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집이 진짜 비싼 집이다
오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폰은 비싼 핸드폰이고, 그러니까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은 최소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알고보니, 아이폰은 갤럭시보다 값 싼 핸드폰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갤럭시 폴드7이 비싸다는 말이 아니라, 통상 그래왔다는 말입니다.
아이폰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쓰는 핸드폰이라는 제 생각. 과거 언젠가에는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핸드폰은 소모품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일회용 면도기와 다를 바 없었죠.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입니다. 다만 그 기간이 일회용 면도기보다 길 뿐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버리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당근에 팔죠! 그게 다 얼만데요!
그런데 이 때, 아이폰과 갤럭시의 가격이 다릅니다. 아이폰은 갤럭시보다 가격 방어가 훨씬 탄탄합니다. 훨씬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중고폰 거래 사이트 뱅크마이셀(BankMyCell)의 분석입니다. 2020년의 경우, 갤럭시S20은 잔존가치가 34.78% 하락한 데에 반해, 아이폰11 프로와 아이폰11 프로맥스는 각격 21.31%, 15.96% 하락했습니다.
아이폰에 비하면, 중고시장에서 갤럭시는 헐값이라는 소리입니다.
가상의 사례를 들면 이렇습니다. 갤럭시는 80만원에 사서 50만원에 팔아야 하고, 아이폰은 100만원에 사서 80만원에 팔 수 있다고 합시다.
갤럭시는 80만원이고 아이폰은 100만원이니까 갤럭시가 20만원 더 저렴한 핸드폰인가요?
아니죠. 오직 초기 구매액만이 중요한 경우는 일회용 면도기처럼 쓰고 버릴 때의 얘기입니다. 이제 스마트폰은 중고 판매가도 함게 따져야죠.
갤럭시는 80만원에 사서 50만원에 팔았으니까 30만원짜리 핸드폰이 되고, 아이폰은 100만원에 사서 80만원에 팔았으니까 20만원 짜리 핸드폰이 됩니다. 이게 맞는 계산입니다.
그래서 아이폰은 갤럭시보다 저렴합니다.
부동산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합니다.
그나마 핸드폰은 팔 때의 가격이 살 때의 가격보다 낮기라도 하지, 부동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백에 아흔아홉은 내가 산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매도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비싼 집은 싼 거고요, 싼 집은 비싼 겁니다.
구 방탄소년단 현 BTS 멤버 진은 2019년에 한남더힐 두 채를 매입합니다. 206m²짜리 집은 42억 7000만원에, 233m²짜리 집은 44억 9000만원에 샀습니다.
좋은 집이고 넓은 집이긴 하지만 역시 비싸죠?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최초 구매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래서 얼마 올랐냐는 겁니다.
2025년 현재, 206m²짜리 은 109억 3000만원에, 233m²짜리 집은 109억 원에 실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대로만 팔아도 시세차익이 130억 원입니다. 주택가격으로 치면 마이너스(-) 130억 원이네요. 세상에 이거보다 싼 집이 어디 또 있나요.
BTS 진은 올해 한남더힐 한 채를 더 매수했습니다. 이번에는 243m²짜리를 175억 원에요.
어때요, 비싸보이시나요?
진짜 비싼 집은 이런 집입니다. 가뜩이나 무리해서 대출 잔뜩 껴서 신축 아파트를 샀더니, 입주하기도 전에 마이너스피 받고 팔아야 하는 집.
이런 집은 갤럭시 수준도 아닙니다. 샤오미, 화웨이, 아니 어디 저기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이름 없는 짭퉁 스마트폰이요. 돈 받고 팔기는 커녕 돈 내면서 버려야 하는 물건이요.
이런 집이 진짜 비싼 집입니다.
핸드폰만 감가상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계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비재(counsumer goods)'라는 사실입니다. 소비자가 사용함으로써 감가상각이 일어나고, 감가율만큼 중고가격이 구매가격보다 낮습니다.
그런데요, 집은 소비재가 아닙니다. 주택을 구입하는 행위는 '소비(C)'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총생산(Y)은 민간 영역의 소비(C), 투자(I), 정부 지출(G), 그리고 순수출(X-M)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수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Y=C+I+G+(X-M)
이 때, 누군가가 자신이 사용할 목적으로 핸드폰을 새로 구입하는 것은 우변의 C항에 포함됩니다. 이건 당연히 소비죠. 차를 사도 C항이고요, 차보다 비싼 시계를 사도 C항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이 주택을 구매하는 것은 C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투자'로서 I항에 포함됩니다.
집은 소비재가 아닙니다.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경제학적으로 그렇습니다.
이 개념이 없다면, 얼마에 되팔 건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최초 구매가에만 매몰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집을 비싸게 사게 되겠죠. 싸지만 비싼 그 집이요.
모든 부동산이 다같이 오르는 시대에는 뭘 사도 됩니다. 어차피 다 오를 건데요 뭐. 비싸게 팔릴 곳을 사야한다는 제 주장이 꽤 희석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십 년 간 대한민국이 거의 그랬습니다. 인구가 폭발하고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어지간한 지역의 집값은 죄다 올랐습니다.
재테크할 목적도 아니었는데, 거주할 집 하나 샀다가 앉은 자리에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안목이 지금보다 덜 중요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이에 따라 주택 수요도 급속히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습니다. 선호가 유지되는 지역만 상승 가능성이 있고요,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지역은 큰 폭으로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특히 외곽부터 빠르게 빠질 겁니다.
이 모양새는 어느 지역이나 같습니다. 수도권을 놓고 보면, 수도권에서의 외곽이 빠르게 빠집니다. 서울을 놓고 보면, 또 서울에서의 외곽이 빠르게 빠집니다. 그 속도와 폭, 중심부로의 영향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외곽 지역의 가격 지지선이 무너지는 모습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겁니다.
