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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뺨 Nov 03. 2020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발리

어제의 나로부터 멀어지기 Part 1. 여행

  언젠가 한 달 살기를 해 볼 수 있다면 제주도와 발리 우붓에서 해보리라. 퇴사하자마자 제주도 한 달 살기는 이루었고, 반년만에 발리 우붓 한 달 살기도 하게 되었다. 대충 블로그나 너투브 영상에서 발리 우붓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가루다 인도네시아 비행기로 오고 갔다. 숙소는 총 세 곳에서 머물렀는데, 첫 번째는 지인이 추천한 고급 호텔 '그린 필드'였다. 밤늦게 도착하는 공항에서 호텔까지 안전하게 픽업 서비스받기 위해서였다.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 대략 일주일간의 망중한을 럭셔리하게 보냈다. 물론 이번 발리 우붓 한 달 살기의 콘셉트도 요가와 명상이다. '요가반(the yoga barn)'을 중심으로 두 번째 숙소는 중급 호텔 '에비텔'로 정했다. 그리고 마지막 숙소는 홈스테이였다. 이제 서랍 속에 숨겨두었던 발리 우붓 한 달 살기 이야기를 풀어보자!



    

  발리 우붓 시내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몽키 포레스트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갤러리가 있었어요.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모작인지 창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걸린 작품들이 마음에 들어서 작은 화폭의 그림이 적당한 가격이라면 살 마음으로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타일 바닥에 박스 종이를 펼쳐놓고 그 위에 캔버스와 깡통 물감들이 늘어져 있었어요. 갈색과 하얀색이 섞인 고양이가 그 옆에 누워서 자고 있었고, 갤러리의 주인이자 화가이기도 한 남자가 가격을 묻는 저에게 가격을 말해주고는 저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물어봅니다. 그래서 야자수 나무 그림을 보여주면서 말을 이어나갔지요.


  "이거 제가 그린 건데요. 화가는 아니에요."

  "아니야. 너는 화가야!"

  "아. 아닌데요."  

  "음악가이기도 하니?"

  "네? 음악도 안 하는데요."

  "대나무로 만든 악기가 하나 있는데 연주해볼래?"

  "그래요? 뭔데요?"


  저와 이렇게 대화를 나눈 갤러리의 주인이자 화가의 이름은 '쿰붕'이에요. 그림 작업을 방해했는데도, 흔쾌히 손님을 맞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지요. 짧은 영어 단어로 띄엄띄엄 주고받긴 했지만 서로 교감했던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쿰붕은 팅글릭(Tingklik)이란 악기를 보여주고 직접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 뒤에 제게 채를 쥐어줬어요. 쿰붕을 따라서 악기를 치기 시작하니까 쿰붕은 다른 음역대로 옮겨서 화음을 넣어줬어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림들을 몇 개 더 보여줬지요. 그랬더니 쿰붕이 그것 보라며, 너는 화가라며 좋아합니다. 잘 그렸다며 칭찬을 해줘요. 빈말이라도 화가로부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지 모예요. 걸어놓은 작품 하나하나를 소개받고, 고양이도 소개받고, 다른 악기도 같이 합주해 보았어요. 그림은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데도 그 더위 속에서 쿰붕은 짜증 한 번을 내지 않았어요.


  발리 우붓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안겨준 쿰붕에게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잘 팔리기를 바라며 갤러리를 나왔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순수한 쿰붕 덕분에 발리 우붓의 오늘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네요.

우붓 동물들


사람을 봐도

쓰윽 쳐다보고 갈 길을 간다.


나무 타는 다람쥐

담벼락 걷는 길 고양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도마뱀

더위에 지친 떠돌이 개


새벽을 축복하듯 지저귀는 새

아침을 내달리는 달팽이


루왁 커피집의 늘어진 사향고양이

박물관의 무척 큰 살아있는 앵무새


사람 같은 원숭이들

사람 안 같은 원숭이들


우붓 동물들을 품고 있는

초록의 벼들이 바람에 쓰러졌다 일어선다.


- 우붓 에비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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