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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01. 2023

어쨌든 든든한 철밥통

장점 하나 : 직업 안정성

(딸랑~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로 : 어후, 죄송해요. 차가 막혀가지고. 형님 누님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선호 : 빠져가지고. 막내가 지각을 해?
아영 : 야,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그러냐. 꼰대같이. 기로 왔어?
기로 : 네, 누나. 오랜만이에요 진짜. 어우 버스가 진짜 꽉 막혔어요. 지하철 탈 걸.
아영 : 아 맞네. 오늘 무슨 시위한댔는데.
기로 : 맞아요! 무슨 노조였나? 고용안정 뭐라뭐라 하는 거 같던데.
선호 : 그래서 니가 잘했다고 지금?
기로 :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기로 : 근데 공무원들은 좋겠어요. 오늘 시위랑은 상관도 없고.
선호 : 뭔 소리야 이건.
기로 : 공무원은 안 짤리잖아요. 이미 고용안정이 극에 달한 사람들 아닙니까.
아영 : 그치. 공무원은 거의 안 잘리지. 자르기가 힘들지.
기로 : 안정적이기로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첫 손에 꼽히는 직업이지 않나요? 오죽하면 철밥통이라 하겠어요. 아예 법에서 신분 보장을 하고 있으니까.

국가공무원법 제68조(의사에 반한 신분 조치)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ㆍ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 <후략>

아영 : 그게 직업공무원제지.
선호 : 근데 철밥통 깨부수기는 이미 몇 번이고 하려고 했잖아. 공무원 퇴출제도 그렇고.

공무원 퇴출제 : 2007년 울산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성남 등에서 일부 시행되었던 제도. '간부 3% 퇴출' 등을 도입하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킴.

아영 : 진짜 자르기도 했을걸? 고용노동부였나?

2007년, 지자체 뿐 아니라 공무원 조직과 정원을 담당하는 중앙부처인 행정안전부도 공무원 퇴출제를 검토하겠노라고 얘기하였으며, 4년 뒤인 2011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4급 서기관 1명과 5급 사무관 7명 등을 퇴출시키겠다고 발표.

기로 : 와, 공무원도 잘릴 수 있나보네요?
아영 :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실제로는 안 그렇지. 공무원 퇴출제도 사실상 안 하잖아.
선호 : 그래, 너도 그러잖아 공무원은 안 짤린다고. 몇 번 두들겨봤지만 철밥통이 안 부서진 거지.



기로 : 지금까지는 그렇다치고 그럼 앞으로는요? 10년 뒤에도 공무원은 여전히 안 짤릴까요?
선호 : 난 그럴 거 같은데?
기로 : 여론은 안 좋잖아요.
선호 : 그치. 사실 여론은 별로 안 좋지. 지들이 뭐라고 철밥통이냐, 저거 때문에 공무원들 복지부동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계속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나 국회의원들이 철밥통 깨야된다 하면서 푸시도 하고. 앞으로도 말은 계속 나오겠지.
기로 : 근데 왜요?
선호 : 아니, 여론이 그런 건 맞는데, 이걸 진짜 실현은 못 시킬걸? 일단 공무원들부터 설득이 되겠냐고. 가뜩이나 성과평가 어쩌구를 공무원들이 엄청 싫어한다고. 공무원 사이에서 피로도가 엄청 높아 지금. 이건 또 따로 한참 얘기해야 되는 부분이긴 한데, 어쨌든. 성과급도 없애라고 하는 마당에 퇴출제? 노조부터 해서 엄청 들고일어날걸?

<공무원 92.5%, 성과퇴출제 반대> ('16.7.15, 내일신문)

아영 : 그것도 그렇고, 이미 요즘 세대한테 공무원은 고노동 저임금 직업으로 낙인이 찍혀있잖아. 근데 그나마 있던 안정성까지 날려버리면 누가 공무원 하겠어. 아무리 좋게 봐도 지금의 10분의 1은 될까? 다들 다른 자격증 시험 준비하러 갈 거 같은데? 정부 입장에선 똑똑한 애들을 최대한 공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오겠다는 사람들도 내쫓는 이런 일을 어떻게 하겠어.



기로 : 근데요, 만약에 공무원 철밥통이라는 게 진짜 적폐라면 없애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선호 : 뭐, 그렇지.
기로 : 아니 공무원이면 공익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요. 공무원이 적폐 청산에 반대한다는 건 좀 앞뒤가 안 맞지 않아요?
선호 : 맞다니까? 뭐 적폐청산이라면 공무원들이 반대를 한다고 해도 밀어붙이는 게 맞겠지. 근데 나는 공무원 철밥통이 적폐라는 말에는 동의 못 하겠다.
기로 : 그건 형이 공무원이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선호 : 야, 너는 그걸 말이라고.
아영 :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나나 선호는 공무원이니까 공무원이 안정적인 게 당연히 좋지만, 일을 해보니까 우리들한테만 좋은 건 아닌 거 같더라고.
기로 : 그럼요?
아영 : 말하자면 긴데, 사실 평소에는 직업 안정성이라는 장점을 확 느끼진 못 했었어. 뭐 체감할만한 일이 있었어야지. 근데 그러다가 큰 게 온거야.
선호 : 코로나?
아영 : 맞아. 코로나 터지고선 진짜 난리도 아니었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 2020년 1월, 국내 최초 감염자 발생

아영 : 처음에는 그냥 딴 친구들을 부러워만 했었던 거 같아. 민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애들 말야. 평소에도 출퇴근 유연하게 하는 거 보고 엄청 부러워했었는데, 이제 유연하다 못해 출근을 아예 안 하는 거야.

<출근하지 말고 재택하세요, 우한 코로나가 바꾼 기업 풍경> ('20.2.24. 조선비즈)

기로 : 아마 IT회사들이 그랬었죠?

