 건 있어 분명히.



기로 : 어떻게 보면 공무원들 일하는 문화가 일반 기업이랑 다를 수 밖에 없긴 하네요.
선호 : 그치. 효율이니 가격이니 하는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이게 맞는가 옳은가 하는 고민들을 많이 하니까.
아영 : 맞아. 요즘은 정말 많이 바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다른 곳들보다는 돈이나 승진이 아닌 공익에 대한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선호 : 그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게 공무원의 장점이고.
아영 : 응. 복인 거 같아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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