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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08. 2023

전국을 흔들, 멘탈이 흔들

단점 둘 : 행정 스트레스

아영 : 준비는 잘 돼가? 시험 얼마나 남았지?
기로 : 이제 세 달? 얼마 안 남았어요.
선호 : 아직 안 늦었다니까? 얼른 다른 길 찾어.
기로 : 이 형 진짜. 그게 고시생한테 할 소리에요?
선호 : 고시생이니까 하는 소리야. 나는 늦었으니까.
기로 : 아니, 아영이 누나도 그래. 공무원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고시생 싸이클을 다 까먹어요?
아영 : 야, 진짜 바로 잊혀지더라.
선호 : 기로 너도 마찬가지잖아.
기로 : 뭐가요?
선호 : 서로 모르는 거 똑같다고. 우리가 고시생 싸이클을 모르는 것처럼 너도 공무원 생활을 모르니까 계속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거 아냐. 이 길은 아니라고 선배님들이 이렇게 얘기를 해줘도. 어휴.
아영 : 맞아. 이런 직업인 줄 알았으면 진짜 안 했을지도 몰라. 내가 다른 직업을 안 해봐서 속편한 소리 하는 걸 수도 있지만.

<2030 공무원 “기회되면 언제든 사표” 65%> (‘23.6.6. 한국경제)



기로 : 그러고보니 진짜 공무원 생활을 잘 모르긴 해요.
아영 : 그치. 우리도 공부할 땐 몰랐지. 애초에 얘기를 들을 길도 많이 없고, 얘기를 듣는다쳐도 그게 또 자기가 직접 경험하는 거랑은 느낌이 확 다르잖아.
선호 : 그게 맞는 거 같아.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줘봤자 자기가 겪어보기 전까진 잘 안 와닿지.
기로 : 그래도 궁금하니까 얘기 좀 해줘요 형.
선호 : 뭐가 궁금한데?
기로 : 공무원은 무슨 일을 해요?
아영 : 진짜 제일 어려운 질문.
선호 : 맞아. 이게 딱 한 마디로 얘기할 수가 없지. 그나마 '행정'을 한다는 게 제일 맞을듯?
기로 : 에이, 그건 알죠. 좀 이해가 되게 설명해줘요.
아영 : 음, 누군가 특정한 사람들만을 타겟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 되나? '모두'라는 게 전국민을 얘기하는 건 아냐. 예를 들어, 내가 강원도 정선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라면 정선군민 3만5천 명을 위한 일하고, 강원도청에서 일한다면 강원도민 153만 명을 위해 일을 하겠지. 만약 부나 처나 청 같은 중앙행정기관이라면 맡고 있는 일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업무 스케일은 보통 전국 단위야.
선호 : 물론 한 사람이 나랏일 전부를 다 하진 않지. 업무 스케일이 커질 수록 보통 업무는 쪼개진다고 보면 돼. 왜 얼마전에 돼지 콜레라 있었잖아?
기로 : 아프리카돼지열병이요?

<추석 앞두고 ‘아프리카돼지열병’…양돈 농장 ‘비상’> ('23.9.27. KBS)

선호 : 어 그거. 똑같이 돼지열병에 걸려도 그 돼지가 무슨 돼지냐에 따라 담당자가 달라. 만약 걸린 게 야생맷돼지다 하면 그건 환경부 소관이고, 사육하는 집돼지면 농림부 일이고.
기로 :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뭐 이런 거네요.
아영 : 그렇지.



선호 : 근데 업무가 쪼개져있다고 업무 스트레스도 쪼개질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너.
아영 : 맞아. 업무 스트레스는 또 다른 얘기지.
기로 : 일이 많이 힘든가요?
아영 : 무슨 일이든 힘들겠지. 공무원만 힘든 건 아닐거야.
선호 : 그렇다고 누나가 안 힘든 건 아니잖아?
아영 : 응. 사실 진짜 힘들어. 업무가 너무 무거워. 전국을 흔드는 일이잖아. 전국을 흔드는만큼 내 멘탈도 흔들려. 그래서 심리적으로 엄청 눌리고.
기로 : 누나가 다른 사람들한테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네요.
아영 : 응.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가 사는 모습을 아예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게 너무 무서워. 심지어 그게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전국이잖아. 아무래도 나는 중앙부처에 있으니까.
선호 :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이 매일 매일 신문 1면에 나온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아찔하냐.
기로 : 와, 형도 그랬어요?
선호 : 당연하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신문 1면 경험 있을 거 같은데? 나는 그게 좀 심했어서 보름 내내 1면이었던 적도 있고.
기로 : 이게 행정인가요. 와 씨.