<네이버·카카오, 코로나19 확산에 원격근무 돌입> ('20.2.26. 뉴스1)

아영 : 그치, 대기업이랑. 근데 얼마 안 지나서 '아, 공무원이 안정적이구나'하는 걸 확실히 느꼈어. 에어비앤비를 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거든? 걔가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엄청 잘 나가서 강남에만 3호점까지 확장을 하더라고. 엄청 버는 거 같았거든? 근데 코로나를 맞더니 3개 중에 2개를 문을 닫았어. 들어간 돈도 다 못 거뒀대.
기로 : 재택근무하던 친구들은요?
아영 : 걔네들도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나 같은 제3자가 보기에는 출퇴근 없이 집에서만 일해도 되니까 너무 좋겠다 싶었지만 실상은 안 그랬던 거야. 이러다가 회사가 망해서 구조조정 당하면 이대로 영영 집에 있을 수도 있겠다 하고 속으로 걱정하고 막. 근데 공무원들은 최소한 그런 걱정은 안 하잖아.
기로 : 공무원들도 다니던 부처가 없어지면 직업을 잃을 수도 있지 않나요?

국가공무원법 제70조(직권 면직) ①임용권자는 공무원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직권으로 면직시킬 수 있다.
3. 직제와 정원의 개폐 또는 예산의 감소 등에 따라 폐직(廢職) 또는 과원(過員)이 되었을 때

아영 : 그렇기는 한데, 부처가 없어지는 일은 거의 없기도 하고, 혹시 없어진다 하더라도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잘 없어. 보통 부처가 없어진다 해도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 다른 부처로 일이 넘어가는 거야. 그러면 그 일을 받는 부처는 부처는 사람도 같이 받는 거지.

예 : 2008년 해양수산부 폐지 당시, 해양 및 항만 분야는 국토해양부로, 수산물 분야는 농림수산식품부로 기능이 이전되며 소속 공무원들도 두 부처로 소속 변경.

기로 : 그러면 그냥 명함만 바뀌는 거네요?
선호 :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네.
아영 : 근데 공무원 신분보장이 적폐가 아니라는 게, 이게 적폐라면 공무원들이 개판을 쳐야 하잖아? 예를 들면, 이야, 나는 뭔 짓을 해도 안 짤리는구나! 회사가 없어져도 나는 살아남는구나! 개판으로 해도 되겠구나! 막 이렇게?
기로 : 당연히 그럴 거 같은데요?
아영 : 아냐, 전혀 안 그렇더라. 완전 반대였어. 동기들끼리 모여서 야, 몰랐는데 이 직업이 소중한 직업이었네, 우리는 최소한 생계 스트레스에서는 자유롭네, 야 감사해야겠다, 열심히 하자, 이랬어.
기로 : 와, 너무 예상 왼데요. 진짜로 더 빡세게 일했고요?
아영 : 당연하지. 완전 더 열심히 했지.



선호 : 좀 다른 얘긴데, 누나는 근로 동기를 얘기한 거 같고, 나도 또 느낀 게 있어.
기로 : 오, 뭔가요?
선호 : 공무원 된 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높으신 분이랑 회의를 하게 된 거야. 과장님이나 국장님 무서워했던 건 당연하고 사무관님이나 주무관님까지도 무서워하던 때였으니 높으신 분이랑 회의하는 게 얼마나 쫄렸겠냐.
기로 : 형처럼 쎈 척 하는 사람도 무서워할 때가 있군요.
선호 : 진짜 쫄리더라고.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잖아. 근데 그렇게 회의를 했는데, 이게 회의를 하다보니까 뭔가 좀 이상하더라고. 그 높으신 분 얘기가 내 생각이랑 안 맞는 거야. 물론 그 분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아무래도 아니더라고. 그래서 내가 딱 말했지. 그건 아닌 거 같다고.
기로 : 그 높으신 분 앞에서요?
선호 : 어, 그 높으신 분한테. 국과장님 다 앞에 있는데. 진짜 MZ같지. 담당 사무관으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다 질렀다니까.
기로 : 형 민간이었으면 바로 짤리는 거 아니에요?
선호 : 야, 그러니까. 회의실에서 나오는데 내가 딱 그 생각을 했다니까. 만약 내가 사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면 이렇게 대놓고 반대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 그랬을 거 같애. 아니, 내 명줄 잡고 있는 게 윗분들인데, 나도 잘 보여야 할 거 아냐. 근데 어떻게 정면으로 상사 말에 반박을 해. 나는 안 짤린다, 너는 날 못 짜른다, 이게 있어서 내가 소신껏 지른 거지.
기로 : 원래 직업공무원제 목적이 그거잖아요. 여기 저기에 휘둘리지 말고 딱 국민만을 위해서 일해라 하고. 행정학 교과서에 나오는데.

직업공무원제 : 공직에 들어온 인재가 평생에 걸쳐 근무하도록 운영되는 인사 제도. 대부분의 현대 국가에서는 직업공무원제를 도입함. 특정 정치인을 위하는 것이 아닌 공익을 위한 행정을 가능하게 하고 정권교체나 정쟁으로부터 행정공백을 방지하여 행정의 안정성, 연속성, 중립성 등을 가능케 한다는 장점이 있음.

선호 : 굉장히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을 한 거지.



기로 : ‘공무원은 짤리지 않는다. 이는 조직 입장에서도 우수 인력들을 들여와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하는 기제가 되는 동시에, 개인 입장에서도 생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울타리다.’ 정리하자면 이렇네요.
선호 : 오키.
아영 : 그치, 직업 안정성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갖는 큰 장점이지. 아니라고 하긴 어려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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