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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지는 집값 가난해지는 집주인

자산 가격 상승의 역설

by 송두칠

고릴라. 현존하는 영장류 중 가장 힘이 센 맹수로 알려져있는 동물. 눈을 치켜뜨고 입을 벌려 괴성을 지르면서 양팔로 가슴을 쿵쿵쿵쿵 치며 상대를 위협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상어. 한때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해양생물. 빠-밤! 빠-밤! 하는 BGM과 함께 수면 위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지느러미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고릴라는 온순하고요, 사람을 공격하는 상어는 극히 드뭅니다. 이들의 포식자 같은 이미지는 영화 <킹콩>, <죠스>를 비롯한 미디어가 만들어낸 프레임입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믿음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c26c42a41281a3ac909449d495d1f0b3.jpg ▲ 그리고 사실 이 놈은 성질이 더럽다. 이렇게 귀엽고 몽글몽글하게 생겨 놓고. (출처: 어패럴뉴스)



부동산 시장에도 적지 않은 믿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동산 불패 신화입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말그대로 신화이며, 앞으로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부동산은 크게 몰락할 것을 저는 일관되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이것과는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 바로 집값이 오르면 집주인이 돈을 번다는 믿음입니다.


직관적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입니다. 아니, 5억을 주고 산 집이 10억이 됐으면, 당연히 5억을 번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값이 올라버리면 집주인은 가난해져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뭔지, 지금부터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통념을 보겠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그만큼 집주인에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주택을 매입할 때는 5억을 줬는데, 그새 부동산이 불장이라 10억에 팔았다면, 별로 계산할 것도 없이 5억을 번 거 맞잖아요.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팔았다'는 행위입니다.


주식은 팔기 전까지 이득이 아니라고 하죠. 단지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가가 올랐다는 것만으로 내 통장에 돈이 꽂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18315fb836451a34e.jpg ▲ 반대도 그렇다. 팔기 전까지 손해가 아니다. 손해...가 아닌데 왜 눈물이 날까...


집은 더욱 그렇습니다. 주식보다 유동성이 훨씬 떨어지는 자산입니다. 아무리 우리 단지 실거래가가 뛰고 시세가 뛰어도, 집은 팔기 전까지 현금화되지 않는 자산입니다. 그저 장부상의 가치만 오른 셈입니다.


물론 집값이 올랐다면 현금화할 때 훨씬 유리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부동산 실거래가와 호가에는 꽤 적지 않은 착시효과가 껴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집값, 그만큼 오른 거 아니라고요.



보통의 경우를 생각하면 상황은 더욱 오묘합니다.


각잡고 부동산으로 재테크하는 다주택자의 경우, 확실히 집값이 오르는 건 호재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시세가 오르면, 이익을 내면서 팔면 되니까요.


(세금 문제가 있지만 이건 별론으로 합시다. 세금을 잘 피해가는 스마트한 부동산 투자자들도 많고요.)


IE003502779_STD.jpg ▲ 2024년 대한민국 토지 소유 현황. 집중도가 정말 높다. 부동산 부자들에게는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이 당연히 좋다. (출처: 오마이뉴스)


그런데 보통의 경우, 그러니까 집 여러 채를 돌리면서 재테크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 우리 가족 주거 안정성을 높일 겸, 그러면서 약간의 재테크도 할 겸 실거주용 주택을 갖고 있는 1주택자의 경우, 집값은 올라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팔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즉, 실제 시세차익을 내는 행위를 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당장 우리 가족이 이 집에 살고 있는데, 주거 불안정성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기가 꽤 어렵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겁니다. 집을 팔아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집을 팔면 이제 어디서 살죠? 살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집'만' 오른 경우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지하철역이 새로 들어섰다거나, 인근 지구에 대규모 편의시설이 들어온다거나, 주요 정부시설이나 공공기관이 동네로 이전한다는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 우리집도 오르지만 옆집도 오릅니다.


가령 우리집도 5억에서 10억이 됐지만, 내가 이사를 가야할 집도 똑같이 5억이 올랐다면, 주택 소유자가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화면 캡처 2025-08-26 121153.jpg ▲ 이런 고민은 전세계 공통인 것 같다. (출처: 미주중앙일보)


오히려 부대비용만 많이 늘어납니다. 보유세가 올라가고요, 옆집으로 이사갈 때 취득세가 늘어나고요, 부동산 복비도 비싸집니다.


만약 5억이 10억 된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고가 주택이 되어버린 경우는 더 난감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똑같은데, 자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각종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고요, 부동산 세제 개편에 따라 세금 폭탄을 맞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과거 종합부동산세가 그랬듯이요.


따라서 실거주 1주택자에게는 집값 오르는 게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래도 집값이 올라야 더 상급지로 갈아탈 수 있다고 말이죠.


자, 이것도 한번 따져봅시다.