선호 : 야, 그거 알지. 이제 부모가 자녀한테 사랑의 매도 못 드는 거.

<'자녀 징계권' 63년 만에 폐지… 민법 개정안 국회 통과> ('21.1.8. KBS)

기로 : 알긴 알죠. 근데 이거 찬반 꽤 많을 거 같은데.
선호 : 그치. 근데 이건 자녀가 있는 전국의 모든 부모들이 다 영향을 받는 거잖아? 이제 내가 애한테 훈육한답시고 회초리를 들면, 바로 아동학대범이 되는 거라고.
기로 : 어우. 그렇게 보니까 꽤 쎈데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느니 마니 하는데.
선호 : 그래. 이렇게 쎈 업무를 내가 해야 된다고. 모든 부모들을 내가 다 상대해야된다고.
아영 : 민법 개정 건이니까 법무부가 했을 텐데, 그 담당자, 아마 똑같은 얘기 엄청나게 들었을거야. 니가 애를 키워봤냐, 결혼도 안 한 사람이 이런 정책을 해도 되냐, 그러니까 탁상행정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


선호 : 요즘 과학 R&D 예산 얘기도 많잖아? 거기 예산 깎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국가 연구개발 예산 : '23년 31조1000억원 → '24년 25조9000억원, 총 5조2000억원 삭감 ('23.8.29. 기획재정부)

기로 : 음, 우리나라 과학 발전이 느려진다?
선호 : 맞긴 한데 그건 너무 거창한 얘기고, 내가 말하는 건 당장 살림살이 얘기야. 연구라는 건 결국 전부 인건비란 말이지. 바꿔말하면 나라에서 연구개발비를 줄인다는 건, 그만큼 연구원들을 해고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아영 : 그치. 결국 그 연구라는 게 교수들 뿐만 아니라 그 밑에서 일하고 있는 랩실 대학원생들, 연구기관 연구원들의 수입일 텐데, 그 사람들 벌이가 다 끊기는 거야.
기로 : 와, 그럼 당장 그 사람들 외식 메뉴가 달라지겠네요.
선호 :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당연히 그 사람들은 예산 삭감을 막 반대할 거야.

<R&D예산 대폭 삭감에 충격받은 연구현장…'집단저항 필요' 90% 응답> ('23.10.25. 뉴시스)



기로 : 근데요, 그 업무 담당자가 딱 한 명이에요?
선호 : 음, 계속 말해봐.
기로 :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게 큰 일이면 당연히 여러 명이 같이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백 번 양보해서 실무자가 한 명이라 쳐도 상사들이 다 챙기는 거 아니에요? 과장님?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아영 : 항상 그런 건 아닌데, 무슨 건이냐에 따라 다르지. 쫌 전에 얘기한 과학 R&D 예산 같은 건, 과기부 담당자가 있을 거고,
선호 : 그치, 예산을 좀 많이 따내려는.
아영 : 응. 그리고 기재부 담당자가 또 있을 거고,
선호 : 보통 예산을 깎지 여기선.
아영 : 맞아. 그리고 어차피 이건 정부안이고, 국회를 또 통과해야 되잖아? 그러면 국회에도 담당자가 있지. 국회의원실 보좌진들도 있고. 기로 말대로 행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좀 중요한 건이다 싶으면 상사들도 챙기고.
선호 : 어. 업무의 무게에 따라 다르지. 내부적으로 위임전결규정이라는 게 있거든? 쉽게 말해서 좀 중요하다 싶으면 장관까지 보고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관, 실장, 국장. 실무적인 건 과장선까지만 보고하기도 하고, 어떤 건 그냥 담당자 선에서 정리하기도 해.
아영 : 근데 위에서 안 챙기는 경우도 많다는 거.
선호 : 그게 현실이지. 위에서 워낙 바쁘니까 결국 꼼꼼하게 챙기는 건 실무자들 몫이거든. 예를 들어서, 내가 통계를 하나 잘못 썼다? 그럼 그게 그대로 뉴스고 기사고 사방팔방 다 나는 거야. 전국에 공문으로 뿌려지기도 하고.


