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엄마의 관계는 까르마(Karma)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業報)라고 이해해야 받아들이기 수월하다. 지난 생에 딸과 엄마는 반대의 역할로 살았음에 틀림없다. 현재의 딸이 엄마였을 것이고, 지금의 엄마가 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니까 전생에 내가 엄마로서 딸한테 신세를 많이 지고 죽었던 것이다. 딸에게 잘해주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서 현생의 엄마에게 딸로 태어나 그 빚을 갚는 중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부모 사이에서 딸은 나름의 노력을 했다. 경제적으로는 부모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파제 역할을 했고, 정서적으로는 남녀 사이의 완충제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덧없었다.
누군가 그 역할을 하라고 등 떠밀지는 않았다. 독립하겠다며 야멸차게 자리를 박차고 부모 곁을 떠났어도 됐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역할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족도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보호자는 딸이 되어버렸다. 아빠의 보호자는 아들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다시 흩어졌다. 그럼 우리 가족은 불행하게 살고 있느냐. 글쎄다.
가족이라고 해서 같이 산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딸은 비로소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게 됐다. 이제 이 까르마를 정리하고자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도 관계는 긍정적으로 개선되리라. 딸은 또 속도 없이 행복한 미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