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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두칠 Nov 03. 2023

초근은 있었는데요, 수당은 없었습니다

단점 하나 : 시간외근무수당

선호 : 야, 기로야. 나 어제 일한 돈 못 받는다?
기로 : 에? 왜요?
선호 : 안 준대.
기로 : 노동청 신고각인데요 형
선호 : 고용주가 대한민국인데?
기로 : 네? 아니 따로 알바한 게 아니라 형이 공무원으로 일한 돈을 못 받는다고요?
선호 : 어. 야, 중고등학교 때는 몰랐는데 우리 조상님들이 괜히 임오군란 일으킨 게 아니라니까. 일은 일대로 했는데 돈을 안 주면 그거 안 빡치고 배기냐고.



기로 : 그래서 형은 왜 돈을 못 받는데요? 아니 어제면 토요일인데? 주말인데 일을 했어요?
선호 : 야, 이번달 모든 주말 싹 다 일 했다. 오늘이 처음 쉬는 거야. 얼마나 빡세게 일했는지 벌써 풀초 찍어서 어제 껀 돈도 못 받아.
기로 : 그게 뭐죠? 포괄임금제 같은 건가요? 공무원도 포괄임금젠가?

포괄임금제 : 추가근무수당을 미리 임금에 포함하여 계약하는 급여형태. 시간이 아닌 프로젝트 성과 단위로 일하는 근로자처럼 정확한 근무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 활용. 다만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도 있음.

선호 : 뭔 포괄임금제야. 풀초 찍어서 그렇다니까.
아영 : 그렇게 대충 말하면 기로가 어떻게 알아듣냐? 차근차근 말해줘봐 쫌.
선호 : 오께이. 짧게 한번만 말한다잉. 보통 공무원들은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해. 맞지?
기로 : 네.
선호 : 이 때 말고 더 일하는 걸 초과근무라고 하고, 초과근무하면 나오는 돈이 초과근무 수당이야. 이건 시간으로 계산해서 나와. 50분 일하면 안 나오고, 60분 일하면 1시간 시급, 70분 일해도 1시간 시급. 여기까지 됐지?
기로 : 네. 근데 벌써 억울한데요? 왜 분 단위는 다 짜르는 거죠?
아영 : 듣고 보니 그러네.

공무원보수 등의 업무지침 : 월간 시간외근무시간 계산 시 분 단위 이하는 계산하지 아니함

선호 : 자, 이제부터 본론인데, 첫째, 출근시간 이전 1시간은 초근 시간으로 안 쳐줘. 아침 8시에 출근해서 1시간을 더 일해도 초근 수당이 없어. 둘째, 평일에 초근하면 1시간은 그냥 빼. 일을 하다가 1시간 늦게 퇴근해도 초근 수당을 안 줘. 밥 먹는 시간은 빼야되지 않냐는 논리거든? 근데 밥 안 먹고 일만 했어도 그건 니 사정이라고 그냥 일괄적용이야.
기로 : 아니, 그러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한 사람은 초근 수당이 0원이에요?
아영 : 그치. 실제로는 2시간 초근을 했지만 초근 수당은 안 나와.

공무원보수 등의 업무지침 : 1시간 이상 조기출근한 시간외근무에 한하여 당일 정규 퇴근시간 이후의 시간외근무시간과 합산하여 1시간을 공제한 후 산정한다.

선호 : 셋째, 초근 상한도 있어. 하루 최대 4시간이고, 월 최대 57시간. 하루 맥시멈은 휴일도 똑같고, 내가 어제 일한 건 월 초근 상한에 걸려서 못 받는 거고.
기로 : 그러면 형은 벌써 57시간을 다 채운 거에요? 출근이전 1시간 빼고, 평일 1시간 빼고, 하루 4시간 초과분량 빼고도?
선호 : 어. 어제도 내가 오전 10시에 나가서 오후 4시까지 일을 했단 말이지. 밥도 못 먹고. 6시간을 한 거야 그러니까. 근데 하루 맥시멈이 4시간이랬잖아? 그래서 가뜩이나 6시간이 4시간으로 후려쳐졌는데, 그마저도 월 초근 상한에 걸려서 한 푼도 못 받는 거야.
기로 : 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영 : 누나도 지난 달에는 100시간 넘게 초근을 했다? 한창 시즌 땐 세 자릿수 초근찍는 사람들을 종종 봐. 그 사람들 전부 다 57시간 이후에는 완전 무급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거야. 돈을 못 받는 게 우리들한테는 그냥 일상이지. 어제 선호도 그런 거잖아.

