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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뺨 Nov 01. 2020

제주도 종달리 책방 여행

어제의 나로부터 멀어지기 Part 1. 여행


  지난번 제주도 한 달 살기의 주제가 요가였다면 이번 제주도 일주일 여행의 콘셉트는 책방이다. 제주도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을 기점으로 숙소도 정했다. 걸어서 3~4분이면 걸리는 게스트하우스 '수상한 소금밭'이다. 어쩜 이름도 이렇게 재치 있게 지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는 혼자 여행 온 여자 손님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종달리 여행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그리고 정보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하나가 소심한 책방의 북토크였다. 여행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 누구를 만나게 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단 신청하고 보니 선물 꾸러미를 앞에 둔 것처럼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북토크 당일, 소심한 책방에 도착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이번에는 책방의 매니저가 처음 온 손님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앞자리에 앉으시라 권했다. 그렇다! 종달리의 매니저들은 책임감이 강했다.


  태풍 '타파'가 제주도 종달리에도 왔다. 그래도 추억은 만들어야겠기에 나가볼까 해서 문을 열어보았지만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마음을 접었다. 침대에서 잠이나 자볼 요량으로 버텨보지만 정신이 말똥말똥 해질 뿐이다. 샤워를 하니 기분이 개운하다. 요가매트를 들고 거실에서 몸을 풀어본다. 다시 좁은 방으로 들어가 어제 북토크의 작가님들 책을 집는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박연준 산문집을 읽어 내려간다.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다 보니 배가 고파지는 것이 더 잘 느껴진다. 태풍을 대비해서 편의점에서 털어 온 낙지 콩나물 덮밥과 우동 컵라면을 챙긴다.


  박연준과 장석주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북토크를 기다리느라 서점 밖에서 멍 때리고 있는데 두 사람이 서점 골목길을 즐겁게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살갑게 남자에게 말을 건넸고 남자는 말없이 조용하게 여자에게 응했다. 그런 두 사람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말았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 둘이 만나 부부가 되어 살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가 또 책이 된다. 멋진 부부로 여겨진다. 30년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보이니 말이다. 아마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30년 나이 차이에만 집중했을지 모른다.


  따뜻해진 덮밥과 컵라면을 들고 이번에는 숙소의 카페로 들어간다. 숙소의 직원이었던 분과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정겹게 대화를 나눈다. 잠깐의 대화를 더욱 친밀하게 만든 것은 '요가'라는 단어이다. 평대리의 '새날'이라는 요가원을 가보라는 추천과 주변 맛집에 대한 정보를 덤으로 얻는다. 사람들 사이의 공통분모는 다른 분자를 괄호로 묶어준다. 숙소에 들어가서 이를 닦고 나오니 아까 그 직원은 없고 이번에는 매니저만 보인다. 어제 보았던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 달라 알아보지 못하여 인사하지 못했다는 사과의 말이 칭찬으로 제대로 건네 지자 풍성한 저녁 간식이 한 접시에 가득 차서 돌아온다.

무화과 두 개

양갱 두 개

전병 두 봉지


  어느새 두 권의 책들은 삼성 패드 받침대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데 쓰이고 있다. 카페의 커다란 창가에서 바라보이는 수상한 소금밭의 정원이다. 잔디밭을 채우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잡념이 사라지고 없다. 그림에 집중할 때의 효과이다. 세상만사를 잊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그림 그리기인데 지나고 보니 자가 치유의 효과가 있던 것 같다.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은 없다.



  

  제주도 종달리에서 며칠째 머물고 있는지 벌써 가물거린다. 무슨 요일인지를 모르다가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리며 알게 된다. 내일은 태풍 '타파'의 집중 영향권이다. 매니저가 멀리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이다. 늘 맑은 날씨의 제주도만 보다가 태풍 한가운데서 궂은 날씨의 제주도를 보는데도 기분이 좋기만 하다. 발이 묶여 애를 태울 일이 없어서이다. 그림이나 그리고 글이나 쓰는 게 이래서 좋다.

  그러니까 오늘이 제주도 종달리에서 맞이하는 다섯 번째 아침이다. 어제저녁에는 수상한 소금밭의 게스트들과 직원들과 태풍을 보내는 밤의 파티를 했다. 마침 게스트 중에 한 명이 생일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며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땡땡 씨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스치기만 해도 엄청난 인연이라던데 이런 정도의 시간을 나눈 정도라면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게스트하우스 근처 카페에 들어왔다. 태풍 '타파'로 인해서 인터넷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재는 현금이나 계좌이체라는 말에 주섬주섬 천 원짜리 지폐 여섯 장이 들어있는 작은 손가방을 꺼내 돈을 직접 건넨다. 정말 오래간만에 현금 결제를 해본다.

  

  플랫화이트 한잔을 시켜서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 마을이 바라보이는 ‘청각사’라는 절 입구가 보이는 데 앉는다. 뭘 할까 싶어서 궁리를 해보다가 책을 읽기로 한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고 있으니 커피를 앉은자리로 가져와 주신다. 책이 쉽게 읽혀서 다행이다. 그러다 카페의 음악이 끊긴다.  태풍의 여파로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휴대용 스피커로 핸드폰에 잭을 연결했는데, 연결된 잭이 헐거워져서 음악이 끊긴 것이다. 그 순간의 고요함이 좋아서 얼른 이 순간을 담고자 책을 덮고 글을 쓰는 중이다. 나만을 위한 글일지 모른다. 이제 다시 음악이 들리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태풍이 지나 간 후 그렇게 휘몰아치던 바람도 사라지고 옆으로 내리 꽂히던 비도 사라지고 없다. 숙소 근처 카페로 향하며 길을 걷다 보니 여러 가지가 눈에 띈다. 검은 현무암 자갈길에 낮고 작게 자란 식물들은 큰 피해가 없던 듯 보인다. 반면 길가의 기다랗고 큰 식물들은 줄기가 꺾여 있거나 이파리가 날려있다. 태풍은 지나갔어도 피해는 남아 있다. 길가의 웅덩이가 그렇고 집집마다 가게마다의 파손이 그렇다. 태풍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도 태풍의 피해는 고스란히 남는다.


  사는 동안 그랬다. 작은 일 큰일이 지나가며 감정의 상처를 남겼다. 스스로 상처를 꿰매고 아물기를 기다리며 상처를 돌본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서 작가 박연준은 이렇게 표현했다.


‘슬픈데 눈물조차 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마음 가장자리가 수분 부족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메말라갈 때, 슬픔의 가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을 때는 분명히 떠나야 한다.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다. 그냥 상처가 나를 데리고 가는 일에 몸을 맡기면 된다.’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여행의 끝'>에서 -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읽기 쉬운 문장 그러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문장 말이다.

  작가의 글이 부럽고 스스로의 글이 부끄러워 그림만 그리고 글은 쓰지 못한다. 이때 머릿속을 떠도는 문장들이 있다. 제주도 종달리에서의 마지막 글은 아래의 글로 마치고자 한다.


 사경(寫經)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 동복 방파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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