아영 : 참, 근데 대부분의 경우는 업무 담당자가 한 두 명 수준이 맞아. 여러 부처가 얽히는 경우라도 부처별로 보면 담당자는 거의 한 두 명이고.
기로 : 에? 뭐 전국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을 범죄자를 만들고, 외식 메뉴가 달라지고, 뭐 그런다면서요. 그렇게 큰 일을 어떻게 한 두 사람이 결정하죠? 너무 무서운데.
아영 : 어쩔 수 없어.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챙기는 게 진짜 엄청나게 많거든. 업무마다 담당자를 여러 명씩 둘만한 환경이 도저히 안 돼.
선호 : 아니지. 심지어는 업무마다 담당자가 여러 명이 아니라, 업무는 여러 갠데 담당자는 하나야.
아영 : 맞아. 선호 말이 정확하다. 내가 유일한 담당자인 중차대한 업무가 한둘이 아니야.
선호 : 내가 아는 교육부 사무관이 한 자리에서 동시에 맡았던 업무가 '의무교육제도', '아동학대', '교복', '초중등장학제도', 음 또 뭐라더라. 하여튼 이 전부를 한꺼번에 맡아서 하더라고. 당연히 담당 사무관은 이 사람 혼자였고.
아영 : 이게 보통이야.



기로 :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에요?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부족하겠는데.
아영 : 맞아. 그래서 더 스트레스가 커. 하나 하나 다 무거운 업무들인데, 그 업무들이 내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데, 나는 업무를 진지하게 고찰할 틈이 없어.
선호 : 끄덕끄덕.
아영 : 내가 맡고 있는 꼭지들로 일이 계속 밀려들어온단 말야? 매일매일 밀려드는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고 나면, 이미 퇴근시간도 지나있어.
선호 : 솔직히 쓸 데 없는 일이 많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야 돼. 길어.
아영 : 어쨌든 뭐 민원도 응대하고, 쏟아지는 전화도 다 처리하고. 정신 없어 진짜. 정책 하나에 딸려오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호 : 언뜻 생각해도 포럼, 공청회, 설문조사, 보도자료, 언론보도, 장차관 행사, 법제개정, 예산, 국무회의, 장차관회의, 현장점검, 감사, 답사, 타기관협업. 계속 나온다 계속 나와. 토 나오네. 우웩.
기로 : 와, 진짜 전혀 몰랐어요. 생각해보니 맨날 뉴스에서 보던 그 회의를 하나 해도 누군가는 회의자료를 인쇄하고, 자리에 깔고, 생수 사다 놓고 해야되네요. 그렇네.
아영 : 그래. 그게 전부 담당자가 해야할 일인 거야. 다행히 사무관-주무관 짝꿍으로 일하면 너무 좋지만, 그게 아닌 경우들도 있고.
선호 : 그치. 누나도 나도 업무를 좀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숙하게 성찰하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그럴 시간이 안 되니까 그렇게 못 해서 마음이 계속 불편하지.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자꾸 들고.
아영 : 그러니까 더 스트레스 받고. 우리가 제대로 모른다는 걸 아니까.



아영 : 사실 이건 중앙부처에 일한다고 해서 전부 느끼는 건 아닐 수 있어. 간 큰 사람들은 끄떡도 없을걸?
선호 : 에이, 그래도 다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 많이 받겠지
아영 : 그럴까?
선호 : 그럼. 아니 뭐, 얼마나 그릇이 크길래 자기가 한 일이 전국 단위로 영향을 끼치는데 '에헴, 나는 고작 한국 안에서 영향을 끼치는 걸로는 아무렇지 않지' 하겠어? 차라리 그렇게 현장에 파장이 크다는 걸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모를까.
아영 : 듣고보니 그렇다 야. 하긴 우리 주변만 봐도 업무에 무게를 많이들 느끼는 것 같긴 해. 그래서 더 책임감 있게 일을 하려고들 하고. 그러다보니 또 스트레스 받고. 악순환이네.
선호 : 맞아. 내 작은 입김이 어디선간 커다란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이거 진짜 큰 스트레스지. 그래서 내가 자꾸 탈공무원 생각하잖아 누나.
기로 :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형 누나들 마음이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네요
아영 : 고마워.
기로 : 진짜 한번도 생각 못 해본 부분이기는 해요. 업무의 무게. 흠.
선호 : 그러니까 너라도 이 일 다시 생각해보라니까.
기로 : 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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