공무원수당규정 제15조(시간외근무수당) ④ …시간외근무수당이 지급되는 근무명령 시간은 1일에 4시간, 1개월에 57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선호 : 넷째, 부서별 총량.
기로 : 무슨 상한이 또 있어요? 와, 진짜. 부서별은 뭐에요? 과별로 초근 시간 총량이 있는 거에요?
선호 : 어. 연간 총량인데, 이건 과마다 달라. 직원 10명인 부서의 연간 총량이 1000시간이면, 1인당 평균 100시간이잖아? 월 8시간 수준인건데, 만약 이거 이상으로 초근을 찍으면 다른 직원들의 초근시간을 침범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과원들한테 미안해서 초근을 못 찍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 일을 했는데, 스스로 수당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야. 잔인하지.
아영 : 이건 정말 못된 거 같아. 연말엔 진짜 난감한 일이 생겨. 보통 연말에는 업무가 많아진단 말야. 근데 이미 부서 초근시간을 다 썼으면 수당을 못 받고 일하게 되는 거야. 쫌 남아있더라도 내가 초근 찍으면 옆 사람이 수당 못 받게 되는 게 눈에 보이니까 못 찍겠어.
기로 : 무슨 조선시대 오가작통법도 아니고.
선호 : 다섯째, 좀 마이너한 얘기긴 한데, 연말에 아예 초근 수당을 못 받는 때가 있거든? 시스템적으로 뭘 처리해야 한다면서 12월 중하순부터 한 열흘 정도는 초근이 아예 막혀. 웃긴 건 어차피 연말이면 부서 초근총량을 다 쓴 때라서 별로 큰 반발도 없다는 거야.
아영 : 시스템 상으로 초근이 안 찍히는 때는 또 많아. 가정의 날이라고, 부처마다 디테일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 어느 부가 자기네들은 수요일이 가정의 날입니다 하면 수요일은 초근을 해도 돈을 못 받아. 원격근무 때도 그래. 스마트워크센터 같은 곳에서는 초근을 해도 수당을 안 줘.

스마트워크센터 : 정부 보안 프로그램 등 IT인프라가 갖춰진 원격근무용 사무실. 서울역, 고속터미널, 오송역 등 교통 요지와 정부서울청사, 국회, 지자체 청사 등에 설치.

선호 : 나 승진해도 초과근무수당 못 받는다.
기로 : 에?
선호 : 서기관, 그러니까 4급부터는 관리자라면서 초과근무 자체를 인정 안 해주거든.
기로 : 에??? 초근을 해도요?
아영 : 응. 4급이라고 해서 다 관리자도 아닌데. 짬 차서 일 잘한다고 더 갈리는 사람들만 많지.
선호 : 백 번 양보해서 관리자라고 해도 그래. 누가 됐든지 고용주는 자기가 고용한 사람한테 일을 더 시키면, 일을 더 시킨 만큼은 돈을 더 줘야되는 거 아니냐? 근데 관리자한테는 왜 돈을 안 주지? 아니, 중식당에서도 면장 맡고 있는 셰프들한텐 당신은 중간 관리자니까 초근을 해도 돈을 못 드립니다 이러냐고. 하, 진짜. 이건 제도적인 열정페이다 정말. 밤이고 주말이고 실국과장님들 업무 때매 개고생하시는데.

공무원수당규정 제15조(시간외근무수당) ① … 다만, 「공무원보수규정」 별표 33의 일반임기제공무원 중 연봉등급 1호부터 4호까지 해당자…에게는 이를 지급하지 아니한다.



기로 : 근본적인 질문인데요, 공무원이 일이 많나요? 애초에 야근할만큼 일이 있나?
선호 : 뭐야 임마? 난 어제가 토요일이었는데도 밥도 못 먹고 일했다니까?
기로 : 솔직히 공무원이 아닌 입장에서 공감을 잘 못 하겠어요. 뭐 어제는 일년에 딱 몇 번만 있는 특수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형도 주변에서 공무원이 일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냐는 얘기 많이 듣지 않아요? 초근하는 것도 사실은 근무시간에 끼리끼리 몰려다니면서 수다나 떨다가 수당 타먹으려고 야근이고 주말출근이고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고.
선호 : 하아, 야, 너도 공무원 해봐라. 일이 없다고? 진심 개많다 진짜. 그래, 백 번 양보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일이 넘쳐서 초근을 할 수 밖에 없어. 루틴한 업무도 벅찰만큼 많은데 긴급 현안들도 수시로 펑펑 터져준다. 어쩌다 퇴근을 해서 저녁을 먹다가도 다시 불려들어가는 일도 쎄고 쎘고. 하소연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
아영 : 사실 초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칼퇴요정인데. 내가 초근수당이 세후 시급 만 원이 좀 넘거든? 그 귀여운 돈을 받느니 일찍 퇴근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다니는 게 이천억배는 더 낫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그 귀여운 돈마저도 온전히 다 못 받고.

