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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산다면

서울 부동산 입지 분석

by 송두칠

저는 부동산 하락론자입니다.


그럼 집 안 샀냐고요?


네, 저는 집이 없습니다. 무주택자입니다.


그럼 저는 집을 안 살 거냐고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집 살 겁니다.


여러분들께 말씀드리지 않은 또 다른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비밀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단지 시장을 이기는 개인이 없는 것처럼, 아내를 이기는 남편은 없기 때문입니다.


네, 아내가 집을 사자고 하네요. 그럼 사야죠.


16-02.jpg ▲ 보통은 아내가 옳다. 아니, 늘 옳다. (출처: tvN)



그럼 어디를 사야 할까요.


부동산을 추천해달라는 말에는 답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소득과 자산에 따라서도 천양지차고, 목적과 수단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이하는 서울 부동산의 입지를 주관적으로 분석한 내용입니다.


전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격: 12~15억 대

평형: 84m²

보유자산: 6~9억 대(+대출 6억)

지역: 서울(강남 3구 등 1급지, 판교 등 준서울지역 제외)

목적: 1주택 실거주 및 재테크

고려사항: 거주여건 및 투자 가치

비고: 인구, 선호 등은 지금과 유사하다고 가정


모든 곳을 다 자세히 뜯어보기에는 지면이 너무 짧네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부적인 분석은 나중에 하고요, 좀 더 큰 틀에서만 슬쩍 살펴보겠습니다.


이하의 순서는 순위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1. 공덕

이 가격에 접근 가능한 곳 중에서는 이만한 곳은 찾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체 수요가 굉장히 탄탄합니다. 공덕역, 마포역, 경의선숲길 등에는 노포와 요즘 힙한 핫플이 두루 많습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고, 지금의 높은 인지도가 계속 유지될 곳입니다.


일자리도 많습니다. 공덕 자체도 그렇고요, 조금만 가면 충정로-광화문, 반대편으로는 여의도-영등포입니다.


비슷한 맥락인데, 교통이 미쳤습니다. 지하철을 기준으로 YBD(여의도역)까지 6분, CBD(광화문역)까지도 6분입니다. 환승없고요.


쿼드러플 역세권입니다. 5호선, 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지납니다. 도로도 광화문에서 여의도를 최단거리로 잇는 경로입니다. 버스 노선도 좋고요.


조금만 가면 한강이고요, 바로 근처에 큰 공원도 있고요, 대학교도 있습니다. 재래시장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습니다. 도보 거리에 대형 병원이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따라 언덕 없는 평지이기도 합니다. 마포삼성이 그렇죠. 서울 강북에서 이만한 평지 구경하기도 어렵습니다.


종합해보면, 교통 입지가 너무 좋은 곳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유동 인구가 많을 곳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는 재건축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연령대에 매력적인 곳입니다. 노령층에게는 약간 덜 매력적일 수 있지만요.


학군이 아쉽다는 평가가 있습니다만, 목동이나 대치 기준으로 보면 그럴 수 있으나, 서울 평균 보다 떨어진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대흥역 쪽은 학군도 학원가도 충분합니다.


공덕자이, 래미안1~3차, 도화현대, 도화삼성, 도화우성, 공덕현대, 공덕삼성, 마포자이, 마포태영 등 이곳에 위치한 아파트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예산 범위 내에 있는 건 연식이 오래 된 몇 개 아파트 뿐입니다.



2. 서울역

구체적으로는 서울역 뒤편 지역인데요, 이쪽도 교통이 미쳤습니다. 국내 최대 기차역인 서울역인데, 말 다했죠 뭐.


공덕이 쿼드러플 역세권이라면, 이곳은 펜타 역세권입니다. 1호선, 4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GTX-A까지 총 5개 노선이 지납니다.


앞으로 교통은 더 좋아질 전망입니다. 공항철도와 KTX가 있기 때문에, GTX-B와 같은 추가 노선이 더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버스 노선도 압도적입니다. 서울역버스환승센터는 워낙 많은 노선 때문에 이용객들이 길을 잃기도 합니다. 광역버스도 엄청 많습니다.


당연히 수요도 많습니다. 오피스 타운도 그렇습니다. 그 유명한 서울 스퀘어가 있고요, 회현-명동 라인도 있고, 충정로-시청도 가깝습니다. 광화문도 그렇고요.


서울역 뒤쪽, 구 서부역 구역은 이미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서울역은 인근 정비가 덜 됐다는 것이 단점인데, 그 단점을 꽤나 충분히 보완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마트도 있고, 아울렛도 있고, 편의시설이나 상권, 녹지와 휴식공간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동네는 대부분 경사가 있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대단지 아파트 수가 적다는 것도 아쉽고, 도보거리 대형병원이 없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강남 접근성도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서울역센트럴자이, 서울역리가, 중림삼성사이버빌리지 등이 대표 단지입니다.



3. 당산

당산 일대는 아파트 단지가 빼곡한 곳입니다. 게다가 싹 다 평지죠. 이것만으로도 큰 장점입니다.


더블 역세권이라는 점은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서울의 3대 업무 지구에 모두 가깝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입니다. 세 곳 모두 환승 없이 지하철 1번으로 닿을 수 있으며, CBD(시청역)는 15분, GBD(신논현역)는 17분, YBD(여의도역)는 무려 3분(!)만에 도착합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 환승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만큼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그래서 재건축 이야기도 계속 나오는 곳이고요.


