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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뺨 Oct 31. 2020

속초의 숲휴게소

어제의 나로부터 멀어지기 Part 1. 여행

  제주 한 달 살기 이후로 오래 간만의 홀로 여행이에요. 어제는 허세에 절어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려고 사진 찍기 바빴는데 오늘부터는 디지털 기계를 멀리하고 자연을 바라봐야겠어요. 밤새 들리던 개구리 합창, 동네 개들의 짖음, 새벽부터 동창이 밝고, 역시나 개들이 짖고, 그중 한 놈은 주인에게 꾸중을 듣고 웅얼 웅얼 서러워요. 새들이 지저귀고 선선함에 새벽 4시부터 깼네요. 이거 저거 하다가 피드나 올려야지 했는데 와이파이 연결이 안돼서 테라스로 나왔어요. 새벽 이슬이 내려앉은 테라스 의자를 대강 닦고 앉았어요. 절경이 따로 없네요. 상쾌한 공기를 글로나마 띄웁니다.


  지금까지 맨발로는 잔디밭을 거닐어 본 적이 없는데, 숲휴게소 앞마당의 잔디밭을 맨발로 걸어보네요. 이슬이 맺힌 잔디의 찬 기운을 느껴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꽃송이들을 발견해요. 저를 염탐하던 동네 고양이의 방문도 알아채고 고양이 눈인사로 경계를 풀어 보아요. 지금 그런 여행을 하고 있어요. 별거 아닌데 되게 특별한 여행 중입니다.

  숲휴게소에서 가만히 제 할 일 하고 있으면, 이 소리를 자주 들어요. 부부간에 정겹게 부르는 여보...

    "여보~~"

    "네, 여보~~"

  마치 친척 집에 놀러 온 기분이 드는 것은 부부간의 살가운 표현에 동화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숲휴게소에는 화장실 우렁 각시가 있어요. 분명 휴지를 잡아 뜯고 나왔는데... 다시 들어갈 때면 호텔 휴지처럼 새초롬하게 접혀있어요. 처음 몇 번은 그래도 그냥 굳건히 잡아 뜯고 나왔는데요. 이게 삼일째 머무르며 부부의 사랑을 받다 보니 저절로 손이 휴지를 접고 있어요. 뇌가 시켰다기보다는 마음이 움직였다고 봐야겠네요.

  ‘이 정도면 정성이다. 정성이야.’

  내일이면 서울 가는데, 정성 어린 대접을 받고 감동했어요. 뭐 어쩌겠어요. 또 와야죠.


  속초에서 받았던 감동을 한 폭에 담아야지! 이 기분을 살려서 한 획에 이어 그려보자! 친절한 숲휴게소 부부와 새침한 길고양이 두 마리. 속초에서 만난 신비로운 우주였어요. 혼자였지만 새로운 우주와 함께여서 심심하게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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