2023년 공무원 시간외근무수당 : 7급 11,319원, 6급 12,531원, 5급 14,692원

선호 : 일이 어느정도로 많냐면, 사람들이 출장을 싫어해.
기로 : 왜요? 사무실도 벗어나고, 뭐 출장수당 같은 것도 있지 않아요? 좋은 거 아닌가요?
선호 :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출장 때문에 사무실을 비우잖아? 하루? 아니면 몇 시간? 그동안에 일이 쌓여.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은 찍혀있고. 핸드폰으로도 업무 연락이 계속 와. 그러면 쌓이는 일 때문에 출장 갔다와서 초근을 또 해야 되는 거야. 그 잠깐 사이에 일이 쌓일만큼 업무가 많다고. 뭐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출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영 : 지금의 초근수당 제도가 초근을 최대한 안 하게 하려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말도 있어. 아마 그 취지 자체에 반대하는 공무원은 없을 거야. 부작용이 가득이어서 그렇지.



기로 : 음 그런데요, 일이 많다는 건 그렇다쳐도, 맨날 뉴스에 나오는 건 맞잖아요? 어디 무슨 공무원이 초과근무 수당을 부당수령했다 이런 거요. 그런 걸 막으려고 이런 저런 규제들을 걸어놓은 거 아닐까요?

최근 5년 간 시간외근무수당 부정 수령 지방공무원 1,789명, 환수조치된 부정 수령 수당 2억 원 이상('22.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선호 : 그건 나랏곳간에서 도둑질하는 거잖아. 슈킹한 건 무조건 잘못한 거지.
아영 : 맞아. 잘못된 거야. 내 주변에서 그거 욕 안하는 사람은 못 봤어. 초근을 허위로 제출하는 것도 못 봤고. 젊은 공무원일수록 특히 예민하다는 하더라.
선호 : 나도 못 봤어. 들은 적도 없고. 편가르기 하는 건 아니지만, 중앙부처가 자정의 강도가 특히 센 거 같기는 해.
기로 : 그래도 어쨌건 어디에선가는 몰래 몰래 하고 있으니까 자꾸 적발이 되고 뉴스에 나고 하는 거 아닌가요?
선호 : 맞지. 우리나라에 공무원이 100만 명이라는데, 그 중에 뒤로 빼돌리는 사람이 없겠어? 근데 그런 사람들을 처벌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지금 제도는 대부분의 선량한 노동을 삥땅치게 설계된 거잖아. 일을 해도 돈을 안 주잖아. 그게 문제라는 거야.



기로 : 지금 초근수당 제도로 초근이 좀 줄어들지는 않나요? 아까 아영이 누나가 그게 지금 제도의 취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선호 : 그게 문제가 아냐. 방향이 아예 잘못된 거야. 초근을 안 하게 하고 싶으면 초근 수당을 조금 주는 걸로 퉁치려고 하면 안 되고, 일 자체를 줄여줘야지. 누군들 일을 하고 싶어서 하냐고. 일이 있으니까 초근을 하는 거지.
아영 : 옳소!
기로 : 음, 일을 줄이던가 사람을 늘리던가 해서 초근을 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네요.
선호 : 그치. 초근수당을 안 줘서 초근을 줄이겠다는 건, 음, 글쎄.



아영 : 해야 하는 일이면 해야지. 근무시간에 하든 초근을 하든.
선호 : 맞지. 할 일을 하라고 돈 받는 거잖아. 그게 프로지.
아영 : 맞아. 당연히 해야지. 물론 한밤중에 불려나가기도 하고, 명절 연휴에 출근할 때도 있지만, 어떡해. 그게 일이면 당연히 해야지. 내 일인데 책임감은 있어야지.
선호 : 그래, 일을 안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잖아. 최소한 일을 시킨 만큼은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이거야. 그렇게 대단한 바람도 아니지 않아? 1시간 더 일했으면 1시간 시급을 더 받고, 10시간 더 일했으면 10시간 시급을 더 받겠다는 건데. 이게 그렇게 과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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