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었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고, 잘 휘둘리는 편이었다.
취직을 한 뒤에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분위기에 맞춘 답을 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돌부처처럼 변했다.
2.
살아온 시간보다
사회생활을 한 기간이 훨씬 짧은데도
그 강력한 무엇인가에 의해서
나는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큰 변화 이후에는
다른 변화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3.
우리는 꽤 화끈한 면이 있어서,
갈등은 최대 2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피곤하니(머리 아프니) 다음에 얘기하자'가 통하지 않는다.
기분이 아무리 안 좋더라도
잘잘못, 시비는 하루 내에 결판을 낸다.
4.
언쟁 중
나는 장황한 달변가 스타일이고,
여자친구는 두괄식 돌직구 스타일이다.
우리의 싸움은 주로 나로 인해 일어난다.
싸움의 승률은 2:8 정도인 거 같다.
내가 2다.
5.
여자 친구는 솔직한 마음을 담은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뭐가 먹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뭘 사면 좋을지
이 과정에서 '여자 친구가 좋아하니까'이 이유에 포함되지 않고,
온전히 '나는 이게 좋아'가 담긴 것을 원한다.
6.
언쟁에서도 비슷하다.
"왜 그랬어?"
"째끄미가 싫어할 거 같아서 이렇게 했단다"
이런 대답이 나오면 연장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왜 그랬어?"
"말없이 나와서 미안해. 나는 그 사람의 이런 행동이 너무 싫어서 도저히 분위기 맞추기가 어려워서 나왔어."
솔직한 대답은 콜드게임으로 빨리 끝난다.
7.
솔직한 대답이 때론 여자 친구의 기분을 나쁘게 할지라도
용서에 있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여자 친구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8.
여자 친구는 이런 점을 항상 명확하게 말해준다.
솔직함과 진실함이 용서로 이어지는 과정은
마치 고해와 같다.
여자 친구는 하느님같이 나를 용서하지만,
나는 또 다른 잘 못을 저지르곤 한다.
9.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여자 친구는 두괄식으로 솔직히 말하는 걸 강조한다.
"미안하다. 이래서 그랬다."
그러면 갈등은 끝난다.
하지만 나는 지적을 받으면,
괜한 억울한 마음에,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이 변명이 되고, 어쨌든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면서 잘 못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이를 반복하는 것 같다.
10.
나는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분위기를 읽고 거기에 맞는 답을 찾았고,
솔직히 말하기보다는, '아, 예, 뭐, 그냥' 하면서 두리뭉실하게 표현했다.
사회생활에서는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았으나,
우리에게 나는 모난 사람이 되어있었다.
때론 내가 정말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었나를 모를 때도 있었다.
정말 무념무상의 돌부처가 돼버렸나 보다.
11.
한 편에선 나의 솔직하지 못함을 알아차리는
여자친구의 모습이 놀랍기도 하다.
그만큼 나를 잘 간파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때론 내 솔직한 마음을 모를 때가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솔직함을 존중해 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