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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dler Aug 22. 2019

세상에! 내가 축구 얘기에 웃고 울다니.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김혼비


내가 김혼비 작가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쉬려고 들어갔던 서점에서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집었던 책, '아무튼, 술'을 집어 들면서였다. 아니 책 제목이 '아무튼, 술'이라니 이런 책을 '술꾼'이 지나치면 안 되지 싶었다.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은 이거였다. '아... 술이 좋아 그리 마셨으면 이렇게 책이라도 써야지. 난 뭐냐? 그나저나 이 사람 글 참 재밌게 쓰네.'

나중에 아무튼 시리즈를 알았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친구들과 앉아 수다 떠는 느낌이 들었다.

검색창에 '김혼비'를 넣어보니 '아무튼, 술' 이전에 나온 책이 있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즐겨 찾는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책이었다.

반가움에 결제.


그저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색함을 기본으로 하던 초개인주의자인 작가(맞다. 작가는 여자다.)가 축구 동호회에 가입해 축구 - 뛰고 막고 차는 정말 축구 - 에 입문하면서 보고 느끼고 관계한 에피소드를 적었다.


난 남자다. 살면서 축구를 해 본 적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남자다. 


중학교 다닐 때 기억은 이렇다. "축구하자."라는 친구들의 말에 각 팀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운동장에 들어서는 아이였다. 작가가 얘기하듯 당연히 수비수 자리에 위치했고 친구들은 책 속의 감독처럼 공을 잡자마자 상대편으로 지르기만(찬다보단 지른다는 표현이 맞다.) 하면 된다고 얘기해 줄 뿐이었다. 다른 기억은 없다. 단지 친구 녀석이 찬 공에 맞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던 기억뿐. 친구의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잘 지내나?


고등학교 땐 축구보다는 농구가 인기였고 농구를 할 때도 난 머릿수를 맞췄고 그 와중에도 손가락을 잘 삐는 아이였다.


대학교 땐 왕년에 공 좀 차 본 녀석들과 선후배들이 선수로 출전한 공대(!) 체육대회에서 운동장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 응원하는 정도였고.


심지어 남들 다하는 군대 축구의 경험도 없다. 매일 부대로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하는 방위 - 94년 7월, 김일성이 세상을 뜨던 그달에 4주 훈련에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고, 그 덕에 훈련소 기간이 6주(당시 현역 대상자는 훈련소 기간이 6주였다)로 늘 거란 조교 놈들의 농담을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던 때였다. 아마 거의 마지막 방위였을 거다. - 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현역들은 업무 시간이 끝나고 전투 체육 시간이라는 걸 갖는데 주로 '축구'를 했다. 업무 시간이 끝났다 함은 방위병들의 퇴근 시간 이후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난 대부분의 사내가 침을 흘리며 떠드는 군대 얘기에도,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는 더더욱 흥미는 1도 없다. 당연히 인사이드킥이나 리프팅 연습을 하는 사람,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에게 아는 체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런 내가 어떤 여자가 축구하는 얘기를 너무 재밌게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낄낄댔다. 감독님의 비유는 좀 나아지셨으려나?

부상에서 돌아온 코치 얘기나 WK리그 관람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훌쩍이기도 했다. 작가 본인의 첫 어시스트는 감동의 눈물을 짓기에 충분했고. ^^


여전히 피치를 뛰어다닐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재밌었던 글에는 감사함을 전한다. 또한 다음 에피소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 얘기를 하고 싶다.


그새 상대편(!) 골문을 흔드는 골을 기록했을까?


작가는 함께 술 마시며 그녀의 축구 얘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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