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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언니

암 수술이 끝나고, 엄마가 병실로 이송되었다.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엄마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간신히 뜨고 있었는데, 언니와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취에 취해서인지, 마취의 힘을 빌린 건지 그 어느 때보다도 펑펑 눈물을 쏟더라. 옆 침대 환자 분도, 간병인 분도 모두 놀라서 웃으며 엄마가 수술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말해주었다. 그런데 눈물만 흘리던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다은이(언니)는 가. 해은이만 있어."




언니와 내가 늘 장난치며 말했던 이야기가 있다. 가족 4명이 만약 같은 반 학우였다면 다 무리가 달랐을 것이라는 거다. 그 정도로 우리 가족은 성향이 달랐다. 고등학생 시절의 언니는 엄마 아빠 나 가릴 것 없이 모두와 싸워댔다. 그나마 비슷한 성격이었던 아빠와는 닮아서 싸우고, 엄마와 나랑은 달라서 더 싸웠다.

언니는 친구를 더 좋아했다. 난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싶고,  카페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다며 투정부렸지만 언니는 같이 집에 있는데 어딜 또 가고 싶어 하냐고 되려 한소리 했다. 언니는 정말이지, 우리 가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쓰러졌을 때, 언니는 곧 외국으로 가야 했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어학연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그렇게 외국으로 떠났고, 남은 엄마와 내가 아빠의 곁을 지켰다. 몇 년 뒤, 엄마의 병을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경기도에 떨어져 있으니 엄마 옆에 남아있는 건 나뿐이었다.

입이 삐쭉삐쭉 나왔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늘 나의 몫으로만 남는 게 불만이었다. 시간을 빼서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건 항상 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언니는 전화 한 통이면 의무를 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모든 걸 엄마도 다 알고 있었으리라. 서운한 감정이 뭉쳐있는 상황에서 마취약이 길을 터줬을 것이다. 엄마의 말에 언니는 당황해하면서도 어이없어했다. 나 조차 놀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늘 언니에 대해 서운하다고 표현했지만, 엄마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뭐라고 하냐며 늘 감쌌기 때문이다.

언니는 그렇게 며칠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은이는 가' 사건에 충격받은 듯했지만, 태도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엄마에게 조금 더 전화하고, 상태를 물었을 뿐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언니를 보며 알았다. 언니는 늘 최선이었다.

애정의 종류에 따른 그릇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구나. 사랑하는 애인에게는 500만큼의 마음도 거리낌 없이 써지는데, 정말 우정하는 친구에게는 아무리 마음을 써도 100까지가 최대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언니의 가족애는 엄마와 나에 비해서 작았을 뿐이었다. 내가 그냥 하는 행동이, 언니에게는 정말 노력해야 나오는 행동이었다. 언니도 스스로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여자가 자신이 등신에게 신경쓰는 것만큼 똑같이 해달라고 했을 때, 최선을 다해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껏 연차를 내고 부산까지 내려왔더니, 언니는 나보다 부모님을 챙기지 않는다는 등의 투정을 듣고, 다시 올라 가라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억울했으려나, 서운했으려나.


이미 가기로 한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다면,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일을 그만두고 부산에 내려와 간병을 도왔다면,


모든 게 다 해결됐을까.

그것도 아니었겠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그것만으로도 관계는 둥그래지더라. 언니에 대한 나의 모난 마음이 점점 둥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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