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해단 Oct 04. 2023

가발

수술 후, 엄마의 항암이 시작되었다. 항암을 시작하면 머리가 빠지고, 부작용이 심할정도로 센 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익숙히 들어 알고있었다. 하지만 들은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항암을 하러 가는 날은 각오를 해야했다. 진료와 마찬가지로 대기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치료실로 들어가 간호사선생님께 이름을 말하면, 대기 명단에 올려주신다. 한 사람 당 한번 주사를 맞으면 40분은 기본이었기에 회전율은 극악이었다. 대기복도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를 볼 때마다 내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 암걸린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대기시간은 오전에 도착해서 오후에 들어간 적도 있을 정도로 길었다. 혼자서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루한 시간이 아니겠나. 그나마 보호자와 동행하면 같이 말할 사람이 있으니 덜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엄마의 말에웬만하면 항암하는 날은 꼭 같이 와야지 생각했다.


항암제를 맞기 전, 간호사선생님들은 환자에게 주어진 약물과 환자가 일치하는지 두세번씩 물어보셨다. 당연한 절차지만, 혹여나 다른사람과 약이 바뀐다 생각하면 매우 아찔한 결과를 낳을 것이기에 사소한 챙김 하나하나가 감사할 뿐이었다.


치료실에는 울렁거린다는 사람, 괴로워서 그만맞고싶다는 사람,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사람 모두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모두가 가발이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엄마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안가는걸...




엄마의 머리카락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 두피가 보였다. 항상 염색으로 검은 머리를 유지하던 엄마였다. 하지만 머리가 숭숭빠지니 흰머리카락들이 드러났다. 두피는 검은 점으로 덮혀있는게 아니라, 하얀 점으로 덮혀있었다. 새삼 엄마의 나이가 느껴졌다. 멋쟁이 엄마였기에, 새치가 이렇게 많은지 눈치조차 못챘었다. 빠지는 머리칼들로 인해 엄마의 세월이 눈에 인식되었다.


나는 엄마가 두상도 예뻐서 이런 머리도 참 잘어울린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나보다. 이제는 가발을 사야겠다고 선포했다. 가발은 답답할텐데, 심지어 지금은 여름인데! 그냥 모자쓰고 다니자, 두건쓰고 다니자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인터넷을 뒤져 가발을 샀다.


맞춤가발이 아니라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가발이었기에 티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평생 머리에 뭘 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전체를 덮는 무언갈 하고 다닌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가발인게 숨겨지지도 않고, 더위에 답답함까지 더했으니 손이 가지 않는건 당연했다. 차라리 좋은 맞춤가발을 구매하자는 말도 반려당했다. 가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결국 엄마는 모자를 쓰고 다녔다. 알록달록 예쁜 색, 다양한 디자인으로 돌려가며 착용했다.


방에 걸려있는 가발을 볼 때 마다 저걸 왜 샀을까 생각했다. 내 말듣고 안샀으면 됐지, 왜 굳이 사서 돈만 아깝게시리!


“가발 산거 후회하지? 한번도 안쓰고 나갔잖아.”

“아니. 후회 안 해. 없어서 못쓰는거랑 있는데 안쓰는건 달라.”


엄마는 이어서 말했다. 머리가 하나 둘 빠지는게 내가 진짜 암에 걸린 환자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건 물론이고,  아픈 사람이라는 걸 모두에게 강제로 알려지는 느낌이라고. 엄마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나는 그저 머리가 빠진다는 그 사실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머리카락이 사람에게 주는 힘이 이렇게 컸다니. 상상도 못한 영역이 가진 힘에 놀랐다. 역시, 아무리 옆에 있어도 당사자의 마음을 모두 헤어리긴 어렵구나.


항암이 끝나고, 엄마의 점점 머리가 자라나 다시 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이제 대머리도 해보고, 숏컷도 해보고, 단발도 해보고, 긴머리도 모두 섭렵한 사람이 됐다. 물론 무슨 머리를 해도 잘어울렸다. 그런데 가끔 생각난다. 엄마의 머리가 쪼끔씩 나기 시작할때 부들부들한 그 느낌! 엄마는 만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만졌던 그 머리. 엄마의 아픔을 대표하는 상징이었지만, 나는 그 때의 엄마도 어김없이 좋다.





이전 16화 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