20250814_01160123000001_S00.jpg ▲ 갈아타기는 부동산 재테크의 정석 중 정석이다. (출처: 매일경제)


다른 집도 우리집처럼 5억에서 10억이 되었다면, 상대적인 주택 구매력이 그대로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살펴 봤습니다.


단, 이건 상급지로의 이사는 아닐 겁니다. 같은 값인데 어떻게 상급지겠어요. 상급지는 더 비싸겠죠. 가령 우리집을 5억에 살 때, 상급지는 10억쯤 했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상급지 주택 가격이 예전 그대로라면, 추가 자금 부담 없이 상급지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겠죠. 우리집이 오른 것처럼 상급지도 올랐을 겁니다.


만약 우리집처럼 상급지도 5억이 올랐다고 합시다. 그럼 우리집은 5억에서 10억이 되었고, 상급지는 10억에서 15억이 됐네요. 어, 이러면 또 이득이 아닙니다. 예전에도 5억이 부족했는데, 지금도 5억을 더 마련해야 하네요.


그런데 현실은 더하죠. 상급지는 꼴랑 5억 오르고 말지 않죠. 집값은 '상승액'보다 '상승률'로 접근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집이 5억에서 10억이 된 건 집값이 두 배로 뛴 거잖아요. 상급지가 똑같은 비율대로 뛰었다면 10억에서 20억이 된 셈입니다. 예전에는 5억이 부족했는데 지금은 10억이 부족해요. 세상에.


하나 더. 상급지는 아마 상승률도 더 높을 겁니다. 우리집이 두 배로 뛸 때, 상급지는 세 배 뛰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상급지 주택 가격은 30억. 5억도 10억도 아니고 20억이 부족하네요.


NISI20250710_0001889585_web.jpg ▲ 상급지는 상승'률'이 높다. 상승'액'으로 치면 하급지와의 격차는 상상 이상이다. (출처: 뉴시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상급지로의 이동은 더 어려워집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입지로 갈아타려 할 때, 추가로 필요한 비용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분명 우리집 가격은 올랐는데, 나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상대적 빈곤이자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자녀 세대를 생각하면 더 절망적입니다. 집주인은 집값 상승으로 장부상으로나마 높아진 자산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이 때문에 자녀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의 부담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예컨대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주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현재의 과세구간을 고려하면, 5억/10억/30억은 증여세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집값이 5억 원일 때는 사실상 무상증여에 가깝다가, 10억 짜리 집을 물려줄 때에는 2.5억 원의 세금을 내야 하죠. 30억일 때는 무려 10억 원을 내야 합니다.


팔면 그만 아니냐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이 맞죠. 한 푼이라도 벌긴 번 거니까요.


하지만 지난 편에서 말했듯이, 재테크는 결코 회계비용으로 따져서는 안 됩니다. 기회비용으로 따져야죠. 그렇게까지 했을 때, 부동산이 이득인가는 다시 한번 찬찬히 되짚어봐야 할 문제입니다.


게다가 오늘 얘기는 또 조금 다르죠. 내 집 값이 5억이든 10억이든, 체감상 변화는 없습니다. 그냥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살고 있는 집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걸 내 자식한테 물려주기 위해서는 2.5억 원 또는 10억 원이 필요해진 겁니다. 이걸 하루 아침에 어디서 구하냐고요.


집주인 본인은 자산 가치 상승 때문에 뜻하지 않게 자산가가 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무거워진 자산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게 됩니다.


벼락거지가 됩니다.


18-01.JPG ▲ 물론 벼락거지라는 말은 FOMO와 더 잘 어울린다. (출처: 중앙일보)


결혼하는 자녀에게 집을 마련해주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좀 깨졌나 모르겠는데, 한때 남자는 집을 해오고 여자는 혼수를 해오는 게 국룰이었죠. 그런데 집값이 너무 비싸지면 이게 불가능해집니다.


내 새끼 결혼할 때 집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은데, 아니 요즘 집값에 이게 가당키나 하나요. 전세집 구해주기도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집값이 올라가버리면 결과적으로 내가 가진 집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해주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부모로서 절망적이죠.


이런 상황이 과연 집값이 올라서 부유해진 상황 맞나요?



18-02.jpg ▲ 하지만 현실에서는 집값 상승을 위해 담합과 협박과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당장 내 집값은 올라야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출처: 조선일보)


당연한 얘기지만, 집값이 올라서 좋은 경우도 많습니다. 쉽게 말해, 선택지가 생겨납니다.


싱글이라면 집을 팔고 작은 카페나 식당을 차릴 수도 있습니다. 노부부라면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집값이 저렴한 시골로 귀향할 수도 있습니다. 늘어난 자산가치로 레버리지를 땡겨서 주식이나 코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값이 오른다는 것이 꼭 부유해진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집값의 상승은 사회 전반의 물가 상승과 맞물려 돌아가고, 소득인 제자리인데 물가만 뛰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진 것 같은 느낌만 받게 됩니다.


때때로 집값 상승은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모두에게 부담이 됩니다.


부동산 투기꾼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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