다만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지상철은 당산역의 단점으로 꼽힙니다. 지상철 기준으로 서쪽은 분위기가 덜 환해서, 실제로 집값도 동쪽보다 더 낮습니다. 동부니 서부니 하는 표현을 농담처럼 할 정돕니다.


국회 이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도 당산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향후 여의도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금융-방송의 중심지였던 과거 황금기를 떠올려보면, 분명 미래가 아쉬워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지 대단지 아파트 중심으로 조성된 유동인구 많은 한강 이남 더블 역세권을 이만한 가격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4. 왕십리

이쪽 지역은 소개를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금 시세로는 저희가 전제한 예산 범위를 뛰어넘는 지역이지 않나 싶어서였습니다.


일례로 라체르보푸르지오써밋은 최근 고분양가 논란을 일으킨 주역인데요, 59B 타입이 14.5억이었습니다. 서울숲더샵, 서울숲삼부 등 모두 전제한 예산 범위를 넘어갑니다.


이는 가뜩이나 교통이 괜찮던 왕십리에 교통 호재들이 계속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십리는 지금도 쿼드러플 역세권입니다. 2호선, 5호선, 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이 지납니다. 특히 수인분당선은 강남과 분당까지 커버하기 때문에, 서울역 부근에 비해 차별화되는 장점을 갖는다 하겠습니다.


왕십리는 미래 전망도 밝습니다. 예측되는 GTX-C 노선에도 포함되어 있고요, 역세권 대형 개발도 긍정적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개발만 잘 되면, 편의시설과 상권이 두텁게 보강됩니다.


다만, 이쪽도 지상철이 많이 아쉽습니다. 왕십리역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이 지상철로 나뉘어 있고, 특히 동쪽 지역이 많이 아쉽습니다. 지하화 얘기는 계속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요원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학교를 포함한 인근 학교 여건은 좋지만, 경사 등은 아쉽습니다. 물론 행당두산과 같은 평지 아파트도 있습니다.



5. 금호

금호-약수 라인은 신혼부부들이 정말 많이 찾아보는 동네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교통과 예산이라고 봅니다.


우선 교통입니다. 서쪽으로는 매봉산, 동쪽으로는 응봉산에 막힌 모습은 아쉽지만, 3호선 라인을 타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나갈 수 있다는 건 장점입니다. 금호역 기준, 강남권으로는 압구정까지 4분, 신사역까지 6분, 교대역까지 13분, 양재역까지 17분이면 도착하고요, 위쪽으로는 을지로3가역까지 6분, 경복궁까지 11분이면 도착합니다.


금호역 인근은 3호선 라인 뿐이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약수역은 3호선, 6호선 더블 역세권으로 공덕역까지 12분, 합정역까지 19분 정도면 갈 수 있고요, 옥수역은 경의중앙선이 지나기 때문에 용산역까지 11분, 왕십리역까지 5분이면 닿습니다.


조금 추상적일 수는 있겠는데요, 이쪽 지역의 가장 큰 장점으로 '동네 분위기'를 꼽는 거주민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인근을 돌아다녀보면 상당히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 중심으로 정비가 잘 되어있고, 시끌벅적한 상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 한적한 느낌입니다. 그 유명한 한남더힐도 이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합니다.


아이들 학교도 괜찮습니다. 금옥초, 옥정초, 옥수초, 동호초, 금호초 등이 초품아처럼 있거나 아파트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산에 있는 곳답게 녹지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고, 도보권 내에 한강이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재래시장도 있고 도서관도 있습니다.


다만, 산이 있다는 것은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들의 경사가 꽤 가파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금호두산 같은 경우, 처음 가본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경사도가 높습니다. 덕분에 같은 단지 내에서도 동별로 가격 차이가 솔찮게 납니다.


금호역과 약수역을 아울러 보면, 금호 두산, 옥수동삼성, 옥수극동, 금호롯데, e편한세상옥수, 동아약수하이츠 등이 대표 단지입니다. 동에 따라 남산타운까지도 포함하는 지역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이 외에도 말씀드리고 싶은 동네는 정말 많습니다. 청구, 신금호, 행당, 독립문, 서대문, 충정로, 홍제, 연신내, 흑석, 노량진, 마포, 용산 등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동네들은 또한 굉장히 다양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누구에게는 정말 하늘이 내린 동네인데, 누구에게는 살기 너무 불편한 동네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수요자와의 궁합입니다.


16-01.jpg ▲ 파도는 바람 때문에 치는 것이 아니다. (출처: 아트인사이트)


서양 철학에서는 어떤 사건을 '인과'로 분석한다고 합니다. '바람(인: 因)'이 불었기 때문에 '파도(과: 果)'가 친다고 봅니다.


동양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인과'가 아닌 '인과연'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까닭입니다. '바람(인: 因)'이 불었고, 때마침 그곳이 '바다(연: 連)'였기 때문에, 비로소 '파도(과: 果)'가 치는 것입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지역이 무조건 옳고, 어느 지역은 무조건 안 좋은 게 아닙니다. 어떤 수요자와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충분히 빛을 발하는 동네들이 있습니다.


서울 몇 군데를 분석한 오늘의 글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지만 집을 사시려거든, 그 동네를 직접 돌아다녀 보셔야 합니다. 남들이 쓴 추천글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 네이버 지도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 로드뷰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 용적률이나 건폐율 같은 숫자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와 박힙니다.


교통이나 입지처럼 꽤 객관적인 요소도 있지만, 하여튼 그렇습니다. 일단 현장에 가보셔야 합니다. 똑같은 집도, 똑같은 동네도,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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