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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뺨 Nov 05. 2020

발리 우붓 한 달 살기의 여행 메이트

어제의 나로부터 멀어지기 Part 1. 여행

여행 중에는 사진에 담으려고 해도 안 담기는 게 있어요.


발리 우붓의 몽키 포레스트 입구에 가까워지면 아침부터 내려와 있는 원숭이들을 볼 수 있어요. 관광객들 중 일부는 해마다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는 입장료에 돈이 아깝다며 입구의 원숭이들만 보는 것에 만족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 귀한 생명체들을 만나는데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잔나비 띠의 람이 실제로 긴 꼬리 원숭이들을 만나면 그들의 기운을 받을 것 같았거든요.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하기 전에 주의 사항을 꼼꼼하게 읽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유난히 사람들이 없었어요. 혼자 들어가기에는 겁이 나서 사람들 무리가 있으면, 그 무리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려고 했거든요. 몇 분을 머뭇거렸지만 이대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서 무소의 뿔처럼 저벅저벅 걸어 들어갑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나뭇가지들마다 긴 꼬리 원숭이들이 매달려 놀고 있어요. 귀엽기도 한데 눈이 마주칠까 걱정하면서도 구경 삼매경에 빠졌어요. 다리를 쩍 벌리고 털을 고르고 있는 녀석은 한눈에 봐도 수놈이고 힘이 셀 것 같아요.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녀석이 무심하게 저를 보더니 자기 할 일을 계속해요. 관광객들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저를 보내줘요.


한편 저쪽에 있는 원숭이들은 자기들끼리 난리가 났어요. 한 직원이 원숭이들의 아침 식사로 옥수수의 낱알을 칼로 베어서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는데, 우두머리가 먹이 욕심을 부리고 있어요. 약한 놈들은 채소만 집어 먹거나 도망가는데, 약은 놈이 맛있는 걸 자꾸 훔쳐 달아나니까 우두머리가 화가 나서 난리법석을 떱니다.


공원의 또 다른 곳에서는 앉아서 쉬는 사람들한테 장난을 걸며 사람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어린 원숭이들도 보여요. 고개를 돌려 보면 작은 손으로 큰 돌을 집어 들고 무엇인가를 깨는 원숭이도 보여요. 그런 원숭이들 사이에 있으니 인적 없는 제주도 한라산 영실 코스를 오르는 때처럼 오감이 뻥 뚫려요.


계속 걷다 보니 철창에 갇힌 원숭이 두 마리도 보여요. 안내문을 읽어보니까 무리에서 방출된 원숭이들이래요. 하나는 눈이 아프고 다른 하나는 팔이 없어요. 먹이 경쟁에서 밀리기도 했고, 공격을 받아도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직원들이 따로 돌봐준대요. 눈이 아픈 원숭이는 철창 안을 뱅뱅 돌고만 있네요. 그 넓은 공원에서 철창 안에 갇힌 녀석들이 몹시도 가엽습니다. 원숭이들에게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잘 모르겠어요.

원숭이들 사이를 안전하게 지나와서 뿌듯하구나 싶었는데,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니 높은 나무의 나뭇가지에도 원숭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 모예요. 원숭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았겠구나.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요.


발리 우붓에서는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참 많아요. 잠자려고 이불을 덮으려는데 베개 위에서 움직이는 새끼 도마뱀. 요가원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요가 매트 위에 눕게 되면 또 도마뱀.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그림을 그리다 커피를 마시려고 고개를 돌리면 또 또 귀여운 도마뱀. 벼논 옆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도 또 또 또 도마뱀을 만나고요. 일상이에요.


우붓 한 달 살기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원숭이들과 도마뱀들이 몇십 년 뒤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그래서 그 마음을 담아 텀블러를 챙기고 손수건을 챙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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