마치 비 온 다음날 길바닥에 고인 빗물이 마르는 모습과 같습니다. 각각의 웅덩이는 가장자리부터 빠르게 마릅니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작은 웅덩이는 훨씬 빠르게 마르고, 가장 늦게 마르는 곳은 커다란 웅덩이 한 가운데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작은 웅덩이 같은 곳은 어디일까요. 어디가 갤럭시 같이 유독 가격 방어가 어려울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수도권 외곽 베드타운입니다.
베드타운, 그 중에서도 외곽에 위치해서 접근성이 특출나지 않은 곳들은 인구 소멸의 직격탄을 정면으로 맞을 지역이라고 봅니다.
쉽게 말해, 대체재(substitional goods)가 많은데 다른 대체재에 비해 우위가 없습니다.
예컨대, 무려 동탄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동탄이 조성된 이유가 수도권 주택 공급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강남) 접근성이 좋은 곳에 집을 짓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현재 동탄 신도시는 굉장히 잘 조성된 신도시로 꼽힙니다. 동탄시 인구는 41만 명이 넘고요, 그 어느 곳보다 인지도도 높습니다. 집값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요, 같은 값이면 판교 살죠.
동탄의 장점은 결국 접근성인데, 그런 면에서 판교보다 장점이 없습니다. 거주 환경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모든 베드타운이 그런 건 아닙니다. 최초 조성 당시에는 베드타운이었을지 모르겠으나, 현재 완전히 자리를 잡은 곳들은 괜찮습니다. 대표적으로 IT 메카가 된 판교, 행정도시로 탈바꿈한 과천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곳은 자체 수요가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베드타운 보다는 가격 방어가 높을 거라고 봅니다.
베드타운에 이어 신축도시도 가장 빠르게 마를 웅덩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1~3기 신도시라고 부르는 '신도시'말고 '신축 도시'요. 새로 짓고 있거나 아주 최근에 지은 도시들 말하는 겁니다.
그곳들이 별로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정말 좋죠. 건축 기술의 발달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첨단 도시의 향연입니다.
그런데요, 이게 좋은 이유는 신축이기 때문입니다. 새 거니까 좋아보이죠. 아파트도 새 거고, 동네도 새 거니까 당연히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이건 소비재적 관점입니다.
어차피 물건은 낡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감가상각이라고 합니다.
서울 유수의 아파트들이 세월이 지나서 낡아감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오르는 것은 건물에 빈티지한 감성이 묻어서가 아닙니다. 그 입지가 여전히 가치있고, 토지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새로 지어지는 곳들은 이런 면에서 단점이 큽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가상각되는 물건 가치 이상으로 입지 가치가 상승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당초 더 좋은 곳들은 이미 개발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정부의 정책 방향 때문에 반짝하는 곳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종이 그렇습니다. 대통령실 이전한다!하면 반짝 오르고, 국회가 내려온다더라!하면 또 반짝 오릅니다.
이런 현상은 근본적으로 정치 테마주와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정책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변화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기대감에 와르르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종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되면서 내려간 이주민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합니다. 통일되면 세종 부동산 다 망할 거라고요.
지금으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우스갯소리이지만, 위에서의 입김에 따라 얼마나 하루 아침에 폭삭 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뿌려져있는 혁신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혁신도시는 전국에 총 10개가 지어졌는데, 2022년 6월 기준, 제주 혁신도시는 인구가 5천 명이고요, 부산도 7천 명 수준입니다. 가장 많은 곳이 광주·전남으로 3.9만 명인데, 이곳은 계획 대비 인구 달성 비율이 78.4%로 달성률이 가장 낮은 곳입니다.
강남도 계획도시이고 판교도 계획도시이지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인공 도시를 짓는 것은 애초에 성공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정책 동력이 떨어지면, 부동산 시장에서부터 바로 신호가 올 겁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 다 신도시들만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를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신도시는 그 목적 자체가 '주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구든 뭐든 부동산이 붐업될 때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없다면? 결론은 뻔할 겁니다.
1기~3기 신도시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세종도 마찬가지고 혁신도시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다들 수도권에 몰려서 과밀화가 심해지니까, 그거 분산시키려고 만든 곳들이잖아요. 앞으로 전국적으로 국가가 멸망 수준으로 인구가 감소할 텐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고 그곳들의 부동산이 어떻게 유지되겠어요.
물론 저는 서울도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무너지지 않는 곳은 없다고 전망합니다. 그렇지만 부동산이 무너질 때, 전부 한순간에 동시에 무너지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히 시차를 두고 무너지겠죠.
그럼 어디부터 무너질까 하는 질문에 제가 답을 한 겁니다. 외곽부터 무너진다고요.
그게 신도시입니다.
여담이지만, 제주도를 얘기하는 분도 계십니다. 서울에서 제일 먼 곳 아니냐면서 말이죠.
하지만 오히려 제주는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부수적인 이유지만, 교통수단을 생각하면 서울에서 제일 먼 곳도 아니거니와, 이미 제주도는 그만의 정체성을 공고히 잘 갖춘 지역입니다.
게다가 섬이기 때문에 스스로 인프라를 갖춰놔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외곽'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주는 제주를 놓고 보면 외곽이 아니지만, 신도시는 태생적으로 외곽입니다.
서울보다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신도시의 집을 사는 것은 비싼 소비입니다. 그 싼 집은 비쌉니다.
소비가 아니라 투자를 해야 합니다.
본격적인 부동산 하락은 신도시로부터 모습을 드러냅니다.
송두칠 doo7@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